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게시판2009. 1. 31. 09:27
귀목봉 1019m - 장재울계곡-귀목봉-오뚜기령-장재울계곡 야간산행

2003-08-10
장재울 계곡

사진: 폭포 물줄기안의 한 형상이 눈길을 끈다




어느 산잡지의 귀목봉 산행기를 보면 장재울 계곡 안쪽을 산행하면서 한 두번이 아닌 여러번 사람들의 음성등 이상한 소릴 듣고 반은 기절초풍하다시피 하여 귀목봉 정상에 도착해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이 꼭 같은 소리를 들었기에 자신들의 얘기를 틀림없다고 했다. 정지용의 시 "향수"를 보면 "옛이얘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하는 표현이 있다. 즉 개천에서는 얘기소리가 난다. 개천에서 물내려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사람이 두런거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것이 평야지대의 개울이라면 모르지만 심산유곡의 개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만일에 한사람이 깊은 산 개울가의 호젓한 울창한 숲속 산길을 걸어간다고 하자. 이때 개울에서 들리는 얘기소리는 이미 옛이야기를 지줄대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하듯이 만일에 그가 사실을 알고 있지 않다면...십중팔구 결코 듣고 싶지 않은 속삭임으로 들리게 될 것이다.

필자는 어제 장재울계곡으로 귀목봉으로 올랐다가 내려오기로 했는데 아침에 어제 검사해둔 진료결과를 듣기위해 병원에 들렀다가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열시쯤 집에서 출발했다. 모처럼 주말에 맑은 날씨를 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못다한 바깡스기분을 즐기려는 듯 나서는 바람에 길이 막혀 길바닥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암사대교에서 청평까지 오는데 거의 세시간이 걸린 것이다. 조종천 맑은 물가에 수많은 사람들이 야영이며 수영이며를 즐기는 것이 운악산 지나 명지산 입구까지 계속되고 있다. 장재울계곡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2시반이었다. 준비를 해서 계곡안으로 들어서서 30분가량 걸어가다가 GPS를 잊고 온 것이 생각나 다시 나왔다가 들어가는 소동을 벌여야했다. 당연히 출발시간은 또다시 늦어져 네시경에 산에 들어가게 되었다. 입구부근에 있는 방가로에 들었던 초로의 사나이가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가느냐고 걱정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 사람은 625때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이계곡의 가슴아픈 전설을 알고 했던 얘기일지도 몰랐다. 필자는 개울물 소리가 사람의 음성과 사이클수(주파수)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개울물 소리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하도 주위에서 이골짜기 얘기를 많이 해서 약간은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만일에 귀신이 있다면 적어도 지난번 소백산 자락의 흰봉산 같은데서 나왔어야지 이런 데서 뭘 하면서 올라갔다가 좋은 폭포가 두서너번 지나간 뒤 마지막 폭포쯤 되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집에서 보니 심산유곡의 아름답고 시원한 폭포 사진이 나와 있다. 사실 골짜기로 들어가서 능선으로 내려오기로 한 것도 조금 신경을 쓴 탓이긴 하다. 밤이 이슥한 시간에 개울물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폭포를 지나 귀목봉 주능선에 도착한 것은 거의 6시20분 경이었다. 웬간하면 능선에서 자고 내일 내려갔으면 좋으련만 내일(일요일)이 첫째의 생일이라 저녁을 먹기로 약속해서 오늘 부득불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해가 저물때까지 능선의 야생화 몇종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계속했다. 해가 지기직전 촬영한 꽃이 묘하게도 송장풀이었다. 송장풀을 촬영한 뒤 오뚜기령에 올라와 보니 울창한 신갈나무 숲 사이로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해에 촛점을 맞추려니 잘 안된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를 꺼내어 불야불야 일몰 사진을 찍는다. 하산은 청계산 쪽으로 가다가 846미터봉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가기로 한다. 날이 저물었지만 별다른 느낌은 생기지 않는다. 지난번 흰봉산의 경험이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코스를 빤히 알고 있기에 마음은 느긋했다.
플래쉬를 꺼내기 직전 숲길을 바삐 가고 있을 때 개가 짖는 듯한 노루소리가 났다. 지난번 가리왕산에서 들었던 바로 그 소리였다. 그렇다면 능선의 거의 인분 크기만한 배설물(색깔은 흑색이었다)은 노루의 배설물인 듯하다. 청계산, 귀목봉에 노루가 있다니 정말 행복한 소식이다. 하지만 혼자 암야행을 하고 있는 산꾼에겐 만일의 경우에 대한 대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끄럽게 하면 안된다"하면서 스틱으로 허공을 한번 씽하고 갈라내는 소리를 냈다. 멀어지는 노루소리가 아슴하게 들린다. 물론 노루때문이 아니라 멧돼지나 삵괭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플래시의 전지를 갈아끼우며 내려오는 산길은 너무도 또렷하여 하산에 전혀 문제가 없다. 한군데 벌채를 한 곳이 있어 나무가지들이 길을 뒤덮고 있는 곳이 있긴 했지만 길을 못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숲사이로 달빛이 비쳐들기 시작하고 반딧불이가 여기저기서 날아 다니는 것도 보인다. 연인산쪽에 열이틀달(그정도로 보였다)이 떠서 골짜기에 달빛이 교교하다. 그렇게 하여 하산을 끝냈을 때는 9시를 지났을 때 였다. 큰길에서 보니 아이들이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어른들에게 장재울계곡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반딧불이를 보여주라고 얘기해주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그냥 나왔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계속되는 산행기를 구독하시고 싶으시다면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