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2. 15:21


사진:신록이 물들기 시작하는 북한산 북쪽산록.


사진:해질무렵의 조망. 노적봉과 보현봉, 그뒤 남산타워가 보인다.


사진:백운대의 일몰.서해바다의 섬이 다 보인다

2006/5/8


5월7일 하루종일 90mm에 가까운 비가 내렸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니 언제나 그리워하던 가장 5월다운 5월의 푸른 하늘이 환하게 밝아있었다. 밖에 나가 가까운 산을 바라보니 신록에 물든 5월의 산은 투명한 대기속에 마냥 싱그러웠다. 이런 날은 북한산에 가고 싶다. 어버이날이라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늦게 북한산을 오른다.
구파발역을 지나면 북한산이 시야에 꽉차게 들어온다. 와! 북한산을 보고 이게 내가 알고 있던 북한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쑥한 5월의 한낮에 북한산은 믿을수 없으리만치 정갈한 모습으로 우람한 암릉, 걸출한 미봉으로 성장한 채 산꾼앞에 숨이 콱 막히게 솟아 있었다. 스모그, 매연, 미세먼지가 없었던 옛날에 북한산을 보았던 선조들과 지금세대에 북한산을 보고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경관수용에서의 감동의 차이가 있을 듯하다. 북한산아래 도로바닥에서 정상까지 하늘에 잇닿은 아웃라인은 바위능선과 하얀 암봉으로 선명하고 짙은 신록에서 이제 갓 잎들이 피어나는 단계인 아련한 녹색의 정상부아래 8부능선의 산록에 이르기까지 갖은 색조의 녹색이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탑, 그것이 북한산이었다. 언제나 거기있었던 그산이었지만 오늘의 북한산은 늘보던 북한산이 아니었다. 북한산의 발치에서 백운대까지의 산록과 암봉의 모습이 현미경을 들이대어도 이렇게 까지 속속들이 시야에 들어온 일은 일찌기 없었다. 도로가 삼천사로 들어가는 갈림길로 접어들 무렵의 어느 지점에 북한산조망을 위한 조망대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도로부근에 아파트들이(은평뉴타운) 들어서는듯 공사중이었는데 북한산 조망권이 개인소유화되는 것이 안타깝다.
늘 그렇듯이 오늘도 사기막골에서 올라가기로 한다. 늦은 시간이라 어쩌면 일몰을 보고 내려올지도 모른다고 헤드랜턴의 밧데리도 준비한다. 숨은벽코스 아래쪽 암릉까지의 능선과 주변산록은 울창한 숲의 연속이다. 어쩌다 한 그루씩의 철쭉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숲의 분위기를 일시에 바꿔주는 청초한 철쭉들이다. 관악산의 철쭉을 보면 이미 철쭉철이 끝난 것처럼 보여 기대도 안하고 있었는데 이곳 북한산 북쪽산록의 낮은지대능선에는 철쭉이 한창이다. 오늘도 호랑이 굴, 백운대-인수봉능선의 10m직벽의 로프도 타고 백운대에 도착한다. 슬랩지대와 화강암 바위들은 어제의 세찬 비에 씿겨 말쑥하기 이를데 없다.
처음 맞딱뜨리는 암릉사면을 올라가는 길은 노출된 바위면에 물끼가 많아 미끄럽지만 어렵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어두워진 다음 이곳을 내려올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오늘 해가 진 뒤에 사기막골로 되돌아가려고 해도 이곳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하산할 때 북한산성길로 내려가 버스를 타고 사기막골에서 내려 주차해둔 곳으로 갈까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귀차니스트에게는 번거로운 일이었고 그쪽 길이라고 해도 밤이 되면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밤에는 평지길도 위험하다. 태연히 걸어가다가 조그마한 굴헝에 발이 빠지면 허리가 삐끗해지는 것은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즉, 밤이든 낮이든 조심하여 걸어가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어두워진 뒤 하산할 때 올라갔던 숨은벽능선아래 암릉코스로 내려왔다. 사기막골에서 올라오면 육산부분이 끝나고 급경사 암릉이 시작되는 부분(해골바위아래쪽)은 낮에도 헷갈리는 곳인데 어둬진 뒤라 당연히 어려웠다. 우선 너무 오른쪽으로 붙었는데 gps를 보면서 궤도를 수정했는데도 60도에 가까운 슬랩지대라 쉽지는 않았지만 바위가 끝나는 곳에 길이 보였다.
작년인가 가리왕산 정상에서 비를 피해내려오다가 길가 굴에서 시간을 보낸뒤 비가 그치고 나서 밤12시쯤에서 새벽1시 넘어 장구목이로 내려왔던 경험이 이번에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암릉에 올라서니 백운대의 염초봉능선 북쪽 산록에 진달래가 군데군데 피어있어 볼만했다. 몇년전에 이 코스에 처음왔을 때 누군가 5월초엔 죽여주는 능선이라던 말이 오늘 비로소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다.
예상했던 대로 백운대의 일몰은 쾌청한 날씨라 여태까지 본 어떤 일몰보다도 수려했다. 수많은 일몰사진을 찍었다. 지평선에 약간의 구름이 띠를 이루고 있는 게 일몰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었다. 다들 내려가는 무슨 방안들이 있는 것인지 정상엔 대여섯명넘게 일몰을 구경하고 있었다.

슬리퍼: 암릉을 오르내리는 사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산을 하고 있다. 숨은벽코스는 이제 꽤나 알려진 모양이다. 샌들을 신고 있는 나를 슬리퍼를 신고 산에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얼마전 부봉 6봉에서 만난 어떤 여성산꾼은 "어마 슬리퍼 신고 산에 왔네?" 했다. 암봉 여섯개를 타는 부봉산행에 슬리퍼를 신고 오다니..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동행이었던 남자산꾼이 나서서 등산샌들이라고 말해주는 것을 들으며 속으로 쿡쿡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부봉을 돌아 마역봉으로 오면서 8시간 산행중 마지막 40분가량 등산화로 갈아신고 내려왔었다. 아마 헤드랜턴이 있었더라면 샌들을 신은 채 그냥 내려왔을 것이다. 오늘도 샌들산행이지만 솔직히 산행의 편안함이 적어도 20%정도는 증대된 것 같다. 속도도 빨라지고 발의 피로도도 20%정도 줄었다. 샌들이 위험하지 않나? 백운대와 소인수봉(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 있는 작은 암봉. 숨은벽암릉과 연결된다.) 사이의 고개를 넘어 사기막골이나 밤골로 내려오는 급경사 산록은 염초봉과 숨은벽사이의 계곡으로 바윗돌로 뒤덮인 거의 너덜지대에 가까운 급경사 산록이다. 발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족쇄에서 해방된 발은 상당히 예민하다. 여기에 약간의 조심성만 보태면 이런 악산코스에서도 경쾌한 하산이 가능한 것이 등산샌들의 장점이다. 물론 이런 경험토로가 샌들산행의 권장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개인적인 차원의 경험얘기일 뿐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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