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11. 12:37
2006-01-08 

만수산 575m 주위에 무량사, 성주사지 품고 있는 서해안에서 가까운 산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산휴양림 뒷산)
 사진:태조암 가는 길의 풍경. 푸른하늘, 하얀수피의나무숲, 그리고 이곳에만 있는 정적과 한가로움이 느껴지는 분위기가 전해온다. 무량과 만수라는 초절적 의미를 함축한 단어들이 바로 이길에서 본 하늘과 땅에서 느껴졌다.


사진:무량사(無量寺) 극락전, 5층석탑, 석등이 일직선상에 서 있다. 3종류 공히 보물이다.


내렸다 하면 폭설이라는 서해안지방의 그동안의 적설량을 생각하면 개운치 않았지만 서해안 지역에 속하는 보령-부여경계의 만수산을 찾은 것은 성주산 산행때 산들은 높지 않지만 이 지역 자연의 깨끗한 모습과 문화재와 유적들이 수준이상이었던 점이 감안됐다. 그리고 눈구경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길가에 녹지 않은 눈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적설량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주능선은 달랐다.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러셀이 안된 상태였다면 스패츠없이는 다니기 힘들 정도의 적설량이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대천까지 와서 고속도로비 6700원을 지불하고 대천나들목을 나와 보령시내를 거쳐 성주터널을 통과하면 해안가 풍경과는 다른 별세계가 펼쳐진다. 산으로 온통둘러싸인 세계속에 높지 않은 봉우리와 능선들이 협곡과 산간분지를 만들고 있다.
만수산은 성주봉 동쪽 문수봉에서 남서로 뻗은 능선상의 최고봉이다. 이 지역의 산들이 높지 않고 산의 모습도 맺힌 데가 없는 유장한 모습들이어서 만수골로 들어가면서도 어느 봉우리가 만수산인지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능선봉들은 모두 높이가 어슷비슷해보였기 때문이다. 절에서 멀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들머리를 찾아 계곡으로 들어가는데 계곡이든 산록이든, 봉우리든 눈에 들어오는 것중에서 눈을 흡뜨게 하는 빼어난 것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길은 평지와 다름이 없고 눈이 좀 내렸다고는 하지만 길에는 눈이 없고 길가에만 눈이 덮여있다. 하지만 도솔암, 태조암을 향해 들어가는 좁은 포장도로를 걸어가며 나는 드물게 안온하고 심신이 쾌적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가령 도봉산이나 북한산을 간다면 이런 한가롭고 해맑고 적막하다는 느낌은 절대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치악이나 설악이나 속리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한가롭고 해맑고 적막하다는 그것은 귀중한 것이라는 것을 만수산을 오르기위해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가면서 새록새록 느껴가고 있었다. 길가에 조성된 흰수피의 활엽수 숲을 지나갈 때 그런 느낌이 진하게 들었다. 그 숲의 꼭대기위쪽의 하늘은 내가 금년의 산행중에 본 어떤 하늘 보다도 푸른 코발트빛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한가로운 발걸은 꿈속을 걷고 있는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도솔암아래를 나 조금 가면 왼쪽 개울을 건너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지만 그대로 지나쳤다. 그래서 오늘은 큰길을 따라 산록아래서 능선길로 주능선에 올라선 뒤 만수산 정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편할 것 같아 그러기로 한다. 태조암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태조암으로 들어가느라니 길에 금줄이 쳐져 있다. 부근 나무 가지에 리본이 더러 붙어 있었지만 스님들이 수행중이라 하여 일부러 쳐놓은 금줄을 무시하고 절앞마당을 가로질러 산으로 올라갈 염치는 없다.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태조암 골짜기를 지나 다음 골짜기로 들어가서 주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 돌아가는 길이라고는 해도 만수산 코스가 워낙 짧아 차라리 조금 더 걷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음 골짜기로 들어가 작은 지능선을 타고 올라가는데 양지쪽이라 그런지 햇볕이 등뒤를 따스하게 한다.

양지쪽에 앉아 점심을 꺼내 먹는데 서해안이 가까워서 그런지 공기는 유례없이 맑고 햇볕의 온기도 유난히 도타워서 점심 먹는 시간이 재미있는 꿈을 꾸는 시간처럼 즐겁다. 고개를 돌려 능선쪽을 보면 나무사이의 하늘이 그렇게 푸를 수가 없다. 정면은 만수골짜기가 열리면서 양광으로 그득한 남쪽 하늘이 눈부시다. 능선을 타고 가면 만수산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갈 듯한 느낌이 들어 시간이 이외로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올라가니 분묘가 하나 자리잡고 있는 펑퍼짐한 둔덕이다. 마침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내려오고 있다. 만수산 산행은 서해안의 해수욕장이나 도고온천, 수덕사등을 끼워 패키지로 엮으면 재미있는 스케줄이 될 것 같다. 

이 분묘 위쪽에서 길은 굽어져 만수산정산쪽을 향하여 산록을 횡단하도록 되어 있어서 등산로 자체가 만수산을 목표하여 산을 일주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라리 태조암에서 그냥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산행할 맛이 더 나게시리 아기자기하게 산행로를 구성한 셈이 되어있었다. 지능선 날등을 두어개 넘으니 태조암 위 계곡첫머리가 되는 듯하다.

주능선에 올라서는 것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어서 노약자들도 만수산 산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주능선에는 상당한 심설이 쌓여 있어서 비로소 겨울산에 온 확실한 느낌이 온다. 하지만 눈은 러셀이 될만큼 되어 있어서 스패츠 없이도 산행하기에 불편하지 않다. 설경을 감상하며 능선길을 걸어가는 맛은 강원도 어느 고산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급경사를 올라가면 팔각정이 있는 전망대가 다가온다. 전망대가 사실상의 만수산 정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정상은 삼각점이 백여있는 팔각정 남쪽 500m지점의 봉우리이지만 전망은 팔각정만큼 시원하지가 않다. 팔각정에서는 성주사지 앞을 지나 만수산쪽으로 바라보고 패어든 깊은 골짜기가 내려다 보인다. 골짜기가 굽어도는 지점에 위치한 성주산 자연휴양림이 시야에 들어온다. 거기 까마득히 관광버스 한대가 주차해 있는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쪽에서 만수산을 올라오는 팀들도 있는 모양이다. 팔각정에서는 북으로 비로봉, 서쪽으로 화장골과 ***골로 빠지는 능선이 이어지고 남으로는 무량사를 향해 내닫는 능선이 있어서 요지에 세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팔각정까지 임도가 닦여져 있는데 성주산 자연휴양림부근에서 위쪽 산록을 돌아올라오게 되어 있었다. 
사진: 설릉을 이룬 주능선

서북쪽으로 몇년전에 오른 성주산이 또렷하게 솟아 있다. 그런데 팔각정 서쪽 안부에 성주산이라는 산명비가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상이 서쪽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가다가 발견한 것이다. 서쪽 능선의 안부는 성주골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화장골에 이어지는 갈림길이 있었고 이 안부에서 능선을 따라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임도가 닦여져 있기도 했다. 다시 팔각정으로 와서 남쪽으로 산길을 잡아 내려가다가 다시 봉우리로 올라서면 만수산정상이다. 정상임을 알려주는 산명비도 없고 삼각점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높이도 부근의 봉우리에 비해 그리 높지도 않아 보여 이게 정상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상에서 왼쪽길로 가야 무량사 위 도솔암부근 큰길에 내려설 수 있다. 오른쪽은 화장골로 내려가는 길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조그마한 봉우리를 넘어 안부로 내려서니 만수골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양지쪽이라 길이 녹아 질척거리고 미끄럽다. 한 40분 내려오면 개울이 나오고 도솔암부근 큰길이 된다.

산으로 올라갈 때의 한가로움과 정적과 해맑음이 해질 무렵이 가까워지는데도 여전하다가 내가 들어오자 그것으로 주위를 철저히 감싼다. 내려오다가 무량사로 올라가 절주위를 돌아본다. 무량사엔 4개의 보물이 있다. 무량사 극락전은 보물 356호다. 기품이 있고 수려한 조선조중기의 건축이다.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예가 많지 않은 2층으로 된 불전이다. 외관만 2층이지 내부는 아래위층이 틔어있다. 조선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앞의 5층석탑도 수수하면서도 균형감을 지닌 보물이다. 보물 제 185호이다.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이 오층탑은 알맞은 비례에 장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특히 극락전과 잘 어울리는 석탑이다. 옛백제땅의 탑제작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평가되며 신라통일기의 양식미도 일부 수렴된 것으로 보인다. 무량사 석등은 법당 앞뜰에 세워져 있는 팔각석등으로 보물 233호이다. 라말려초(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까지)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량사에는 이밖에 미륵불괘불탱(탱화)이 있다. 이 탱은 조선조 인조때 작품으로 화려한 불화이다.

무량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생애 말년을 보낸 절로도 알려져 있다. 매월당은 금오신화의 저자이며 생육신의 한명이다. 어릴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났으나 세조가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불태우고 전국을 유랑하였다. 매월당이 무량사에 와서 말년을 보내고 죽은다음 이곳에 부도가 서고 그의 영정을 모신 매월당 영당이 세워졌다.

시간이 남아 만수골을 빠져나와 광천쪽으로 간다. 아침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 오서산이 가까운 개천부근에서 무지무지하게 넓은 갈대밭을 차창너머로 얼핏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지기전에 찾을 수 있을까? 결국 찾지 못하고 해는 졌다. 서쪽 하늘이 잔뜩 흐려 일몰을 구경할 수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오천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길가에 멋진 묘지가 조성된 곳이 있다. 안내판도 보였다. 주차장에 들어가 보니 토정 이지함의 묘도 덕수이씨가문의 가문묘지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토정비결을 신뢰하든 안하든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올라오는 길은 지난번 변산 산행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게뚫린 길을 따라 재빨리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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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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