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7. 26. 00:58
시원한 복호동 폭포

금요일(2009.7.3일) 석룡산에 올랐다. 석룡산에 올랐다는 것은 여름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는 의미이다. 매년 여름이면 꼭 찾는 가평계곡의 석룡산과 조무락골. 조무락골 입구에 도착해보니 벌써 버스한대가 와서 주차하고 있다. 오늘도 몇대나 오려는지. 요 몇년사이 "여름에 시원한 산 좀 없나?"하는 산사람의 질문에 1순위로 올라오는 산이 석룡산이 아닐까? 여름에 내설악 수렵동, 구곡담이 시원할 것 같지만, 용소골, 오대천이 시원한 것 같지만, 멀고 따라서 접근하는 사이에 북새통속에서 진이 빠지도록 땀을 흘려야 한다면 서울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가평천계곡의 조무락골과 석룡산이 매력의 계곡과 산으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실제로 따져도 땀흘려 석룡산에 오른뒤 조무락골로 내려오며 울창한 숲과 차가운 계류가 빚어내는 무류의 서늘함에 노출되면 이 계곡의 시원함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왜 석룡산 조무락골이 시원한가? 말이 석룡산 조무락골이지 실제로 조무락골은 화악산에 속한 계곡이다. 조무락골은 한북정맥에서 화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능선상의 최고봉이 석룡산이다)과 중봉에서 서남서쪽으로 뻗은 긴 능선사이에 형성된 계곡이다. 화악산은 1460m를 넘는 거봉이다. 그리고 38도선을 넘는 고위도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한겨울 한파가 몰아치면 전방고지의 최저기온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데 여기에 화악산의 최저기온도 들어가 있다. 화악산계곡은 산의 동쪽에 있는 칠림게곡을 위시하여 여름에 무척 시원한데 그것은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작년 한여름 화악산에 오른적이 있는데 그때 아침일찍 칠림계곡으로 들어가면서 방가로옆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불 없이는 못자요."하는 대답이었다. 화악산은 38도선에 걸쳐있고 설악산은 조금 높은 위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내가 경험한 여름은 화악산계곡이 설악산계곡보다 더 시원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지금은 모르지만 옛날엔 백담사건너편에 텐트촌이 형성될 정도로 여름에 사람이 몰렸었는데 그때 시원하게 잤던 기억이(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없다. 그리고 수렴동계곡, 수렴동산장, 소청산장에서 여러번 잤는데도 설악산이 시원하다는 기억은 어느 깊은 소에서 수영을 한 기억밖에는 없다.

2005-07-02 석룡산 1147m - 장마때는 폭포를 찾는 것도 멋. 북호등폭포는 경기최고성능의 자연에어컨
사진: 물이 불어 볼만한 조무락골의 북호등폭포

장마 때는 폭포구경도 여름을 나는 작은 방법이랄 수 있다. 습기로 끈적끈적해지는 여름 한낮에 시원한 폭포와 푸른 소, 청류가 흐르는 산골개울이 그리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물론 가없는 수평선이 펼쳐지는 하얀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어나기를 바닷가에서 태어난 필자의 경우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남는 것은 별로 시원하지 않은 기분뿐이었다. 수영한 뒤에 반드시 민물로 샤워를 해야 시원함이 유지되는데 우리가 어릴 때에는 바닷가에서 민물로 샤워할 정도의 시설도 물도 모자랐다. 그러니 소금기와 땀이 범벅이 되면 더운 효과는 오히려 더욱 상승할 수 밖에. 반드시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좌우간 산골의 맑은물을 찾아다니기 수십년이다.
지난 토요일 석룡산 산행을 했다.(2005-7-2) 여러번 올라간 석룡산을 다시 찾은 것은 야생화를 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지만 장마를 맞아 큰비가 두어번 내리는 통에 가평천은 오랜만에 수량이 풍부하고 옥빛 청류가 포효하며 흐르는 오랜만에 실로 시원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을 것이기에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가평계곡으로 향한 것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1000m를 넘는 산이 8개나 있는 가평계곡..청류가 풍부한 것은 당연하다. 조무락골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외부공기와 다른 서늘한 냉기가 숲아래 깔려 있다. 개울물이 불어난 계류의 낮은 수온이 근방의 숲안의 대기를 청량하게 해주고 있었다.

북호등폭포
가평천의 수량을 보고 오늘은 북호등 폭포가 제1목표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마비가 내린 지 얼마 안돼 이 높은 폭포를 찾게 된 것은 자의든 타의든 행운이다.
38교에서 조무락골로 깊숙이 들어온 곳에 위치한 조무락골 산장(이곳에서 능선길과 계곡길이 나뉜다)에서 20여분 들어가니 북호등 폭포쪽의 갈림길이 있고 폭포 아래를 흐르는 물은 조무락골 본류의 평소때의 계류수량만큼 될 정도로 풍부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북호등 폭포 아래 계곡으로 들어서는 순간 온몸은 성능좋은 에어컨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수량이 많아 포말을 지으며 협곡안으로 쏟아붓는 폭포수가 울창한 숲의 한 가운데 허옇게 주렴을 드리우고 있다. 폭포 아래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오래서 있지 못할 정도다. 물보라 떨어지는 품이 가랑비가 오는 상태와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기계가 비에 젖어 좋을게 없다. 수건으로 수시로 카메라를 닦으며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성능좋은 에어컨이 따로 있을 수 있을까? 서울 경기지역 통틀어 가장 보증받는 성능의 에어컨이 여기 조무락골에 설치 되어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가평천계곡에는 폭포가 여러군데 있다. 명지산의 명지폭포, 국망봉의 무주채 폭포가 그것. 이밖에 칼봉산의 수락폭포가 있고 서울에서 가까운 폭포로 봉화산의 구곡폭포, 삼악산의 등선폭포, 오봉산의 구룡폭포도 이름난 폭포이다. 하지만 모두가 북호등폭포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에어컨들이다. 왜냐하면 북호등폭포는 냉각수(?) 자체가 경기도에서 가장 높고 눈도 가장 뒤에 녹는 화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기 때문이다. 1000m이상의 고도에서 바로 떨어지는 물이나 다름없기에 가장 차거울 것이 분명하다. 발원지의 해발높이가 물의 냉기에 어느정도는 비례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호등폭포에서 나와 20여분 올라가면 조무락골 폭포가 나온다. 북호등폭포가 직폭에 가까운 폭포라면 조무락골 폭포는 와폭이나 다름없지만 암석지대를 흘러내려가는 폭류의 모양이 볼만하다. 개울을 뒤로 하고 안부(석룡산-화악산안부:쉬밀고개)를 향하여 본격적인 올려치기를 시도할 무렵부터 화악산과 석룡산 사이의 깊은 골짜기와 산사면위로 높이 솟은 화악산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길 오른편의 산사면에 있던 큰 나무들을 베어버렸기 때문에 화악산쪽이 잘 보이는 것이다. 무슨 목적으로 나무를 베어냈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지만 그쪽 스카이라인이 웅장하기로는 경기지역에서 최고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 해발 600-700이 되는 산록에서 1460m대의 스카이라인을 올려다보는 것은 장엄한 경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단한 고도앞에 할말도 잊어버리는 곳이 이곳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장대한 광경을 그냥 지나가기만 한다. 하기야 오늘은 운무가 준동하여 장관의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참고:이곳의 시원한 경치도 그동안 나무가 커지는 통에 옛날과 같이 시원한 경관을 즐기기에는 매우 옹색해졌다. 2005년도에 비해 금년(2009년 7월)에 거기서 본 경치는 전보다는 못하였다.) 이곳에서 쉬밀고개로 올라가는 급경사를 타기전에 약간 밋밋한 초원(중키의 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곳)에는 야생화가 아주 많다. 오늘은 조무락 계곡으로 먼저 들어와 계곡안 중봉 갈림길에서 쉬밀고개로 가서 석룡산 정상에 오른뒤 서쪽능선으로 하산하여 조무락골로 내려왔다. 조무락골의 마지막 산장인 조무락골산장의 주차장을 이용했으나 이번에 보니 산장의 이익에 일조하지 않는 주차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팻말이 붙어있다. 국내 어느산이든 산행깃점의 주차장은 공익적인 목적의 주차장이었는데 ...하는 생각에 의아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북호등, 조무락폭포등을 복 계곡의 시원한 냉풍과 물소리를 뒤로 하고 급경사 능선을 따라 쉬밀고개 안부로 오름길을 재촉한다. 조금 전에 말한 초본류가 많은 반초원 중키숲지대다. 골짜기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초본류의 생장이 왕성해지고 있고 특히 겨울철 공터나 다름없었던 이곳은 온갖 초본류가 빽빽히 자라 발을 디딜 틈조차 없다. 망초꽃이 섞여 있긴 하지만 기린초의 노란꽃이 풀숲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어서 보기가 좋았고 뱀무꽃도 의외로 많이 피어 있다. 몇년전엔 하루 종일 2, 3개 개체를 보았을 뿐이었던데 비해 오늘은 석룡산 전후 산록에 숱하게 피어 있다. 이번 석룡산 산행에서 단연 눈에 띄는 꽃은 뱀무였다. 작은 앙징스런 노란꽃으로 5개의 꽃받침에 중간의 꽃술은 초록빛이어서 눈에 잘 띈다. 강원도 평창의 중왕산은 벌깨덩굴과 피나물의 노란꽃이 집중적으로 피어있었다면 화악산의 수덕-애기봉능선에는 조록싸리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경북 청화산 아래의 시루봉은 붓꽃이 많이 보였던 것이다. 산행시기가 그날 산에 피는 꽃의 종류와 색깔을 결정하는 요인이라는 것은 알만큼 되었지만 정말 신기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석룡산은 아직 꽃시즌이 아니다. 봄꽃은 끝나고 초가을이 되어야 야생화들은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안부에서도 꽃은 별다른 개화상태를 보여주지 않는다. 장마를 맞아 열심히 자라고 있는 초본류의 성장속도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안부에 올라가면 석룡산 주능선에서 특별히 급경사를 보이는 곳은 없다. 순탄한 길이 이어질 뿐이다. 숲은 더욱 울창해지고 숲바닥은 그야말로 초본류의 천국이 되어 있다. 승마류와 어수리의 하얀꽃들이 피기 시작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은 그냥 왕성하게 자라는 풀밭일 뿐이다. 길가에 바위지대도 양념으로 나타나지만 석룡산은 기본적으로 바위산이라기 보다는 주능선의 3개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바위지대가 우세한 그런 산일 뿐 그외 낮은 곳은 육산의 면모가 강하게 드러난다. 오늘 서울로 빨리 되돌아갈 일이 있어서 1시이후에는 무조건 돌아서기로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인데 1시가 될 무렵 석룡산 정상에 도착하니 아무 문제가 없다. 특히 안부에서부터는 사실상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정상을 향하여 가는 것도 하산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즉 산행깃점에서 가장 먼 곳이 이 안부이기 때문이다.
안부에 이르기 전에는 정상부근이 운무에 가려져 있었는데 도착할 즈음에는 안개는 벗겨지고 있었으나 먼곳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의 조망은 운무에 가려져 있어서 화악산도, 명지산도, 주변 산줄기의 능선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 선 이정표에는 조무락골-안부-정상이 5.6km인데 비해 정상에서 서쪽능선을 타고 조무골산장으로 가는 길은 4.8km남짓이다. 엔간하면 정상에서 안부로 와서 왔던 길로 도로 내려오려고 했으나 엄연히 짧은 것이 능선길이라 감지덕지다. 정상과 거의 같은 높이의 2봉에 올라서도 정상은 제대로 보이지 않고 능선만은 암릉으로 변하면서 단애와 소나무, 그리고 단애아래의 골짜기와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산록이 드러난다. 능선의 요철이 많아지면서 경치는 좋아지는데 시간이 없으니 안타깝다. 정상이 제대로 보인 것은 3봉의 단애끝에서 골짜기를 내려다 보고있을 때 안개가 살짝 걷히어 정상을 잠깐 보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사실은 올라갈 때 이용해야 할 길이지만 능선이 펑퍼짐해지고 소나무숲이 전개되거나 하면 기분이 그럴 수 없이 시원해진다.
능선이 평지처럼 구배라고는 없이 좌우로만 경사가 진 곳에 서 있는 잣나무숲은 그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부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그곳을 지나 경사진 산록길로 내려갈 때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야생화 한종이 눈에 띄었다. 아직 그 야생화의 이름을 알아낼 시간이 없어 지금까지 사진을 묵혀두고 있는데 이 특이 야생화를 발견한 것은 석룡산이 다양한 초본류를 보유하고 있다는 산 증거인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내려와 비교적 완만한 경사길로 들어서니 하늘로 죽죽 뻗은 낙엽송 숲이다. 이쪽의 숲은 마음먹고 육림한 흔적이 있는 아름다운 낙엽송 수림이다. 숲사이의 길은 폭신한 낙엽송 단풍이 쌓인 길이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사람의 길이 바로 비가 오면 물길이 되고 그러면 빗물이 개울처럼 흘러가며 낙엽은 물론 흙마저 훑어내려가 길이 없어지는 상태가 된다. 석룡산 낙엽송숲길은 이미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이 밟은 곳은 다져지게 마련이고 다른 곳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곳은 반드시 패이고 만다. 이런 악순환을 막으려면 산길을 목도(木道)화하는 수밖에 없다. 산길이 끝나고 큰길이 나온다. 큰길 옆의 개울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열과 진땀에 얼룩진 얼굴을 씻으며 하루 산행도 끝나가는 것을 실감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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