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4. 13. 21:34
가평 국망봉 1168m 봄의 아련한 연두빛, 분홍빛이 1000m대까지 차올라.. 2008-04-25


위치: 경기도 가평군 북면 - 포천시 이동면




국망봉은 보통 포천 국망봉으로 불리웠지만 여기서는 가평 국망봉으로 부르기로 한다. 용소, 무주채폭포와 주능선합류시까지의 모든 계곡, 지능선이 가평쪽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쯤 어느 산에 무슨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겠지 상상하면서 그 산을 찾아가곤 하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그런식으로 산행하기에는 기름값이 너무 올랐다. 그리고 요즘은 그렇게 요란스런 봄을 보내지 않아도 봄이라는 게 꼭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우리옆에 오고야 만다는 것을, 또 꽃 한송이 가지고도 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봄이 남해안에 며칠에 상륙하여 차츰차츰 올라오던 때에는 어느 지방으로 꽃구경간다든지 하는 것이 얘깃거리가 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경향이 거의 동시에 꽃이 피고 지니 그런 낭만을 느낄 겨를도 없다.

사진:아래좌-매화말발도리, 우-산괴불주머니, 하좌-돌단풍, 우-노랑 및 흰제비꽃 | 화보


사진:용소의 물빛

국망봉은 2월말에도 찾았었다. 실제로는 덕유산에 갔다온 뒤 국망봉 정도면 덕유산 설릉이 주던 감흥을 일부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날 국망봉은 봄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았고 능선의 잔설은 하루아침에 녹아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세월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국망봉에 갔다온 뒤 기온이 곤두박질쳤고 추위는 3월말이 될 때까지도 누그러질 줄을 몰랐던 것이다.
며칠전 관악산에 가서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고 다시 국망봉을 찾는다. 국망봉도 해발 1000m능선에도 진달래가 피어 있고 1100m능선의 노랑제비꽃은 길가에 밭을 이루다 시피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정상능선의 숲은 갈색을 주조로 한 색조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나뭇가지들에도 움이 터서 새닢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니 곧 산은 연두빛으로 물들 것이다.
오늘도 무주채폭포 아래에서 출발한다. 나에게 국망봉에 봄이 왔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준 것은 용소의 물빛이다. 겨울철의 물빛과는 사뭇 다른물빛이다. 투명한 푸른 빛이 보석처럼 빛난다. 그 물빛만 보고도 목마름이 아무리 진하더라도 금방 가실 것 같은 그 무엇이 있는 듯하다. 용소를 만든 주위의 단애에 진달래가 피어 꽃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무주채폭포:바위틈에 돌단풍의 작으나 예리한 꽃윤곽을 한 희고 작은 꽃다발이 여기여기 꽂혀있다. 흔하거나 흔하지 않거나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반갑다. 벼랑위쪽엔 매화말발도리의 흰꽃이 여럿달린 가지도 보인다. 개울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면 무주채폭포골이다. 국망봉에서 흘러나오는 개울이 정다운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다. 국망봉에서 무주채폭포까지의 거리는 상당한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개울도 짧아 수량이 많은 것은 아니다. 개울은 폭포이후 바위를 타고넘어 작은 폭포를 만들거나 제법 큰 소를 만들거나 한다. 큰길가에서 무주채폭포까지는 800m정도 된다고 길가의 이정표는 밝히고있다. 이 거리는 협곡 양쪽이 높은 단애를 이룬 자그마한 그랜드 캐년이라고 생각해도 될만큼 재미있는 계곡이다. 고개를 들어 단애위쪽을 보면 소나무가 울창한 수려한 모양의 단애도 시야에 들어온다. 조금 올라가니 산괴불주머니의 큰 군락이 길바닥옆 돌밭 한쪽을 꽤 크게 차지하고 노랗게 물들어있다.
무주채폭포까지의 길은 상당히 험한 길이었으나 가평군에서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바닥에 평탄한 돌을 깔거나 계단을 만들어 접근성이 좋게 하였다. 무주채폭포는 와폭이다. 그러나 경사도가 상당히 급하다. 사실 직폭에 비해서는 볼품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높이가 상당하여 볼만하다. 정확한 높이는 몰라도 40m 안팎은 되지 않나 싶다. 하나 아쉬운 것은 폭포밑에 그럴듯한 소가 없다는 점. 와폭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물의 힘이 약화되기도 할 것이고 또는 지반구조상 소가 형성되지 못할 지형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폭포아래로 바짝 다가서서 폭포를 구경하고 폭포옆으로 난 길을 따라 폭포위로 올라간다. 폭포 위에 올라서기전 폭포중간쯤에서 바라보니 밑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달리 규모도 더욱 커보이고 물줄기도 폭포하단은 거의 일직선으로 보여 볼만했다. 눈을 들어 폭포주변을 바라보면 이 폭포가 생기기 위해 함몰한 거대한 함지박의 규모가 시야에 들어온다.
폭포위에 올라서기 직전 왼쪽 단애위로 넘어져 있는 나무가 보인다. 나무아래 단애는 절리가 복잡한 바위가 어그러진 균형을 겨우 유지한 채 힘들게 버티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나무가 넘어진 것은 바위가 균열하여 상당부분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곳은 겨울에 지하수가 흘러나와 빙판을 이루기 때문에 올라가기 힘든 곳임을 적설기때 올라가며 경험한 적이 있다. 이곳일대가 위험한 것은 길 오른쪽 아래가 바로 폭포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굵직한 밧줄난간을 만들어 올라가기 편리하도록 한 것은 좋으나 위에서 말한 단애일부의 붕괴가 언제 일어날지 모를 정도로 여겨지는데 당국 여기에 대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여기를 지날 때는 급히 지나갔다. 위에서 보니 아래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위험해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폭포위에서 폭포아래쪽과 건너편 석룡산 중턱을 바라보는 경관은 아름답다. 그런데 폭포 주변에 진달래가 피어있고 나뭇가지의 새닢이 허공에 아른거리는 연두빛 투명한 빛으로 흔들리고 있어서 이 때가 여기서 보는 경치중에서 가장 볼만한 아름다움을 선사할 때가 아닌가 싶다. 폭포위 대단애 옆에 꽃이 피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터이니까 말이다. 단애끝에 하얀 돌단풍꽃도 보인다. 사스레나무 흰 둥치옆의 진달래가 듬성듬성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 뒤로 협곡의 일부가 눈길속에 펼쳐지니 볼만하다.

폭포에서 국망봉 정상쪽으로 가는 길은 반 너덜지대를 닮은 돌밭길이 많다. 이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데다가 길마저 돌길이어서 길가의 작은 제비꽃도 발길질에 밟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살아 있는 산길의 모습을 유지한다. 길가 흙사면엔 낙엽의 켜를 뚫고 나오는 초본류의 줄기가 장난이 아니다. 숲바닥이 금방 초본류로 뒤덮이는 것은 시간문제다. 산길주변의 숲은 연두빛 아련한 투명한 안개로 살풋 마감질을 한 요지경속처럼 보인다. 빗방울이 듣다가 환희 햇빛이 비치니 숲사이에 하얀 꽃을 피운 산벚꽃나무가 시선을 끈다. 연두색 투명 바람속에서 하얀 훌쩍 키가 큰 하얀 산벚꽃나무가 여기저기 그 나름의 하얀 바람을 일으키며 숲의 한쪽을 밝히고들 있으니 숲의 감흥이 이른봄 한낮 한 절정을 이룬 느낌이 든다. 길가에서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하는 개울은 바위옷이나 이끼가 파랗게 끼여 빛깔이 선명하다. 이런 길을 가고 있으면 인공적으로 가꾼 일본식 정원이 생각난다. 자연의 한부분을 집에다 재현하려고 하는 사람의 안타까운 집념에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여기 이렇게 걸으면 한없이 보고싶은 값진 정원의 요소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데 굳이 집에다 돌몇개를 가져다 놓고 자연을 가장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산으로 다니다 보면 소유의 개념이 없어지나 보다.


사진: 너럭바위위를 흐르는 개울

경사가 적당히 있는 길다란 너럭바위위를 신나게 미끄러지다가 작은 폭포로 소안에 떨어지는 개울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물길은 미끄러운 검은 물때가 덮인 바위위를 매끄럽게 흘러간다. 흐름 옆으로는 이끼가 유난히 파랗고 낙엽도 더러 덮여있다. 옆에 가서 보면 너럭바위 위쪽에서 물길이 두가닥으로 나뉘어 방향을 달리하여 흐름을 알 수 있다. 보이지 않았던 물길에는 물이 적게 흘러내려가지만 골은 조금 더 깊다. 수량이 적은 물줄기가 바위를 더 파내려간 셈이다. 어쨌든 이런 물때와 이끼로 덮인 바위 하나와 개울물을 가지고 정원을 만들었다고 생각해보라. 자연의 숨결과 눈맛으로 따지자면 세상의 어떤 정원보다도 탁월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망봉 무주채골이 특별히 아름다운 계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자연 그대로의 정원은 우리를 청정함의 궁극적 수준이 어떤것인지를 충분히 일깨워준다. 그길로 국망봉의 복부깊은 곳에 다달았다 싶으면 개울을 건너 왼쪽 경삿길로 올라가는 길로 들어선다. 조금 올라가면 경사가 급해지면서 지능선길로 올라선다. 나무 둥치사이로 새닢이 나온 활엽수들의 연두색 투명한 파노라마가 햇볕속에 반짝인다. 새닢은 어떤땐 꽃처럼 아름다워보이기도 한다.
급경사를 오르면 오른편 어깨 쪽으로 둥그런 스카이라인을 가진 국망봉이 보인다. 낮은 능선에서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지만 올라갈수록 곡선은 예리해진다. 돌아보면 내려다보이는 산록은 이제 갓 두서너그루 조금 더 진하게 물들기 시작한 나무들이 있어서 갈색숲의 바다에 컬러가 돌기 시작한다. 연두빛 활엽수의 색깔은 갈색바탕의 숲 캔버스안에서 아주 곱다. 진달래나무의 꽃이 옆에 있으면 보기가 더욱 좋다. 하얀 수피의 사스레나무에도 새닢이 움트고 있다. 이 급경사 지능선길은 국망봉 제2봉(1160m정도된다)격인 헬기장이 있는 남봉으로 직접 연결되는 능선이다. 겨울에는 그냥 올라가기 힘든 능선이다. 그 능선에 진달래가 피어 연분홍 투명한 막을 둘렀다. 이곳 진달래는 커다란 나무에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성기게 꽃이 피어 있다. 그래서 꽃들이 시야를 방해하는 일은 없다. 급경사를 올라 능선턱위에 올라서면 거의 1100m를 넘는 고도위에 올라선 격이 된다. 작은 봉우리에 서면 헬기장이 있는 다음 봉우리가 저만치 다가서 있고 국망봉은 뾰족할 정도의 봉우리로 멀지않은 곳에 솟아있다. 길가에 노란 제비꽃이 피어있다. 거의 길을 따라 벨트를 이루다 시피하고 있다. 노란 제비꽃 군락지대라고 할만하다. 그런 벨트는 헬기장이 있는 남봉까지 계속되었다.
헬기장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로 한다. 지난 2월말에서 이 헬기장에서 본 두더지가 보이나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는다. 헬기장 주변은 여름에 온갖 꽃이 피는 야생화천국이다. 이미 줄기와 촉이 빽빽히 올라오고 있어서 아무렇게나 앉을 수도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국망봉정상을 바라보면 아직도 갈색천지일 뿐이다. 등받이에 따뜻한 햇살이 감미롭다. 주변의 땅바닥을 자세히 보면 두더지가 나돌아 다니는 것이 초본류에 유익할 것이라는 짐작이 들게한다. 흙을 들쑤시고 다니니 구근에 공기를 공급하는 효과에다 배설물은 비료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용소의 물빛.
무주채폭포위 풍경
산벚꽃이 바람에 휘날리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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