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6. 30. 08:56
가리봉 1518m

위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 북면


옥녀탕휴게소(지금 폐쇄중) 길 건너편에 차를 주차시키고 택시를 타고 한계령으로 간다. 택시비는 2만원 호가에 1만8천원 냈다. 가진 돈이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서울의 동서울터미널에서 한계령-양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한계령으로 가서 가리봉산행을 한뒤 느아우골로 나온 다음 쇠리민박촌으로 걸어가서 버스를 타면 될 듯하다.버스사정이 좋을리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6-7시경에는 원통으로 가는 차가 오지 않을까? 옥녀탕휴게소(느아우골입구가 바로 옆이다)에서 쇠리 민박촌까지는 멀지 않다. 나의 경우는 가리봉같은 큰산의 장거리산행에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 그래서 하산완료시간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 승용차를 가지고온 이유중의 하나이다. 시간이 늦어지면 야간산행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날 가보고싶은 곳(홍천의 경수골)이 있어서 차를 가지고 갔다.
한계령에서 가리봉으로 가려면 오색쪽으로 조금(100m미만) 내려가서 오른쪽 옹벽위 숲속 경사면으로 오른다.이 경사면이 가장 오르기 쉬운 곳이다. 옛날에 올랐던 곳은 찾기가 힘들어서 점봉산산행(10여년전)때 올랐던 가리봉계곡인 필례약수로 넘어가는 고개까지 내려갔으나 올라갈 데가 없어 다시 되돌아와야했다. 그러노라고 아마 한 20여분 아까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한계령에는 가리봉 산행을 돕는 어떤 장치도 시설도 없고 산행을 하려면 반드시 한계령이나 옥녀탕휴게소 부근까지 와야 한다는 점에서 가리봉산행은 접근부터 매우 어려운 산이다. 차가 있어도 되돌아오는 산행이 아닌 한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옛날엔 쇠리 민박촌에서 하루밤묵고 옆집에 사는 택시기사 아저씨의 차를 타고 한계령으로 가서 가리봉산행을 했었다.

한계령쪽 조망. 상투바위봉과 귀때기청봉, 소승폭포.
한계령에서 숲속 경사면을 올라가도 길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 가니 교통호가 나오고 흩어졌던 발걸음들이 점차 모이듯 길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무조건 제일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면 평탄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높은 곳이 나온다. 봉우리라고는 하기 어려운 펑퍼짐한 곳인데 1005m정도 되는 높이이다. (좌표: 경도 128도 24분 22초, 위도 38도 05분 36초)울창한 숲에 가려진 좁은 공터가 보이고 좌표를 적은 국토지리원이 세운 스테인리스 입간판과 삼각점이 시야에 들어온다.도로에서 10여분 올라온 곳이었다. 봉우리꼭대기에서 가리봉으로 가는 길은 완전히 또렷해진다. 하지만 옛날과는 달리 숲이 울창해져서 주위를 가늠할 수가 없다. 숲은 접근하기 쉬운 곳의 숲이 그렇듯 수종이 단순하고 수령도 일천하다. 여기서부터 가리봉으로 가는 길은 능선에서 44번도로로 간단하게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1000m대에서 고도 860m대까지 내려가야 했다.

한계령에서 가리봉까지는 서북능선의 대승령에서 귀때기청봉을 거쳐 한계령으로 내려가는 삼거리까지의 거리에 조금 못미칠 정도의 매우 먼 길이다. 한계령에서 가리봉을 지나 느아우골로 내려가는 길목까지 계산하면 대승령-귀때기청봉-한계령갈림길까지 보다도 멀다. 사람들은 (대승령에서)서북능선길이 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1005m봉에서 20여분 걸어내려가니 그제서야 망대암산과 한계령봉(고유명칭은 아님. 한계령옆에 솟은 봉우리이므로 편의상 한계령봉으로 지칭하기로함)이며 걸어내려온 길목의 또하나의 낮은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인생에서도 산에서 보이는 것처럼 지나온 것들의 성취가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서보니 한계령봉도 꽤 높아보인다. 가리봉쪽은 아직 전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서북능선쪽은 상투바위봉의 옆봉우리 일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숲속길은 꽤나 쾌적하다. 시원한 바람이 능선을 넘나든다. 처음에는 서늘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여서 재킷을 가져올 걸 그랬나 했다. 숲에는 '천연기념물보호'라는 글귀가 새겨진 화강암 석재말뚝이 꽤 자주 눈에 띄었다. 설악산일대는 문화재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보호구역이긴 하다. 지도에서 천연기념물보호비에서 큰길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다고 되어있는데 그런 비석이 많다면 길찾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그럴 경우에 대비하여 가리능선에서 가장 낮은 안부(고도858m내외)를 찾거나 한계령에서 장수대로 뻗은 도로가 바로 옆에 나 있으므로 차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 그리고 도로로 내려가는 또렷한 길이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면 된다. 한계령봉에서 1시간 10분을 넘긴 곳에 다시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라기 보다 그래도 주위가 잘 보여서 시원했다. 특히 서북능선의 남쪽 암사면이 시원하게 드러났다. 귀때기청봉을 옹위하고 있는 봉우리들 뒤로 청봉이 의연히 솟아있다. 상투바위봉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수려하게 생긴 봉우리다.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를 연상케하는 광경이었다. 상투바위봉의 오른쪽 어깨아래에는 소승폭포가 보인다. 여기서 10분정도 더 가면 바위오르막이 있고 이 오르막길에서 돌아보면 동쪽과 남쪽이 훤히 보여 비로소 전망대다운 전망대위에 선 듯하다. 이 전망대에서는 소승폭포가 정면으로 보였다.
세잎종덩굴, 금마타리, 설악아구장나무
대승폭포는 서북능선이나 안산, 12선녀탕으로 갈 때마다 보는 폭포이기에 눈에 익지만 소승폭포는 볼 기회가 거의 없어 낯선 폭포를 보는 듯하다.폭포는 삼단으로 되어있는 같았지만 다시 보니 맨위의 폭포는 소승폭포의 안쪽깊숙이 단애에 하얗게 걸려있다.뚫어지게 바라보면 떨어지며 좌우로 요동치는 물줄기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마지막 폭포는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지만 물줄기가 두개로 나뉘었고 좀은 와폭에 가까운 형태였다. 이폭포에 물을 공급하는 계곡이 크지 않아 수량이 적어서 그렇지 강우기인 여름한철에는 볼만한 폭포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폭포를 좋아한다. 이만치 큰 직폭을 만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그리고 상투바위봉을 삼각형의 정점으로 한 바위경관은 동양화가 따로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바위경치를 자랑한다. 서북능선 남록은 볼만한 바위경치의 경연장같다. 서북능선상의 귀때기청봉 서쪽의 1300m대 능선봉은 그 아래 산사면에 제법 높은 암봉이 독립봉처럼 솟아있어 볼만했다. 게다가 1300m대 봉우리는 오래전에 서북능선을 산행할 때 비박을 하던 곳이어서 잊을 수 없는 봉우리다. 좌우간 서북능선의 남쪽 산록의 바위경관을 제대로 즐기려면 이 가리능선산행을 뺄 수 없는 필수코스일 듯하다. 서북능선은 능선날등을 타고 가며 내려다 보거나 아니면 차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며 길에서 올려다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900m대높이 내외의 능선에서 1km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서북능선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최적의 경관조망 조건이 아닌가 싶다. 이부근에서도 가리봉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타나는 가리봉은 봉우리들이 죽죽 뻗은 설악산 중턱의 암봉들과는 양상이 다른 파도처럼 일렁이는 능선봉들이다. 가리봉능선의 최저점이 소위천연기념물보호비가 있다는 안부로 이곳에서는 한계령으로 올라가는 44번 도로가 숲사이로 보일 정도로 가깝다. 그래서 탈출로로 쓰임새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길로 내려가더라도 결국은 한계령으로 올라가야 하므로 차량의 배기가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내려가지 않는 게 났다.

해발고도가 860m대 조금 아래인 이 안부에는 산행금지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다.(한계령봉에서 51분정도 진행한 지점) 특별한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어서 한계령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산행을 막는 이유가 무엇인지 불분명했지만 나중에 느아우골을 내려오면서 생각한 것은 가리봉산행중 느아우골의 산행이 위험을 수반하는 산행이라는 것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최저점을 지난 후 바로 가리봉의 남쪽인 필례약수유원지 위쪽 지계곡에서 올라오는 산길이 보였다.

산행깃점을 필례계곡유원지로 한다면 해발고도가 낮은 능선을 따라 올라와서 가리봉으로 가는 것이 현명하리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한계령에서 최저고도 안부까지 와서 가리봉을 오르는 것은 서북능선을 구경하는 일 이외에는 별로 의미있는 산행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전망대구실을 하는 지점이라도 더러 있다면 서북능선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코스일 수도 있었는데 그것도 아니니까 안그래도 힘든 가리봉산행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리막길이라 힘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느아우골을 생각하면 이 구간에서 1시간가량을 소비하는 것은 귀중한 시간을 잃는 결과가 된다.

실제로 필례약수에서 도로를 따라 올라와 가리능선에서 가장 낮은 안부에 이르는 것이 한계령에서 내려오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길이긴 하지만 백두대간과 연결된 능선을 이용한다는 뜻이라면 그나름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승폭포와 상투바위봉을 비롯한 귀때기청봉 아래쪽 경관이 훤히 보이는 전망대(암릉)는 최저점안부 이후에 있으니 한계령에서 오든 가리산리에서 오든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 드디어 가리능선은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계산해보니 가리능선의 최저점 안부에서 정상까지 고도차가 660m정도 되었다. 이것은 서울의 예봉산(683m)의 높이에 근접한다. 한계령에서 1시간이나 내려온 다음 다시 예봉산 만치 높은 산을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굉장한 압박감이 밀려온다. 처음에는 조금 밋밋한 봉으로 1000m대를 넘었고 그 뒤에 좀 가파른 1200m대 봉우리, 그다음엔 1400m대의 봉우리가 차례로 나왔다. 봉우리와 봉우리사이의 간격도 차츰 좁아졌다. 가리봉에 와서 느끼는 것은 가리봉능선의 모든 산들이 주걱봉을 닮았다는 점이었다. 정상부근에서 바라본 주걱봉은 끝이 뭉특한데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수대에서 바라본 주걱봉은 끝이 예리하고 전체적으로 길쭉한 것이 가리봉의 다른 능선봉들과 모양이 비슷하다. 바로 장수대에서 올려다본 주걱봉의 모습을 가리봉의 거의 모든 봉우리들이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봉우리들의 간격이 좁아지며 봉우리와 봉우리사이는 험한 바위지대로 연결되어 있고 그 지점부근에서는 자양천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거나 서북능선이 시원하게 바라보이기도 했다. 차츰 고목이 많아지고 길은 웃자란 좁은 관목숲길을 통과하기 시작한다. 식물들은 자기영토를 확보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우선 자라고 보자, 가지를 뻗고보자 주의에 물들어 있어서 식생환경이 매우 조밀했다. 강풍에 부대낀 나무가지들은 억세기도하고 조밀하기도 하여 팔을 뻗을 자리도 없을 것 같다.
그러는 가운데 꽃정향나무(꽃개회나무.라일락. 수수꽃다리와 비슷)의 향기가 길위에 진동하기 시작한다. 정말 매혹적인 꽃냄새에다 신선한 초록색 녹음을 배경으로 피어난 엷은 분홍빛나는 꽃(가지끝에 길쭉한 작은 대롱형꽃들이 수없이 매달려있는..)들은 눈이 부시도록 수려했다. 우리나라 산이 그 높은 능선의 혹독한 눈바람을 이기고 키워낸 토종의 꽃이 또하나의 토종(나)을 매혹시킨다는 이 평범한 사실이 순간 매우 눈물겨운 것으로도 느껴지려한다.

바닥은 흙이지만 조금만 들어가면 바로 암반으로 이뤄진 골산이므로 산의 거죽은 초본류, 목본류로 빼꼼한 틈도 있을 수가 없다.길가엔 눈이 시리도록 노란 금마타리가 자주 눈에 띄었다. 특정산에 갈 때마다 주제가 될만한 꽃이 때에 따라 피는데 오늘은 좁쌀같은 작은 꽃들이 모여 작은 우산을 이룬듯한 이 노란꽃 금마타리가 한계령봉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부터 계속 눈에 들어온다. 작은 노란꽃이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 것은 수석(水石)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도 그 자연스럽고 운치 깊은 작품수준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

2시40분쯤(한계령봉을 떠난지 4시간30분이 지난 시각) 고도1410m정도의 능선봉을 지나는데 가리산리에서 올라오는 산길이 능선길과 합류한다. 가리산리를 깃점으로 한 가리봉산행이 가리봉을 보다 용이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방법일 듯하다. 오색에서 대청봉에 오르는 것이 보다 용이한 방법이듯이. 가리산리에서 가리봉산행을 할 경우 원점회귀산행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점일 듯하다.

1400m대봉을 거의 지나 내리막이 시작될 즈음 가리봉정상쪽을 보니 이제 남은 봉우리는 2개밖에 안된다.시야에 들어오는 4개의 봉우리중 맨왼쪽 봉우리는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상의 봉우리였다.
처음 시야에 들어온 주걱봉1, 2
가리봉능선은 이제 겉으론 숲이 우거져 육산인듯 보이지만 안의 골산이 겉으로 바위등걸이불쑥불쑥 튀어나온 형태로 조밀하게 솟아있어 오르고 또 내려가기가 매우 버거워진다. 그러다가 정상을 바로 앞둔 봉우리는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횡단한다. 꽤나 지쳤던지 그게 마냥 반가울 정도다.그러다가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가리봉능선의 백미인 서쪽능선들이 보이는 바위틈 조망이 나타난다. 그 틈사이에 우람한 암봉 주걱봉과 정상서쪽의 능선과 봉우리들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이 그림을 마무리를 하듯 맨 뒤에 삼형제봉이 우뚝하다. 아마 가리봉의 이 그림은 전국의 모든 산그림중에서 바위능선이 아닌 산그림으로 능선과 봉우리의 아름다움으로 짜여진 최고의 조망이 아닌가 싶다. 물론 봉우리들은 따지고 보면 육산은 아닌 골산봉우리들이다. 하지만 봉우리가 둥글둥글한 게 육산 봉우리처럼 보인다. 줄잡아 6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내딴에는 전국의 여러산을 오른다고 올랐으나 이처럼 감동적인 그림을 다른 산에서 본 기억이 없다. 산 사진을 취미로 찍어온 나로선 가장 흥분된 장면을 앞에 두고 있는 셈이었다. 오늘 날씨는 이내가 짙어 풍광이 선명하지 못한 점이 있다. 그래도 그 아름다움은 발군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1401m에 이르는 거대한 돔형 바위봉우리인 주걱봉을 위시하여 그 뒤에 꿈속처럼 돌올하게 솟은 삼형제봉, 주걱봉 그늘에 숨겨진듯하지만 예리하게 솟은 봉우리와 주걱봉으로 가는 길에 솟은 작은 봉우리들이 봉우리잔치를 벌이고 있다. 공룡능선을 한일자로 세워놓고 본 숨막히는 경관..그것이 비쭉비쭉 하늘을 찌르는 바위봉우리들의 잔치라면 가리봉의 그것은 끝으머리가 동글동글한 봉우리들의 잔치라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정상 동쪽의 능선봉들, 꽃정향나무의 꽃, 정상
가리봉 정상은 정상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말목에 새긴 산이름은 중간이 꺾이어 토막난채 쓰러져 있다. 요즘 웬만한 산에 가도 오석(검은돌) 산명비 아니면 거석 화강암으로 우람하게 글을 새긴 산명비가 얼마나 많은데 이 아름다운 풍광이 주위에 널려있는 산에 버젓한 산명비하나 없다. 한편 생각하면 없는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주위의 바위를 깎아 산명비를 세운들 산에 흠집이나 내지...정상은 서북능선쪽만 짙은 관목숲에 뒤덮여있고 나머지는 모두 바위로 되어 있다.

정상에 가면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정상서쪽에서 느아우골 갈림길까지 가리봉능선의 백미를 이루는 경관이 기다리고있으므로 시간이 적지않게 걸린다.(물론 조망을 즐기며 경치를 촬영하면서 내려온 탓이겠지만 정상에서 느아우골 갈림길까지 2시간 20분이나 걸렸다. 이런 능선에서 속도를 낸다는 것은 일몰전에 느아우골을 빠져나가야 한다든지 하는 목적이 없는한 의미가 없다.)그리고 작은 봉우리이지만 오르내려야 하는 봉우리도 있다. 봉우리사이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조망을 즐기는 일도 가리봉인만치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언제 다시 올라올지 몰라서이기도 하여 더욱 그렇다. 가리봉산행을 한지 10년이 넘은 뒤에야 오늘 다시 산행할 수 있지 않았는가? 처음 가리봉산행을 할 때는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은 디지털카메라가 나온지 벌써 10여년이 되지 않았나? 그동안에 가리봉에 오고싶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쉽게 올 수 없었던 것은 첫번째는 교통편의 번거로움, 두번째는 험준한 코스였다. 이번 산행의 동기중의 하나는 디지털 카메라로 가리봉을 찍어보고싶다는 열망이었다. 내려가는 길가엔 정향나무며 키큰 고목들이 울창한 관목숲에 끼여있어서 밀림을 헤치고 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정상에서 로프를 잡고 내려오면 능선길이 이어진다. 정상에 가까워지기전의 1200m 고도이상의 오르막길능선의 수목상태와 비슷했다. 능선길은 더러 한쪽이 수십길 단애를 이루고 있는 곳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로프가 걸려져 있긴 하지만 가는 덤불이 있어 발디딜데가 있을 것으로 착각했다간..

내리막길의 조망

정상서쪽의 능선봉들

정상에서 장수대로 뻗은능선

주걱봉과 앞의 암봉
섬세한 작은 봉우리도 하나하나 조심조심 밟아가면서 뒤돌아보면 정상은 순식간에 푸른 하늘 속으로 들어가 있다. 그리고 산록엔 띄엄띄엄 하얀 둥치를 드러낸 고사목들이 고산의 풍취를 깔끔하게 설명해주고있다. 이 무렵의 산행은 주걱봉으로 접근하는 즐거움과 흥분속에 빠져들어가는 순간이다. 주걱봉앞의 암봉도 서서히 더 뚜렷한 윤곽을 드러낸다. 주걱봉의 품에서 밖으로 나오려한다. 정상에서 장수대방향으로 뻗은 능선의 능선봉들도 차근차근 고도를 낮추면서도 정상부분이 둥글둥글한 가리봉의 "룰"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주걱봉과 그 앞의 돌올한 암봉을 남겨놓고 오를 수 있는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기전에 계곡을 내려다보는 틈새 전망대가 있다. 내려다보이는 계곡은 가리산골이다. 옛날에 멋도 모르고 이 계곡으로 가리봉을 오르겠다고 들어섰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한시간 정도 들어가다가 되돌아섰던 것 같다.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돌리면 지금 올라가려는 봉우리와 주걱봉앞의 첨봉, 그리고 주걱봉이 솟아있고 올라가려는 봉우리와 주걱봉 사이에 끼여 있는 삼형제봉이 멀리 보인다. 다이내믹한 전망이었다.
봉우리틈새전망대에서 나와 봉우리로 올라와서 숲속을 걸어가는데 가리산리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노란색 방향판이 나무에 붙어있다. 이곳은 주걱봉 아래쪽에 도달하기 전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차편만 있다면 느아우골의 여건을 생각해 그냥 내려가는 게 고생 안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만일에 산행을 끝내고 산아래마을의 민박집에서 하루밤 묵고 갈 생각이라면 가리산리로 내려가는 것이 매우 편리할 것 같다. 이때가 정상에서 내려온지 40여분쯤 된 5시 3분경이었다. 주걱봉 앞에 바싹붙어 서 있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던 암봉이 주걱봉과 완전히 분리되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이 암봉의 장수대방향은 90도에 가까운 절벽이지만 반대쪽은 50도정도의 다소 완만한 경사로 울창한 숲이 우거져있다. 그러나 그 아래쪽에 가리봉에서 가장 어려운 로프횡단지점이 있다. 올라가기 가파른 바위를 옆의 나무를 붙들고 올라가면 단애아래를 로프로 이은 곳이 내려다보인다. 지난번 지나갈 때는 아래는 보지도 않고 지나갔어도 아찔하다는 생각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이번에 보니 발을 디딜 데가 있어서 로프를 잡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어렵지 않게 단애아래를 횡단할 수 있게 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험지대를 지나 주걱봉이 올려다보이는 두 봉우리사이의 틈새로 나왔지만 주걱봉을 완벽하게 볼 수 있는 지점은 아니어서 실망스러웠다.
겹쳐보이던 주걱봉과 앞의 암봉이 따로 보인다.

틈새전망대에서 올려다본 주걱봉
그래도 주걱봉과 앞의 암봉사이의 틈새지점이 최근거리지점에서 주걱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주걱봉에다 길을 내어 아무나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만든다면 대박이 될 수 있을까? 바위를 깨부수지않고 환경을 보존하면서 만드는 기술과 정신이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런 환상을 가지는 것은 주걱봉에 한번 올라가봤으면 싶어서이다.

느아우골 길은 주의해야..특히 장마철에는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

이제 주걱봉의 남쪽 바위뿌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삼형제봉능선으로 내려간다. 이 길이 가리산리 방향이어서 혹시 그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고(6시가 넘었는데 햇살이 정면에 비치니 엉뚱한 데로 간다고 생각했던것) GPS로 확인해보니 느아우길이 갈리는 삼형제봉능선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 틈새전망처에서 떠난지 35분만인 6시22분 느아우골삼거리에 닿는다. 이때쯤 물이 완전히 떨어져 느아우골로 내려가는 길을 재촉한다. 250m쯤 내려가니 개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물맛이 그럴 수 없이 좋다. 손바닥이 시릴 정도다. 하지만 느아우골에서 가장 기분좋았던 것은 이때뿐이었다. 허물어지는 흙위에 붕 떠있는 거석을 비롯하여 계곡이 온통 난장판이었다. 길은 휩쓸려가버린지 오래고 토사와 암석이 되는 대로 뒹굴거나 평탄하던 토사길이 단애처럼 확끊어져 버리거나 깊이 함몰하여 자신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절대로 눈을 떼서는 안되었다.개울은 숲 가장자리를 쓸고 내려가 숲아래 토사가 무너져내릴 듯한 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산행한 사람들이 이런 개울에서 나와 숲속에 길을 내려고 애쓴 흔적과 리본이 더러 있어서 적어도 1km정도는 그런 길로 내려온 것 같다. 하지만 숲속은 덩굴나무가 많은데다가 너덜지대까지 겹쳐있어서 그 역시 쉽지 않았다. 느아우골을 완전히 빠져나온 것은 캄캄해지기직전인 8시 18분 경이었다. 2.5km 가까운 계곡을 빠져나오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이다.
장수대에서 바라본 주걱봉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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