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4. 15:16

2006-01-22
계방산 1577m 눈이 적은 올해에도 눈의 산 계방산, 기본 적설량으로 겨울산꾼들을 끌어모으다


사진: 노동계곡위쪽 주목지대의 주목

계방산관련

심설산행 대상산으로 주로 찾는 산은 태백산, 함백산, 계방산, 명지산, 덕유산, 지리산, 백덕산, 치악산, 화악산 등이었다. 올해 명지산 이후 두번째 심설산행 산이었던 치악산은 기대에 영 못미쳤다. 강원지역에 눈다운 눈이 오지않은 탓이 주원인이다. 요즘 며칠 날씨를 보니 동해안지역 강릉과 속초, 울진등지에 눈발이 흩날리는 듯하여 계방산으로 가기로 한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계방산으로 몰렸고 1월하순으로 접어든 이번 주말 계방산은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겨울산행의 재미는 이미 산꾼들에게 속속들이 파급된 듯하다. 이제는겨울 명산을 목표로 전국에서 모여든다. 계방산, 치악산이 그렇고 오대산, 설악산은 물론이고 태백산, 백덕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유감스럽게도 쌓인 눈이 적다. 계방산 정상에서 오대산을 포함하여 주변산을 조망해보니 해발 800 내지 900m를 기준으로 하여 그위의 산록에 횟가루를 조금 묻혀놓은 듯한 빈약한 설경이다. 예년에는 계방산은 물론이고 소계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오대산에서 이어져오는 한강기맥 능선 모두가 심설에 뒤덮여있었는데 올해는 영 아니다. 옛날 처음 계방산으로 가던 날은 엄청난 눈이 쏟아진 날 다음날이었는데 운두령에서 2km쯤 진행한 안부에서 100m 가는데 30분이 걸릴 정도로 더디게 산행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눈이 깊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러나 노동계곡으로 들어가는 겨울풍광은 그럴 수 없이 수려하다. 비록 날이 건조하여 설화나 무빙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태초의 하늘이 그랬을 것처럼 파란 하늘이 있고 그아래 희끗희끗 눈덮인 산록과 능선이 있고 군데군데 푸른 송림이 있는 산자락이 투명한 대기속이어서 그런지 싱그럽기만 하다.

사진: 노동골로 들어가며 바라본 주능선 스카이라인.

심설기에 계방산을 여러번 찾았지만 올 때마다 걱정스러운 것은 노면상태이다. 요즈음은 염화칼슘이 흔해져 눈만 오면 길바닥에 뿌려 주행조건을 평상적인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됐다. 하지만 10여년전 어느해 겨울 집안사람과 계방산을 찾았을 때는 어찌어찌해서 운두령까지 올라가 산행을 한 것은 다행이었으나 아랫삼거리부근에 내려왔을 때는 길바닥이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길가 산모퉁이를 들이받은 차도 보였다. 누가 밖에서 조금만 밀어도 차가 나동그라질 만큼 미끄러웠다. 다행히 사고없이 돌아왔지만 계방산에 갈 생각을 하면 그때의 아찔한 하루가 머리에 먼저 떠오른다.
오랜만에 겨울 계방산을 찾아온 날 금년(2005년말과 2006년초)에 눈이 적게 오기도 했지만 삼거리까지의 길은 깨끗했다. 길옆에 눈은 그대로 덮여있었지만 길위에 얼음이 얼어있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그러나 주차장(아랫삼거리)은 빙판이다.
오늘은 이승복생가를 지나 노동계곡으로 가서 정상으로 간 다음 상당히 긴 남쪽 능선을 타고 내려올 생각으로 주차장을 떠난 것은 10시 50분쯤.
노동계곡으로 가는 길은 옛날에도 있었지만 비포장도로였던 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번듯한 길이 생기고 노동계곡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넓은 주차장까지 자리잡고 있다. 이승복생가가 개발된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풍경은 참 격세지감이 있다. 사람들은 운두령에서 산행을 시작, 정상을 지나 노동골로 내려오는 것으로 산행을 끝낸다. 버스가 운두령까지 올라갔다가 노동골 바로 아래의 주차장으로 와서 내려오는 산꾼들을 싣고 나오는 식이다. 계방산을 이런 식으로 산행하면 정말 쉽게 산행하는 셈이다. 운두령은 1089m이고 정상은 1577m이니 488m만 올라가면 된다. 능선도 별로 길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노약자급의 산행자도 보이는 듯하다. 노동계곡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버스주차장의 해발 높이가 780m내지 800m 이므로 770m내외의 고도차만 극복하면 된다. 아무래도 운두령쪽으로 산행하는 것이 편하기는 할 것이다. 운두령에서 올라가면 급경사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급경사가 있지만 대체로 평탄한 능선, 밋밋한 안부도 있어서 산행하기가 좋은 편이다.

사진:낙엽송숲길

노동골 길목의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얼음으로 덮인 곳이 많아 노동골밑의 주차장까지 가려면 경험이 적은 운전자는 돌발상황에 대비해야한다. 걸어가는 것도 쉽지않은 곳까지도 보일 정도로 미끄럽기 때문이다.
노동골로 들어가는 길가 풍경은 계방산아래 동네의 정갈하고 수려한 겨울인상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하늘은 푸르고 들판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고 산은 청솔지대, 갈색의 활엽수 지대, 황갈색의 낙엽송지대로 뚜렷이 나뉘는데 일견 평범한 것 같지만 계곡평야에 흰눈이 덮여있어서 그런지 요란하지 않은 색채들이 극도로 화려해보인다. 찬란한 겨울! 이런 단어가 뇌리를 스친다. 개울은 모두 얼어 질펀한 빙판을 이루고 있고 그 옆의 나무들은 갈색일변도이거나 뒷배경의 산능선과 하늘의 경계선의 대조적인 색채미의 조화같은 것이 평범할 수도 있는 이 겨울 그림을 명장이 그린 값비싼 그림을 만난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이승복생가부근의 경치는 한장의 엽서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 초가와 송림과 석축과 바닥의 흰눈과 푸른 하늘과 낮아지는 능선과...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이런 풍경이 하나의 작품인양 뇌리에 각인되는 것은 주위를 빛내주는 유리알같이 맑게 빛나는 무비(無比)의 청정한 대기 때문일 것이다. 몇년전 국지산(영월)에 산행할 때도 그랬었다. 산도 좋았지만 정작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산에서 내려와 동네 부근의 낮은 언덕과 언덕위의 송림과 하늘이 이룬 한 장면이 잊혀질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된 적이 있었다. 해맑은 봄햇살과 푸른 하늘은 세상이 달라져 보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은 적이 있다.
널찍한 버스주차장을 빠져나와 노동골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서서 한결 비좁아진 눈덮인 계곡길을 걷기시작한 게 11시 39분께. 산행을 시작한지 50분이 되었을 무렵이다. 길가 개울은 범람한 수위쯤에 빙판을 이룬채 청빙의 파르스럼한 빛깔을 띠며 반들거리고 있다. 길이 노동계곡으로 꺾이어 들어가면서 계방산 지능선들의 스카이라인이 시야에 들어온다. 겨울산 그림의 클래식 버전이 거기 있었다. 하얀 눈이 덮인 산길은 바닥을 빛내고 코발트 블루의 하늘은 눈썹위의 모든 공간을 그득채우며 흘러넘치며, 중간산록은 눈이 희끗희끗한 스카이라인아래로 청솔숲과 갈색나목숲이 적당히 믹스된 정갈한 캔버스를 만들고 있고 하얀 길가에 억새줄기가 노랗게 우거져 흰눈과 어울어져 산길을 더욱 정감있게 채색하고 있고 그옆에 유난히도 싱싱한 솔잎들이 빛나는 소나무들이 서 있어서 내 생각으로는 하나의 걸작그림이 완성되는데 정말이지 겨울산의 산자락에 이런 풍경이 없다면 그게 겨울산이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것 같다. 속에 남루한 생각, 비루한 욕망들이 많아선지 이런 풍경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순결하고 지순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져 잠시 서서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더구나 도시주변의 산에서는 여간해서 보기 힘든 광경이기도 하니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이번엔 울창한 낙엽송숲이 나타난다. 아주 잘자란 낙엽송숲은 키가 굉장히 높다. 길은 하얀 눈길. 숲은 다갈색 수피의 낙엽송이라 그 아래를 오종종 걷는 나는 한마리의 작은 개미가 된 기분이다. 이때가 12시쯤. 벌써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운두령에서 빨리 걸으면 4시간이나 4시간 반 정도면 이곳까지 올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물론 사진을 찍는다든지 겨울풍경에 폭 빠져본다든지 하는 과정은 생략한다면 말이다.

계방산은 어떤 산인가? 계방산은 오대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한강기맥상의 최고봉이자 현재 남한에서 한라, 지리, 설악, 덕유산에 이어 다섯번째로 높은 산이다. (한강기맥은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다.한강기맥의 끝은 용문산과 양수리이다.) 산이 높고 백두대간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어 조망이 좋고(오대산, 발왕산, 회령봉등 가까운 산에서부터 가리왕산, 설악산, 방태산등먼산도 보인다) 북동기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겨울동안 눈이 많이 쌓인다. 계방산옆 운두령은 강원중부에서 강원북부로 통하는 요충지대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재 중의 하나이다. 계방산은 육산이지만 하산무렵에 계곡이 나와 물을 얻기 어려우므로 여름산행보다는 심설시기에 산행을 많이 한다.

산행을 처음 시작할 무렵은 맞바람이 꽤나 차가웠다. 대체로 포근해진 경기서울지방의 기온만 생각하다가는 낭패를 볼 뻔했다. 방풍의를 꺼내놓고 올뻔했던 것이다. 낙엽송숲을 지나 노동골 좁은 골짜기로 들어가느라니 길가 개울이 얼어 미끄러운 곳이 많다. 골짜기를 훑어 내려오는 바람도 매우 차가운 바람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내려온다. 12시 30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1시직전 길가 양지쪽 아늑한 곳을 골라 점심을 먹기로 한다. 희한하게 바람이 안부는 곳이고 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내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도시락을 먹으며 계방산쪽을 바라보니 하늘에 하얀 구름이 처음엔 한조각, 그다음 몇조각이 잠시 떠돈다. 푸른하늘에 흰구름! 하지만 계방산의 푸른하늘에 강제로 만들어진 흰구름조각이라 그런지 유난히 희게 보인다. 그것을 나목숲을 통해 바라보니 이 또한 깊은 인상을 주는 그림이 되어 뇌리에 각인된다. 이 정도의 구름도 계방산이니까 생기는 것일 터이다. 그 나목숲 사이로 본 그 흰 구름 모양이 푸른 창공을 배경으로 무척 아름다웠는데 그 구름을 못찍은 것이 영 아쉬웠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계방산은 물론이고 하늘구석 어디를 보아도 구름 한조각 볼 수 없는 하늘이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한 30분 좋히 올라가니 주목지대다. 길은 험해지고 바위가 많고 급경사라 고되다. 사람들이 계속 내려왔지만 좁은 길을 요령껏 쉬지않고 올라가려니 힘이 든다. 내려오는 사람들의 줄이 끝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다가는 제시간에 능선에 도착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줄잡아 300명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버스로 10대 가까이 단체산행객이 온 것으로 보였다. 작년 2월 백덕산 심설산행때보다 더 많이 온 것 같다.

사진:주목지대

그렇게 한 30분 올라가니 주목지대가 나온다. 옛날에도 분명히 이 길로 내려왔을 터인데 이곳의 주목지대를 눈여겨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겨울계방산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깊은 눈에 뒤덮인 육중하고 후덕한 육산의 산 계방산의 능선이다. 이 능선에 깊은 눈이 쌓이면 어느산보다도 아름다운 심설능선이 된다. 산록을 뒤덮다시피한 넓고 깊은 겨울의 이불.. 심설. 눈이 쌓이고 눈처마가 생기고 깊이 빠지는 러셀 안된 길가 눈웅덩이와 설화가 핀 능선의 나무들.. 그리고 눈을 뒤집어 쓴 주목이 나타나면 겨울 계방산의 가장 아름다운 볼거리의 두번째 아이템을 만나게 된다. 바로 주목이다. 수북히 쌓인 깊은 눈속에 밑둥치가 파묻힌 주목이 설한풍을 이겨내고 겨울옷을 입고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은 겨울풍경의 백미다.
하지만 오늘의 주목은 겨울풍경속에서 보던 왕년의 겨울주목이 아니다. 잎을 짓누르는 눈덩이도 없고 둥치를 감싸듯 하는 서릿발이나 얼음과 눈이 언 채 줄기에 붙어있는 광경도 볼 수 없다. 그래도 주목지대가 나오니 가슴이 다 시원해진다. 주목지대를 올라갈 때 많은 사람들이 내려와서 호젓한 주목숲의 아름다움을 완상할 겨를은 없었다. 그러나 나무를 촬영하면서 수형이 수려한 주목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가지가 얼기설기 얽힌 나무가지가 우산처럼 펼쳐져있는 광경도 볼만하지만 분홍색이 도는 수피가 나란히 골을 지으며 위로 죽죽 뻗어올라간 게 주위의 흰눈을 배경으로 빛이 살아난 것도 보기 좋다.
사진:상-정상에서 오대산조망 중:능선길 신갈나무 하:능선봉에서 본 정상
나무가 수피를 중심으로 크지 수피안에 별다른 내용물이 없는(즉 심재가 없는) 주목이 적지않은 것은 아무래도 아쉽다. 주목으로 만든 바둑판이 바둑판의 최고품질이라고도 한다는데 그런 주목을 보기가 쉽지않다는 것이 최근에 보아온 주목들의 현실이다. 속이 빈 주목이 많은 것이다. 주목들이 우리 자연환경으로부터 퇴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태백산의 주목중 장군봉부근의 주목은 볼 때마다 쇠약해지고 있는 감이 들곤 하여 오랜 시간이 지나기전에 이 나무와 이별해야 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주목밑에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주목의 짙푸른 침엽과 불콰한 수피가 주는 명쾌한 조화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닌 수형과 은은한 향기에 기인한다. "우리나무백가지"를 쓴 이유미씨에 의하면 한방에서는 주목의 잎을 말려 약으로 쓴다고 한다. 말린 잎에서는 독특한 향기가 나며 택신, 택시놀, 계피산등이 있어서 태우거나 말려 신장병이나 위장병에 쓰고 민간요법에서는 열매로 설사나 가래를 낫게 하는데 쓰고 구충약으로도 썼다고한다. 택신이라는 성분은 혈압을 떨으뜨리는 작용을 하지만 독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주목에서 항암제를 추출하는 연구가 미국등 몇개 선진국과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탁솔이라는 이 물질은 곧 약품으로 제품화 될 예정. 목재로서, 약재로서, 아니면 그냥 두고 보아도 아름다운 주목이 계방산에 적지 않은 것은 계방산만을 위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모두를 위해 좋은 것이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주목을 좋아하지만 정작 이 나무를 보호해야할 사람들이 주목의 존속에 결정적인 위해를 가하고 있다. 도벌이 그것이다.
주목지대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주능선 안부이다. 한강기맥의 안부로 올라온 것이다. 한강기맥에서 소계방산으로 지능선이 갈래져 나간 뒤 첫번째 안부이다. 안부에서 보면 소계방산으로 뻗은 능선과 소계방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골짜기의 한계에 갇혀있던 답답한 시야는 일거에 확장된다. 안부에서 5분도 안걸리는 서쪽봉우리에 올라서면 계방산 정상의 돌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안부를 사이에 두고 동쪽에 솟은 봉우리에서 소계방산으로 지능선이 뻗어나간다. 안부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500m. 아랫삼거리에서 노동골아래 버스주차장까지 오면서 이건 너무 동쪽으로 빠지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실제로는 동북방향으로 진행함으로써 정상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았고 노동골로 들어선 뒤엔 오히려 정상에 근접하는 방향으로 안부까지 올라온 셈이었다. 그래서 봉우리에서부터는 애써 빠른 걸음으로 걷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봉우리에서는 오대산일대가 훤히 시야에 들어오는 등 동,남,북 세방향의 조망은 막힌 곳이 없다. 능선은 방금 수백명이 훑고 지나간이 먼 옛날이라도 되는듯 조용하고 햇볕은 설릉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3시를 넘어선 이 시각부터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정상에 머물고 있는 4명의 등산객이 마지막으로 본 사람들이었다. 이들도 운두령으로 내려간 뒤 정상에는 계방산에 들어선 이래로 처음 정적다운 정적이 찾아왔다. 3시 10분에 계방산 정상의 상황은 종막을 고한 셈이었다. 더 이상 올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생각보다는 빨리 상황이 끝난 셈이었다.
하산길은 남릉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계방산에서 가장 긴 능선이다. 직선거리로만 5km정도는 충분히 되는 길이의 능선일 것이다. 옛날에 이 능선으로 내려가다가 운두령큰길의 중간쯤으로 빠진 적이 있지만 오늘은 이 남릉능선을 끝까지 내려가볼 생각이다. 그때 가이드가 아마 능선을 계속 가다보면 시간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던 모양이다. 오후의 햇볕이 쫙 깔린 순한 능선길은 걷기에 좋고 서쪽으로 보래령, 회령봉, 동으로 오대산으로 뻗어가는 한강기맥능선을 바라보는 조망에다 용평 발왕산의 스키장도 아득히 보이는 조망이 좋아 그동안 시끄러웠던 계곡길에 비하면 이제야 제대로 등산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능선의 수목은 거의가 신갈나무였고 수령도 얼마 안돼 보였다.(산불등 이곳숲에 큰 일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는 얘기가 될듯하다) 숲사이로 계방산 정상을 바라보면 정상은 아주 후덕하고 밋밋한 육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멀리서도 돌탑이 또렷이 보였지만 계방산에 몇번 오르기까지는 저런 돌탑이 없었던 것이 상기되어 온다. 능선에는 눈처마가 거의 안보였지만 전나무숲이 있는 능선 중간부쯤에 겨우 눈처마가 보일 정도로 적설량이 적었다. 정상에서 이능선을 완주하여 아래삼거리 주차장까지 내려가는데는 3시간이 걸렸다. 숲이 없어지고 반초원지대가 되는 중간능선에서는 조망이 툭 틔어 기분이 좋았다. 능선도 길면 온갖형태의 풍경을 즐길 수가 있다. 신갈나무지대, 전나무지대, 좁지만 귀중한 초원지대등등...하지만 눈이 쌓인 능선에서는 걷기가 좋았으나 내려갈수록 눈이 적어지고 정남방향인 탓으로 눈이 녹아 흙길이 돼있는 곳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나 걸어가기가 좋아져야 정상인데 이 흙길이 문제였다. 표면에는 흙이 덮여있지만 표면아래는 완전히 얼어있었던 것이다. 낮에는 눈이 녹아 질퍽거리지만 기온이 내려가면 그 즉시 빙판으로 변하는데 문제는 표면이 흙으로 덮여 아래가 빙판인지 아닌지 짐작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런 상태의 길을 적어도 한시간 가까이 걸어내려오느라 진땀을 뺀다. 아이젠의 날이 무디어져 있는 경우엔 일직선으로 미끄러질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하는 곳이다. 중년이상의 연령층도 많이 찾는 산이므로 미끄러지면 중상을 입을 수도 있다. 정상에서 3시 10분경에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급경사를 내려서서 주차장으로 오니 6시18분이다. 이제 막 땅꺼미가 내려앉고 있다.

큰지도

큰지도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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