산행팁

설산 비박에 대한 문의와 답변..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2. 9. 12:11
설산 비박에 대한 문의와 답변..

질문:

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언제나 자상하게 길을 안내해주시는 운영자님께 감사드리면서 비박에 대하여 문의드립니다. 비박의 개념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사전에 훈련삼아 준비된 비박을 하는 경우가 아닌 요즘 같은 적설기에 혹시라도 닥칠지 모르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비박을 하여야 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당일 산행을 가정해서 텐트와 침낭은 지참치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평소 겨울산행시 준비하는 물품들을 나열하겠습니다.> 혹시라도 부족하거나 불시비박을 대비한 비상대처용 물품, 혹은 운영자님께서 추천하시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이 물품들은 당일산행을 위한 준비물들입니다. <준비물> 방풍.방수.보온의류, 중등산화, 여분양말, 장갑(인너장갑 포함), 발라클라바, 고소모, 헤드랜턴, 손전등, 수통, 보온병, 주머니난로, 휴대전화, 아이젠, 게이터, 가스라이터, 칼, 스틱, 배낭, 행동식, 기타 잡다한 것들은 략하겠습니다. 배낭은 보통 35리터를 사용합니다. 겨울산행을 몇 번 접해보지 못한 초보입니다. 알려주신다면 앞으로 산행함에 있어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답변: 비박문의에 대한 대답의 자격이 저에게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중산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설릉에서 야영한 적은 한번(명지산 1100m설릉 야영. 일출보기위해) 밖에 없거든요. 겨울산이건 봄산이건 오후 4시에는 하산한다는 원칙이 저에게 있었기에 야영을 하기로 하고 올라가지 않는한 불시에 또는 부득이하게 야영을 하게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우리나라 산은 길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6시간이면 어떤 산이든지(지리산, 설악산은 빼고)하산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에 산에서 당황하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눈이 깊은 산을 산행할 땐 다른 때보다 긴장하여 하산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려고 노력을 한 편이었습니다. 눈이 많은 산은 하산때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반은 미끄러지듯이 내려갈 수 있으니까요. 화악산은 심설이 좋아 몇번 산행한 적이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화악산은 눈이 가장 많이 쌓이는 산이기도 합니다.

화악산은 1464m에 이르는 거악인데다 능선이 둔중하여 11월부터 내리는 눈이 녹지않고 쌓이고 그 적설량은 엄청납니다. 어느 핸가 화악산을 찾았다가 조난할 번한 적이 있습니다. 큰골에서 들어가 오른쪽 능선을 올랐다가 1450봉인 중봉을 거쳐 왼쪽능선의 1100봉에서 큰골로 다시내려오기로 한 산행이었습니다. 3시간이 넘어서야 정상능선의 밋밋한 사면에 이르렀습니다. 그때까지도 눈때문에 꽤 고생을 한 터여서 허리까지 빠지는 심설지대가 되자 순간 당황했습니다. 올라갈수록 눈은 깊어졌고 나중엔 무릎을 구부리기도 어려워졌읍니다. 결국 발을 사용하는 것보다 몸전체를 물위에 띄우듯이 눈위에 몸을 띄우고 헤엄을 치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나은 듯했습니다. 그렇게 고난의 설중행을 하는데 1분이 10분, 10분이 한시간이 되는 듯 시간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필사적으로 재앙과 같은 심설지대를 벗어가고자하는 나머지 기운이 진해 다리를 빼서 들어올리고 나면 온몸에서 기운이 쫙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나아가니 내리막이 되었습니다. 내리막이 되면 눈덩이와 함께 쏟아지듯 내려오다가 평평해지면 다시 헤엄치듯 하다가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했지요. 비로소 이렇게 하다가 기운이 다빠지면 조난하는 것은 분명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큰골로 내려가는 분깃점인 1100미터봉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화악산의 능선은 평평하고 길어서 꽤 시간이 걸립니다. 1100미터봉까지 심설이 계속되었더라면 그날 산행을 끝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도가 조금 낮아지자 적설량이 줄어들었고 그 이후엔 바람같이 큰골로 내려왔읍니다. 하지만 심설이 계속되고 온몸이 지쳐 한발자국도 더 떼기 어려웠다면 나 역시 비박을 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그러한 판단이 섰으면 즉각 능선에서 바람이 불지 않는 남동사면으로 조금 내려와 주위를 평평하게 다지고 깔깨를 깔고 앉습니다. 이때 내의가 젖어있다면 빠르게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의류를 모두 꺼내어 한기를 차단할 방도를 취합니다. 마침 손난로가 있으므로 보온을 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체열이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려면 방수방풍의를 벗어 뒤집어 씁니다. 요즘 방수자켓은 사이즈가 꽤 크므로 몸의 상당부분을 가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켓의 후드와 발라클라바도 머리와 얼굴의 체온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최대한 오그립니다. 한기의 침입을 막기위해서죠. 자신의 콧김이 한동안 옷속에 머물도록 할 수 있다면 체열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판초우의같은 게 있으면 더없이 좋습니다. 깔개도 매트라면 더 좋을 텐데 아무것도 없다면 배낭이라도 깔고 앉을 수 밖에 없는데 배낭은 될 수 있는대로 등을 대어 한기를 피하는데 쓰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생존을 위한 방도는 의외로 쉬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전통적인 방법일 수도 있어요. 모닥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눈속이라 산에 불이날 염려는 없습니다. 눈위에 불을 피운다? 가능합니다. 산의 남동사면은 북서사면보다 적설량이 적습니다. 그리고 눈속의 나무는 젖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을 피우면 그 열로 바닥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숲에는 삭정이, 마른 가지등 불에 잘 타는 재료들이 있어 한사람이 쬘만한 작은 모닥불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날이 샐 때까지 체온을 유지하는 일이니 만큼 모닥불 위에 컵이나 코헬을 얹어 눈을 뭉쳐 물을 만들고 그 물을 마시고 남은 물은 보온병에 담습니다. 모닥불을 밤새 피우기는 어려우니까요. 이때 어느정도 보온이 되었다면 눈을 쌓아 주위에 담장을 만들든가 하여 바람을 막도록 합니다. 이런 방법외에 특별한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그러다가 날이 새는 듯하면 헤드랜턴을 끼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새벽까지는 엄청나게 길지만 날샐 때 보면 날은 금방 새거든요.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밤을 샐 때 절대로 젖은 옷을 입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위의 물음에 답변할 용기가 생긴 것은 겨울철은 아니었지만 설악공룡능선에서 한번, 서북능선에서 한번 비박(텐트없이)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위에 적은 장비중에 버너가 안보이는 것과 코헬류의 식기가 없는 것이 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