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3. 16. 02:02

동트는 공룡능선-범봉

신선봉에서 대청봉을 보며..

용아장성, 그리고 귀때기청봉의 아침.

1275봉. 공룡의 험로중 하나..

공룡능선. 1275봉옆으로 마등령을 보며..

에델바이스


나한봉으로 가며 바라본 공룡능선




전날 오후 늦게 신선봉에 와서 운무와 희롱하는 공룡능선의 수려한 경관을 신들린 듯이 바라보고 일몰까지 찍은 뒤 희운각에서 자고 아침 일찌기 다시 신선봉에 올라 이번에는 일출을 본다. 이게 제아무리 신바람 나는 일이고 사서하는 고생이라고는 해도 피로가 누적되는 일임에는 분명했다. 게다가 카메라와 캠코더, 삼각대까지 매달고 공룡을 넘는다는 것은 단출한 차림으로 암릉을 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마등령에 가까운 나한봉을 옆에 두었을 때는 거의 모든 팀이 지나나고 나혼자 외톨이로 쉬엄쉬엄 공룡을 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한봉 직전의 암봉에서 쉬기도 할 겸 배낭을 벗는데 정적이 귓속으로 맹열하게 후벼들기 시작했다. 이날따라 무척이나 시끄럽게 설악상공을 휘젓고 다니던 헬기소리가 잠깐 멈춘 사이였다. 정적은 정적이로되 매우 시끄러운 정적이었다. 조용히 들으면 그 속엔 온갖 소리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 정적속에는 설악산의 무수한 생명의 음성들이 혼재해 있었다. 그리고 그속에는 물론 그 환상적인 노래소리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설악산 산행로에 돌길을 까느라 돌무데기를 달고 설악상공을 휘젓고 다니는 헬기소리가 잦아지면 노래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산길에서 여러종류의 새가 부르는 노래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정한 이치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 소리를 녹음하려고 열심히 캠코더를 돌렸지만 제대로 기록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헬기소리가 좀 멀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헬기 소음속에서도 줄기차게 들려오는 노래소리의 주인공이 대견할 따름이었다.
그때 내 나름의 생각으로는 그새의 노래소리가 아름다운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공룡의 변화무쌍한 능선, 수려한 암봉들, 암봉사이의 푸른숲, 가야동계곡의 수해를 방불케 하는 울창한 숲, 그밖에 온갖 형태의 바위, 암탑, 첨봉이 임립한 천불동계곡을 내려다보면서 숲과 바위 사이를 이동하며 부르는 노래소리가 오죽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노래소리의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마등령을 거쳐 희운각쪽으로 가는 장년의 산행객 한분이 불쑥 바위틈사이로 나타나길래 "저 새 소리가 들리는가"하고 물어보았다. 그도 그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어보곤 "아! 아름다운데요." 한다. 우리는 그 새소리를 매개로 하여 한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강원도분이었고 설악산에 자주 온다고 했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단지 산길에서 만났을 뿐인데 마치 오래사귄 지기처럼 어런저런 얘기를 꽤 오래 했다. 그는 마등령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마치 신작로를 걷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작년에 1275봉뒤에서 침랑없이 비박하다가 저체온증에 걸릴 뻔했다고 했더니 침랑과 침랑커버만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한다. 일제 아수카란 침랑커버를 가지고 있는데 무게가 가벼워 휴대하기가 좋고 주룩주룩 비를 맞으며 잤는데도 전혀 젖지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설악산 등산로에 전부 돌을 까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렇게 10여분 얘기하다가 헤어졌다. 그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수있게 해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그 새소리덕분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걷기 시작, 이번엔 나한봉 꼭대기부근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예의 그 아름다운 새소리가 여전히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나한봉에 도착했으니 이제 힘든 곳은 다 지났다 싶어 편안한 마음으로 새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번에는 희운각쪽에서 한 젊은 산꾼이 나무와 바위틈 사이로 나타난다. 그에게도 저 새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더니 귀를 기울려보더니 아주 아름답다고 했다. 그와도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새소리 보다는 이런 저런 얘기쪽에 더 관심이 많아보였다. 그는 새보다는 사람소리를 듣고자 했던 모양이었다. 그도 혼자, 나도 혼자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분은 대청봉의 큰 상채기(대피소아래의 급경사지대가 지난번 폭우로 깊고 넓게 사태져 죽음의 계곡까지 길게 패인 것이 나한봉에서도 또렷이 보였다)는 (인공적으로)복원하기보다 자연에 맡겨두자는 것도 그의 의견이었다. 자연이 저렇게 만들었으니 그가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단한 탁견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수렴동(구곡담?)에 거대한 나무댐이 만들어져있다는 얘기도 그에게서 들었다. 작년(재작년)폭우때 거목나무둥치들이 좁은곳에 쌓인 댐이란다. 오세암으로 내려가 백담사방향으로 간다는 그를 보내놓고 마등령으로 천천히 내려가면서 생각하니 새소리가 무언가 사람들간의 대화에 문고리를 따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남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자꾸 입가에 떠오름을 느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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