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13. 08:39
깃대봉 910m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 가평군 하면
금년첫(심?)설산행..깜짝 폭풍설 길고 호젓한능선산행

2005/1/8
 

대금산이나 깃대봉을 오른 것은 주로 여름철이었으므로 겨울에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듯하다고 생각해서 송이봉-깃대봉-약수봉을 오른다(1.8일). 깃대봉에서 두밀리로 내려온 적은 있어도 두밀리에서 깃대봉을 오른적은 없었으나 지난번 노적봉 산행이후 다시 한번 가평산의 능선에 오르고 싶은 욕구가 그보다 앞섰다. 그만큼 노적봉-바른골봉능선산행이후 잊혀지지않고 오래 남아있는 낙엽송과 잣나무숲의 능선에서 바라본 외곽의 높은 능선들과 하늘, 그리고 활엽수 낙엽쌓인 능선길 산행의 상쾌한 느낌, 산행의 진수에 접근한 듯한 겨울산의 수수한 모습에 다시 한번 흠뻑 빠져보고 싶은 충동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김할머니집에서 능선으로 직접 송이봉으로 오르는 것 보다 김할머니집에 이르기 훨씬 전 이름모를 능선으로 주능선에 올라 송이봉으로 접근한 뒤 깃대봉으로 갔고 약수봉에 올랐다가 되돌아와 능선으로 내려왔다. 능선을 올라갈 때 나무며, 풀이 너무나 말라 바람이 불면 바람에 마른 풀꽃이 눈송이 처럼 불려 골짜기 아래로 떠가곤 했다. 송이봉으로 갈때 간간히 능선을 덮고 있던 얇은 눈은 정상으로 올라갈 때는 길을 완전히 뒤덮을 정도였고 송이봉에서 깃대봉으로 가는 길은 완전히 눈에 덮여 아이젠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였다. 지능선에서 고도가 높아지는 사이 웬구름조각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만 해도 오늘은 연무가 우중충한 하늘아래 모든 것이 단조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낙엽을 밟거나 잣나무숲아래 죽죽 뻗은 미끈한 둥치와 황갈색 보료를 밟는 맛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송이봉으로 가는 길의 암봉 뒤로 난 미끄러운 눈길을 내려갈 때 눈이 오기 시작함으로써 오늘의 특제산행은 그 예기치 않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 며칠전 일출을 맞았던 검단산에서 눈이라고는 거의 없는 황량한 산모습에 실망했던 터라 오늘도 그런 모습을 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올랐고 메마르기만한 산을 오르는 것이 적이 미안할 정도였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능선은 점점 흰 눈에 뒤덮여 있어 언제 눈이 왔나 생각해보니 엊그제 친구들과 아차산(광진구)에 올랐을 때 2시간 이상 비를 맞으며 산행한 기억이 났다. 서울에는 비가 왔지만 여기엔 눈이 왔던 모양이다. 암봉측면에 올라 단애위에선 노송을 바라보는데 눈발이 단애아래서 바람따라 위로 무리져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장관이었다. 마치 하얀 메뚜기떼가 자욱히 몰려 오는 듯한 형상을 연상시켰다. 산에서는 눈이 거꾸로 오는 것이다. 물론 단애부근에서 바람이 소용돌이를 치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강풍이 심해져 온산이 산명을 내지르며 부르르 떨고 있는데 눈발은 휘날리고 송이봉을 지나 단애전망대가 있는 곳을 골라 깃대봉을 바라보면 거기 겨울 수묵화 한 폭이 사선으로 몰려가는 눈발장막 뒤에 신선하게 솟아있는게 보였다. 그래서 오늘은 금년 초의 아름다운 설산행에다 눈발이 휘날리는 일생 몇 번(사자산, 명지산, 화악산, 오봉산) 안되는 특제 겨울산행을 맛보게 된 것이다.


사진: 30분쯤 올라가면 대금산이 보인다.


깃대봉에 관한 기억은 초본류가 왕성하게 자라는 8월 정상에서 야생화를 신나게 찍었던 기억과 매봉에서 깃대봉을 거쳐 대금리로 내려온 기억 뿐이다. 깃대봉에서 약수봉에 이르는 들쭉날쭉한 능선이 재미 있고 인상적이었다.

깃대봉은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산이다. 깃대봉의 모산은 명지산이다. 명지산에서 연인산, 매봉, 깃대봉, 약수봉, 대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대금산 남쪽에서 동으로 한 가닥이 뻗어가 불기산(600.7m)을 일구고 조금 더 뻗어가 빛고개에서 낮아졌다가 주발봉(489.2m), 호명산(597.9m)을 만든 뒤 더 나아가서 청평호에 가라앉는다. 불기산으로 가지친 능선은 대금산 남쪽에서 한 가닥은 남으로 뻗어가 청우산(619.3m)을 일군 뒤 청평북동쪽 조종천 구비에서 조종천에 가라앉는다.
깃대봉에서 송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가평서쪽 수리봉을 거쳐 가평 남서쪽 경춘가도옆에서 끝난다. 이번엔 경춘가도 가평 못미쳐 대금산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한 하색리-두밀리에서 깃대봉 계곡으로 들어가 송이봉-깃대봉-약수봉을 거쳐 다시 깃대봉쪽으로 조금 되돌아와 능선을 따라 윗삼일 두밀리로 내려오는 원점 회귀산행을 하기로 한다. 들어가는 골짜기는 구비를 여러번 돌아가 제법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사진:참나무숲


동네에 가까워지기전 송림옆 공간에 차를 주차시켜 두고 큰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김할머니집에 이르기 전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기로 한다. 조그마한 길이 처음에는 분명한 듯했지만 곧 없어지고 왼쪽 능선으로 오르는 가느다란 길이 있는 듯 없는 듯이 이어진다. 본격적인 산길은 아니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한다. 송이봉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보다 조금 낮은 능선으로 올라가서 길다란 능선산행을 통하여 송이봉에 접근하는 것이 가평산들의 능선이 가진 매력을 조금이라도 즐기는 것이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 하늘


능선에 올라가자 말자 울창한 잣나무숲이 되어 보료같은 황갈색 솔가리가 푹신푹신 발아래 느껴진다. 레드 카펫이 따로 없다. 명예나 권위라는 명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나은 카펫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의 어떤 레드 카펫도 송진 향기 어린 잣나무숲 아래 깔리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잣나무숲 위로 강풍이 지나가며 송풍음이 울린다. 잣나무숲을 빠져나와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밋밋한 안부에 이르러 부근의 산세를 보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억새꽃이 바람에 불려 계곡 아래로 떠간다. 골짜기 아래 동네가 보이고 낮은 능선 뒤로 대금산이 보인다.


사진: 매봉

고개를 들어 나무끝을 보면 숲 위의 하늘에 구름이 조금씩 깔리는 것이 보인다. 아직은 파란 하늘이다. 다시 잣나무 숲안으로 들어가 산록을 오르는데 대단한 급경사여서 가만 있어도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갈만큼 가팔랐다. 급경사를 올라가서 참나무숲지대를 지나면 송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봉이 하나 나타나고 그 다음은 바로 주능선이었다. 능선사면으로 내려가면 경반리계곡이 될 터이었다.

능선북사면엔 눈이 살짝 덮여있었고 소나무와 낙엽송이 섞여 하늘로 죽죽 뻗으며 자라고 있어 바닥의 눈과 함께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안부에서 송이봉으로 올라가는 능선에서부터 차츰 눈이 덮인 곳이 많아지며 산길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산행한지 한시간 25분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숲사이로 깃대봉이 정면으로 송이봉이 그 오른쪽으로 보인다. 아직은 아이젠을 착용할 단계는 아니었지만 1월 8일에야 겨우 눈길산행이 가능해지는가 싶어 깃대봉을 중심으로 한 능선일대의 눈길에 기대가 되었다. 올라갈수록 눈은 많아졌지만 능선길을 설중산행이라고 할만큼의 적설량은 아니었다. 금년엔 유난히 눈이 드문 해로 기록될 모양이다.
올라갈수록 하늘엔 운량이 많아지고 있었다. 요즘 산에 가면 숲바닥에서 하늘을 보고 사진을 찍는 일이 적어도 몇 회는 된다. 숲이 아름다운 경우에는 더 많이. 낙엽송숲이 제격일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낙엽송숲에서는 하늘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푸른하늘에 흰구름이 지나가면 아름다운 사진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 죽죽 뻗어 있는 참나무숲에서도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송이봉으로 가까워지기전 작은 암봉이 나타났다. 나무는 그대로 우거져 있었지만 암봉은 암봉이었다. 길은 암봉 뒤로 눈에 덮인 작은 길로 이어져 바위를 우회하며 정상쪽 안부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북쪽 사면이라 눈이 많은 편이었다. 눈은 많은 대신 바람은 불지 않았다. 오늘은 남서쪽에서 강풍이 불어와 능선에서는 꽤 추운 편이었기 때문에 나뭇가지에 배낭을 매달아놓고 커피를 한잔 타서 마시고 미끄러운 암봉 사면을 올라가니 벼랑 끝에 멋진 소나무가 하나 서 있다. 왜냐하면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눈발이 메뚜기떼가 몰려오듯 골짜기 저쪽에서 몰려와 단애위로 치올라 오고 있었다. 그것은 장관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눈발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송이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보니 눈발은 거센 강풍과 함께 능선을 타고 넘는다.


사진: 송이봉


이곳에서 송이봉 정상까지는 25분 정도의 거리이지만 송이봉은 꽤 높아보인다. 나목 숲이 울창한 그렇게 넓지않은 둥그런 봉우리의 모습이다. 짙은 눈발이 지나갈 때 눈발의 장막 때문에 송이봉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산에 다니다가 이런 폭풍설을 만날 때가 재미있다. 명지산에서 폭설을 만나 올라가다가 도로 내려온 적이 있는데 신설이 발목이상의 깊은 눈이 되어 쌓이고 있을 때는 아이젠을 신었더라도 올라가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했 다. 눈에 대한 두려움은 그때 조금 생겼다. 내려가는 길이 모두 눈속에 파묻히고 눈이 허리까지 왔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실제로 아재비고개 부근에서 허리까지 오는 눈을 경험한 일도 있다) 위의 경우는 혼자 올라갈 때였고 그후 아내와 함께 같은 코스(정확히 아재비고개에서 1199봉으로 올라가던 길)에서 폭풍설을 만나 그냥 내려오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의 산행이 모두 실패했음에도 그때의 광경이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그러한 사실들이 겨울과 강설의 인상적인 모습들을 재미있게 묘사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송이봉 도착 직전 능선의 이정표팻말엔 경반리와 윗삼일에서 올라오는 길이 안내되고 있다. 윗삼일에서는 2.19km, 수락폭포가 있는 경반리에서는 1.77km만에 송이봉 아래 주능선에 올라올 수 있다. 윗삼일에서 송이봉으로 오는 능선은 송이봉과 직접 연결되고 있는 능선이다. 송이봉(803m)정상에 도착한 것은 산행시작한지 2시간 30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좁은 공간에 쌓다만 엉성한 돌무데기가 있고 송이봉이란 작은 팻말에 좁은 공터언저리에 서 있는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정상의 좁은 터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사진: 깃대봉의 수묵화

송이봉에서부터 깃대봉은 삼각형의 예리한 봉우리로 카메라의 망원 렌즈로 잡아 앞으로 당겨 온 것처럼 전면에 좌악 다가서기 시작했다. 산사면이 눈으로 완전히 덮이지는 않고 희끗희끗하게 물들어 있고 능선부근에서는 나목숲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겨울 경관으로서는 거칠면서도 감각적인 경치였다. 조망은 서 있는 곳 주변의 나뭇가지들 때문에 시원한 편은 아니었지만 나뭇가지 뒤로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눈발장막에 깃대봉 정상 부근의 스카이라인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것이 산이 세수를 한 듯 산전면에 좌악 깔리면서 공간이 조금 하얗게 변할 때 그 광경은 겨울 산에서 보고 싶은 이상적인 수묵화를 상기시켜 주었다. 겨울산에서 희열을 가지고 보고자 했던 거칠고 야성적인 광경은 작년엔 함백산의 심설속에서 그리고 화악산의 강설속 산행에서 보았었다. 소중한 추억처럼 간직하고 싶은 광경이었다. 눈발이 세차게 휘몰아 오며 강풍이 쌩쌩거리며 능선을 타고 넘는다. 눈발도 거대한 수류처럼 보이지 않는 공간 속으로부터 폭풍과 함께 몰려와 안면을 때리며 칼봉산아래 경반리 아래 골짜기로 휘몰려 간다.


사진: 눈발이 스쳐지난 뒤의 깃대봉-약수봉능선


전망대에서 안부로 조금 내려와서 깃대봉으로 올라가는 경삿길은 눈이 3cm정도 쌓인 미끄러운 산길이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눈을 밟으면 눈소리와 낙엽소리가 동시에 났다. 눈발은 약해지고 깃대봉 뒤쪽에 눈발을 뿌렸던 구름짱이 열리며 먹장 구름일부가 뿌옇게 밝아지졌다. 스카이라인과 구름, 하늘이 만들어 내는 경관이 가장 입체적이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그 장면(scene)은 웅변해 주고 있었다. 혼자 눈쌓인 낙엽길을 오르며 흥겨워하다 깃대봉 정상에 도착한 것은 4시 24분경, 산행시작한지 4시간 반만이었다. 물론 시간에 구애 받지 않으며 사진도 60장 가까이 찍으면서 올라온 터라 이 시간은 별로 의미가 없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송이봉-깃대봉능선이 상당히 길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깃대봉정상에서는 깃대봉의 모산격인 매봉과 연인산이 보이지만 명지산은 연인산에 가려 안보인다. 예상대로 적설량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남쪽 산사면의 길에는 눈이 없었다. 약수봉으로 가는 길은 방화선으로 인해 조망이 시원하게 틔어 있다. 눈이 이미 그치고 강풍이 몰려오고 구름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바쁘게 푸른 하늘에 자리를 비켜주고 있었다. 깃대봉에서 약수봉까지 가서 다시 조금 되돌아 와 이정표지점에서 두밀리로 내려가는 데는 시간이 빠듯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약수봉까지의 작은 능선봉들은 민주지산에서 각호산을 보듯 멀리 떨어진 봉우리들은 아니었지만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라 오르내리기가 만만찮을 듯보였다. 깃대봉에서 약수봉까지는 1.58km라고 깃대봉 정상의 이정표는 말해주었다. 하산길은 깃대봉에서 1.40km 떨어진 능선에서 시작되었다. 이 능선에서 약수봉은 230m정도 된다고 했다.(이정표) 이 이정표를 통과한 시간이 4시 50분이었다. 이 이정표에서 가장 가까운 봉우리가 약수봉이었지만 그 다음 봉우리가 첨봉에 가까운 또렷한 봉우리라 근접 봉우리의 중턱에 난 미끄러운 눈덮인 길을 따라 그쪽 봉우리로 갔다. 그러나 그 봉우리는 약수봉이 아니었다. 봉우리뒤쪽에 단애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던 것이다. 높이도 지나온 봉우리보다 낮아 보였다.

봉우리를 내려가 역으로 그 봉우리를 다시 오른다. 봉우리를 오른뒤 날등을 타고 내려와 아까 이정표를 지날 때 시간을 보니 5시23분이다. 그때부터 부지런히 하산했다. 잣나무숲에 이르렀을 때가 5시 39분. 날이 이미 어두워지고 있는데도 잣나무숲은 탐스러울 정도로 울창하다. 숲을 빠져나왔을 때는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동네를 지나 큰길로 내려갈 때 플래쉬 불빛에 하늘로부터 곱게 내래는 눈송이를 볼 수 있었다. 6시20분 도착. 산행엔 6시간30분이 걸렸다.

큰지도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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