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11. 07:17
국망봉- 1168m
위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 가평군 북면
모처럼의 심설산행 다운 심설산행. 겨울이 익기를 기다려야..무주채폭포길은 위험 

2006/2/12

사진:한북정맥. 국망봉에서 도마치로 가는 길. 뒷봉우리가 신로봉

|한북정맥|



오늘 국망봉(경기도 가평군 북면 - 포천군 이동면 경계)에서 똑소리나게 제대로 된 심설산행을 했다. 치악산, 계방산, 태백산등 눈이라면 할말이 많은 산들을 전전하며 심설의 환상을 찾아 헤매었건만 예년의 반도 안되는 적설 때문에 실망만 안겨주었던 심설산행이 국망봉에서 그동안의 허전했던 심설산행의 아쉬움이 일거에 다 채워줄줄이야 미처 몰랐다.
물론 국망봉이 다른 산 보다 특별히 적설상태가 좋았던 것은 가장 최근에 산행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제대로 된 심설산행을 하려면 술이 익어야 술맛이 좋아지듯 겨울도 익어야 산맛이 좋아진다는 것을 왜 몰랐던고... 눈이 쌓이기를 기다려야 재미있는 심설산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느 산이든 2월말은 되어야 적설량이 수준에 도달한다. 이번 겨울에는 일부지방에 12월에 엄청난 눈이 쏟아지면서 때도 되지 않은 터에 그동안 눈이 많았던 산들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만 생긴 탓도 클 듯하다.
국망봉 산행이 희열을 안겨준 것은 아무도 가지 않은 계곡과 능선의 심설을 처음 밟는 고행의 성취때문일 듯도 하다. 계방산이나 치악산이나, 태백산에서 산꾼에게 이런 희열을 안겨줄 아무도 안다니는 새로운 코스같은 것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명지산도 누구나 다니는 코스 이외에 발자국을 보기 쉽지않은 코스가 몇군데 있다. 익근리계곡의 사향봉 코스와 상판리쪽의 아재비고개 코스이다. 러셀안된 눈, 초설에서부터 엊그제 눈까지 다 쌓여있는 눈을 처음 밟으려면 이런 코스에 붙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려면 쉽게 산행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는 안된다. 그리고 실제로 겨울에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코스를 택하여 산행하기는 사실 어렵다. 이런 코스에서의 산행에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바람에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눈때문에 코스가 심설에 덮여버리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눈속에서는 길을 잘못 들면 작은 실수일지라도 돌아오는 보상은 크다. 겨울이라 잘못을 만회할 시간이 없다. 또 옛날과는 달리 이런 코스에는 등산로 아님이라는 팻말이 붙어 산행을 막고 있는 경우가 있다. 지자체(地自體)에서 세운 팻말은 대개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도에 세워진 것일 때가 많다.
사진:서봉 헬기장에서 본 국망봉과 정상에서의 북쪽조망.신로봉 뒤로 도마치봉과
백운산, 그 뒤에 가물가물 회목봉이 보인다
국망봉의 무주채폭포코스는 폭포옆에 펜스를 치고 자물쇠를 채어놓아 접근이 어렵다. 그러나 자물쇠를 채어놓은 것은 옆의 용소 때문인 듯하다. 용소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커다란 소인데 지금 얼음이 덮여 있어 자칫 모르고 얼음을 밟았다가 꺼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사고가 나게 되어 있다. 더구나 가평천계곡에서도 가장 먼 곳에 위치하므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도 어렵다.
이 용소이외에 무주채폭포 코스가 폐쇄될 이유는 없어보인다. 폭포위로 돌아 올라가는 코스에 지하에서 스며나온 물이 청빙이 되어 길을 뒤덮고 있어서 산행이 어렵게 되어 있다. 얼음이 없어도 길 아래쪽에 높이 55m의 무주채폭포가 있어서 조심스러운 곳이었는데 엄청난 두께로 청빙이 얼어 길위는 물론 부근일대를 얼음바다로 만들어놓고 있어 기존 코스를 밟을 경우 미끄러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점은 인정되지만 아래쪽으로 조금만 우회하여 바위지대를 타고 오르면 이 지역을 통과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험이 많은 조금 노련한 산행객정도는 되어야만 안심하고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산행자가 초보자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바로밑에 빙폭이 보이고 딛는 바닥이 얼어있기도 함으로써다. 단체산행객들도 가이드의 지도와 최소한 보조자일 정도는 있어야 안심하고 이 지격을 통과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는 코스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많고 사고가 안날 가능성이 오히려 적은 히말라야의 산들을 오르는 것은 모두 금해야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폭포위쪽의 코스구간을 빼면 주로 계류를 따라 올라가는 이 코스의 첫부분은 상당구간동안은 코스가 평탄하여 산행하기가 쉬운 편이다. 계곡안으로 깊이 들어와 계류를 건넌다음 지능선에 붙어 올라가는 길은 주능선에 접근할수록 힘들어졌다. 경사가 급하면 아이젠 신은 발이 자꾸 미끄러졌다. 세 걸음에 한 걸음 정도는 미끄러지는 일이 반복되면 온 몸에서 기운이 쪽 빠지는 듯한 감이 든다.
눈에 뒤덮인 길에는 새눈이 오기 전에 오르내렸던 사람들의 러셀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서 그것을 따라가면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그 자국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20cm정도는 더 깊은 눈속에 발이 푹 빠지곤 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에 불려온 눈이 길을 뒤덮는 현상 때문에 길과 길이 아닌 곳의 차이가 없어지곤했다. 주능선에 올라서기 전의 마지막 30분간은 스틱을 찍으며 균형을 잡는 것 만으로는 부족해 나무를 붙잡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경사가 급했다. 그리고 적설량도 점점 깊어진다. 가끔경사가 완만해지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국망봉-신로봉 능선의 호방한 스카이라인을 바라보곤 한다. 아침에 가평천계곡으로 들어서서 국망봉일대가 산사이로 보일 때 마침 무빙에 하얗게 뒤덮인 개이빨산 국망봉 언저리의 산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와 속으로 '와! 좋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는데 올라오는 사이에 거의 다 녹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국망봉정상에 올라간 사람들도 깨알만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신로봉에서 내려오는 방화선이 그대로 끝없는 눈길로 변해 있다.

능선턱에 가까워지면서 적설량은 더 깊어졌다. 바람에 불려올라온 눈이 능선턱에 쏟아붓듯 쌓인 탓으로 보였다. 전화 중계탑이 있는 이 능선의 헬기장은 국망봉보다 많아야 50m 정도의 고도차이밖에 안나는 높은 봉우리이다. 헬기장의 동쪽능선(국망봉 남봉격인 이 봉우리에서 동으로 무주채폭포쪽으로 지능선이 뻗어간다)에 유난히 눈이 많았다. 국망봉에서 눈이 제일 많이 쌓인 지역이었다. 올라오면서 오늘 편하게 산행하하고 시간을 여유있게 갖고 산행하려면 올라온 길로 내려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주채폭포 위의 청빙지역과 이곳의 심설지대를 생각하니 왔던 길로 내려가는 것은 무모한일은 아닐지라도 내키지 않는 산행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국망봉 정상을 밟은 뒤 개이빨산을 지나 능선에서 용수목으로 내려가거나 국망봉-신로봉-도마치고개를 잇는 한북정맥에서 도마치(고개)로 내려와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주차지점까지 내려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두 가지 산행방법이 떠오른다. 개이빨산 코스는 이전에 산행한 적이 있으므로 도마치고개쪽으로 산행을 해보기로 한다.
문제는 국망봉에서 어림잡아 10km는 걸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한북정맥의 적설량이 국망봉 남봉의 적설량처럼 많은 곳이 있고 러셀마저 안되어 있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헬기장에 올라오니 개이빨산 쪽에서 몰려온 산행객들이 있다. 그들중에는 스패츠를 한 사람을 보기도 어려웠다. 잘 다져진 눈길을 따라 산행한 모양이었다. 1168m의 국망봉은 카라멜(광덕)고개 남쪽으로는 한북정맥 최고봉이다. 게다가 그 이름처럼 조망이 좋기로 이름난 산이다. 북으로 도마치봉, 백운산과 그 뒤로 광덕산, 상해봉 그리고 회목봉과 복주산 스카이라인이 높다. 가평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화악산이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 화악산 산괴는 엄청나게 크다. 도마치 고개에서 능선이 굼틀거리며 석룡산을 이루고 화악산을 향해 근접해가고 있다. 왕의 앞에 부복하고 있는 신하의 등어리를 연상케 한다. 남으로는 개이빨산, 멀리 귀목봉, 귀목봉 동쪽에 명지산, 명지산옆에 연인산이 솟아있다. 국망봉의 능선으로 눈길을 끄는 암릉은 신로봉 뒤에서 서쪽으로 뻗어가는 능선으로 날카로운 능선과 암봉이 점철되어 있어 국망봉을 호위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국망봉 정상자체는 헬기장 한대가 내려앉을 수 있는 넓이의 비좁은 첨봉으로 꼭대기는 평탄하고 조망이 막힌데가 없는 반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모두 가파른 길이다. 포천군 이동면 장암저수지 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그중에서 가장 급한 경사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망봉으로 접근하기에 최단거리이기 때문에 그길로 올라오거나 하산하는 사람이 많다.

사진:도마봉의 일몰. 국망봉에서 6.09km지점이다. 앞의 암산이 가리산(망원사용)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신로봉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국망봉 북쪽에는 쌓인 눈이 깊었지만 계곡길로 신로령에 오른뒤 국망봉으로 오는 사람들과 광덕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 사람들이 한북정맥 설릉종주하는 팀이 있는듯 조금은 럿셀이 된 편이었다. 그러나 장암저수지 아래로 바로 내려가는 코스는 훨씬 사람이 많이 다니는 듯하다. 어느 정도 러셀은 되어 있지만 깊은 눈에 생긴 발자국은 장화처럼 깊숙하여 발을 맞추거나 벗어놓은 장화를 신듯 발을 끼워넣어야 다음 발자국을 뗄 수 있다. 그러나 길이 평탄해지면 걸을 만 했고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 곳은 길이 녹아 있는 곳도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도마치(고개)쪽으로 가는데는 완전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신로봉이 그쪽 능선을 볼 수 없게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로봉에 올라가면 뭔가 확실한 정보가 시야에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로봉의 높이는 988m로 국망봉과의 고도차이는 180m밖에 되지 않는다. 신로봉도 조망이 좋다. 신로봉에 오르니 한북정맥이 환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가장 반가운 정보는 신로봉으로부터 도마봉(도마치고개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 883m)까지는 일부 내리막길, 대부분 평탄한 능선길이라는 점이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한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상태가 손금처럼 내려다 보이는 것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방화선이 하얀 눈길로 변해있어서 발걸음 유혹하기도 했다. 조금 전에는 의심했지만 장암저수지코스로 가는 길이 모두 끝난 뒤에도 카라멜고개쪽에서 종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발자국들을 보니 새눈위를 걷는 어려움은 걱정안해도 될 듯 싶었다. 만일에 눈이 녹아 황토흙이 드러난 곳이 많았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포기했을 것이다. 눈길이 신작로 처럼 훤히 나 있어서 걷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듯한 상태였다.
오늘 오전 올라오는 길에 하도 진을 빼서 발걸음이 태백산 하산길에서처럼 "날아다니는" 상태라고 할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또 국망봉에서 점심을 끝내자 말자 출발해서 그런지 밥알이 곤두서는 듯한 복부상태도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당연히 수없이 아름다운 장면의 촬영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시간은 적지 아니 걸릴 것이다. 도마치 고개의 아스팔트길에 내려서기 전에 일몰을 찍을 수만 있다면 성공이 아닐까? 그다음은 찻길이니 걸어내려가면 될 터이다.
신로봉에서 내려오는 신설이 덮인 하얀 눈길은 북쪽의 한북정맥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져 이를 데 없는 매력의 조망을 제공한다. 광덕고개(카라멜고개)에서 도성고개까지 한북정맥구간을 종주했던 어느해 초가을의 이곳 인상과는 사뭇 다른 경관이다. 동절이라 억새풀이나 활엽수등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방화선에 쌓인 하얀 눈이 능선 날등을 따라 꼬불꼬불 끝없이 이어지다가도 봉우리에 막혀 사라졌다가 다음 봉우리에 이어지고 하는 모습이 재미 있다. 그 눈길은 한없이 걷고만 싶은 산꾼의 본능을 부추긴다. 이틀이고 사흘이고 능선 눈길을 걸으며 한북정맥 따라 걸어가면 어찌쯤이 될까?
도마치고개로 가는 능선을 눈여겨보고 하산길의 대강을 가늠해두려고 한다. 신로봉에서 평탄한 능선까지 내려오는 길은 시간을 아끼기에 좋은 구간이라 좀 속력을 높인다. 하지만 평탄한 구간에 와서는 주위의 낙엽송숲이나, 송림과 눈길과의 콘트라스트가 마음에 들어 몇번이고 사진을 찍고 하며 가는 동안 시간이 자꾸 지나간다. 실제로 평지길만도 3-4km가 되므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정한 이치일 것이다. 신로령에서 볼 때 도마치고개까지 가지 않고도 중간에서 아스팔트도로로 내려갈 수 있는 대체로 평탄한 능선이 두어개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지형을 숙지해보자는 의미에서도 초지일관 도마봉까지 가서 도마치(고개)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도마치로 가는 능선(석룡산-화악산-응봉산-촛대봉-가덕산-북배산-삼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이 분기되는 도마봉이 가까워지면서 해가 질 기미를 보인다. 햇살이 눈길을 불그레하게 물들인다. 도마봉에서 일몰을 찍기로 한다. 몇해전 도마치봉에서 백운계곡으로 내려가며 일몰을 찍은 적이 있는데 오늘도 일몰장면에 그때처럼 가리산이 정면에 들어온다. 비슷한 사각(寫角)인 모양이다. 도마봉에서 도마치봉은 1.67km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그럴만도 하다.
도마봉에서 도마치고개로 가는 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그쪽으로 가는 발자국이 하나도 없어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도마치봉쪽으로 500m정도 가다가 이게 아닌데 하고 돌아서서 도마봉으로 다시 온 다음 발자국이라고는 없는 도마치고개로 가는 능선으로 새로 발자국을 내기 시작한다. 이 구간에서 한북정맥을 오간 사람들은 있지만 도마치고개로 가서 가평천계곡으로 내려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도마치 고개 능선으로 들어서서 눈이 깊이 쌓인 두번째 봉우리를 넘어 안부로 내려가니 이정표가 나온다. 능선으로 계속 가면 800m, 계곡길로 가면 700m란다. 이때쯤 헤드랜턴을 하고 급경사를 한참 내려서니 아스팔트 길이 나온다. 이때가 6시 55분이었다.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내려오는 등뒤에 보름달을 하루 앞둔 열나흘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서 해드랜턴을 켤 필요도 없을 정도로 밝았지만 쥐죽은 듯 고요한 깊은 산, 깊은 골에서 산의 일부임을 거부하려는 조그마한 내밀의 욕구가 있어 8개 led중 한개만 켜고 잰걸음으로 내려와 무주채폭포 입구부근에 오니 7시 33분이다. 큰길에 들어서서 40분만에 산행을 시작한 원점에 도착한 것이다. 최근산행중 가장 장시간의 설중산행이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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