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게시판2009. 2. 23. 11:27

2007년  6월 1일 산행

설악산 1708m -  옛 설악산이 그립다.

 

사진:신선대풍경,
아래:양폭에서 음폭쪽으로 바라본 풍경.
그아래:천당폭. 지금도 아름답지만 옛날엔 더 아름다웠다.

천당폭포의 악몽이 시작된 것은 푸른 보석같은 소에 거대한 바윗돌이 하나 떨어진 뒤. 그 뒤로 자잘한 바위들이 깊은 소를 메우기시작, 지금과 같이 거대한 양푼안에 큰돌, 작은돌, 자갈돌이 가득찬 형태가 돼버리고 말았다. 처음 큰 바윗돌이 떨어졌을 때 헬기를 써서 제거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이 깊은 협곡이고 바윗돌의 무게도 만만치 않고 해선지 아니면 처음부터 손놓고 있었는지 바위는 제거되지 않았고 따라서 설악산의 보석은 무참히 오늘의 몰골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사진 이런 일이 있기 전 어느해 가을에 찍은 천당폭포, 깊이를 모를 정도로 검으튀튀하다.



'한국의산 동영상 스트리밍'에 내보낼 설악산 내용물을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 무비카메라(디지털1세대제품이라 꽤 무겁다)를 들고 천불동을 다시 보고 희운각대피소에서 하룻밤 잔 뒤 공룡을 거쳐 비선대로 내려왔다.

공룡은 두가지 목적으로 산행하기 어려운 곳이다.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산행을 하든지 아니면 아예 시간을 무시하고 산행을 하든지 두가지다. 카메라를 절거덕거리며 다니기에는 공룡의 산사면은 경사가 너무 급하다. 바위를 오르내리거나 로프를 잡을 때는 매우 거추장스럽다.

첫날 천불동으로 들어갈 때는 평일이라 사람이 적을 줄 알았지만 비선대까지 가는 동안에는 수학여행온 것인지 수업하다 놀러온 것인지 모를 복장으로 비선대로 비선대로 가는 학생줄이 연이어졌다.

설악산은 비선대로 들어가는 숲사이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암봉으로 인사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준수하고 수려했다. 푸른숲 뒤로 솟아있는 암봉들의 색깔은 약간 적황색끼가 느껴지는 색깔이다. 그 색깔은 숲옆으로 흐르는 쌍천에 쫙 깔린 돌무더기의 색깔 그대로였다. 쌍천은 개천폭이 더 늘어난 것 같고 깔린 돌도 더 많아진 것 같다. 작년의 엄청난 폭우탓일 가능성이 크다. 6월의 태양아래 하얗게 빛나는 개울 속에서 물줄기를 찾기란 쉽지않다. 그러나 천불동으로 들어가면 물은 푸른옥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비선대에 이르기전 숲사이로 보이는 개울물빛은 폐부에 스며든 도시의 찌든 때를 씻어주기에 충분할 정도다. 하얀바위가 그 물빛깔을 더욱 투명하게 더욱 푸르게 한다. 천불동에서 폭우피해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천불동은 그만큼 웬만한 폭류는 그대로 흘려보내기에 적당한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좁고 깊어 홍수가 날 여지가 없다. 요즘 천불동 뿐만 아니라 설악산 전체, 그리고 설악산 주변이 난리통이다. 산에서는 헬기소리가 쉴새없이 난다. 산에 사는 동물들에겐(동물들이 있다면?) 엄청난 스테레스일 것이다. 이 헬기들이 하는 일이 설악산의 대부분의 오솔길에 돌을 까는 작업이다. 이 돌까는 작업은 마등령에서 공룡의 능선에서 천불동 개울가 산길에서 공히 벌어지고 있다. 어제 공룡의 나한봉에서 만난 어떤 장년은 마등령에서 나한봉으로 오는 길이 신작로가 됐다고 한탄했는데 그는 이게 잘하는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 산에다 깔고 있는 이 돌들은 설악산에서 폭류가 가져다 준 돌무데기가 어디나 널려있기에 돌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원이 풍부하다. 문제는 세굴(사람들의 답압으로 흙이 무너져 작은 개울이 되다시피하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하여 까는 이 돌들의 다른 피해는 없을 것인가이다. 설악산이 아닌 요소들이 설악산 모든 길에 쫙 깔리는 것도 그렇다. 이렇게 깐 돌위에 일부 마사토를 부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산길을 걷는게 무척 편리해지긴 할 모양이다.

예를 들면 어제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올 때 옛날같으면 턱이 무척 높아 걸어내려가기가 매우 불편했는데 지금은 보통 계단의 높이가 돼서 걷기가 좋아진 것도 그 하나이다. 첫날의 목적지는 희운각이다. 그래서 길가에서 볼 수 있는 웬만한 경치는 다 무비카메라로 찍으면서 올라간다. 밧데리가 2개인데 하나는 1시간 가량, 하나는 30분 분량을 찍을 수 밖에 없어 내일 공룡을 다 넘기전에 밧데리가 끝날 가능성도 있다. 비선대는 정말 아름다운 바위이다. 선녀가 비상할 것 같은 맨 오른쪽 바위 그리고 그보다도 조금 높은 바위 두 개가 왼쪽에 있다. 와선대 위쪽 다리위에서 천불동 계곡안을 들여다보는 맛은 정말 꼭 다시 보고싶은 경치였다.

우리 친구중에는 50년대말 서울대생으로 설악산 개척등반대로 대청봉을 등반했다고 폼을 재는 친구가 있다. 코스하나없이 그리고 어느골짜기로 들어가야 안전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밀림과 폭포, 담과 폭류로 점철된 천불동을 지도와 나침반만을 의지하여 올랐을 그들의 노고가 있기에 오늘 이렇게 쉽게 설악산을 오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병풍교일대에서 어떻게 지도를 읽었는지, 그리고 양폭위쪽에서 천당폭포로 어떻게 진출했는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지금 그곳에 모두 계단과 다리가 놓여있지만 그게 없다고 상상해보라. 과연 설악산이 대중의 산이 되었겠는가?

희운각이라면 생각나는 게 두가지가 있다. 어느해 비를 잔뜩 맞으며 설악동에서 양폭에 도착했는데 때는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양폭사람들은 더 올라갈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우중에 양폭을 출발, 희운각으로 향했다. 비는 쉴새 없이 내리고 양폭, 천당폭과 그 위 무명폭의 물소리는 벼락치듯했지만 그때처럼 고요한 마음으로 산행한 적이 없을 정도로 희운각으로 접근했다. 비가 더 세어질 때 희운각에 도착했는데 그때가 10시경이었다. 매점 창구에서 비를 맞으며 도착하는 나를 마치 도깨비를 보듯 한 그 사람의 시선이 지금도 생각난다.

또 한번은 설악동을 출발, 마등령을 거쳐 공룡능선을 타고 무너미 고개에서 천불동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양폭을 지나 내려가는데 허공에 빨간 불이 반짝거리다가 말곤했다. 가까이 가니 사람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천불동에 빨려 정신없이 들어왔다가 일몰시간을 계산하지 못한채 날이 저물었다는 것이다. 그를 데리고 귀면암에 도착하여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어둠속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여성이 포함된 댓명정도 되는 팀이었다. 이들도 날이 저물자 속수무책으로 어둠속에서 무언가를 기다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데리고 천불동을 빠져나올 때 어둠속에서 희뿌옇게 비선대가 보이는 것을 느낌으로 알고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그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비선대에 도착한 것은 1시경이었다.

오늘은 희운각에만 가면 되니 천불동을 산보하듯이 산행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평일이니 잠자리 걱정할 필요도 없을 터이고...

그런데 무너미고개위에 올라와 보니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신선봉으로 가기로 한다. 신선봉에 올라 운해가 조금 남아있는 공룡능선을 찍었다. 보기 쉬운 광경은 아니었다. 한참 신나게 여러장의 사진을 찍고 내려오다가 중간쯤의 암릉에서 이번엔 일몰이 가까워져 망원을 끼워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공룡을 이렇게 여유있게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신선봉 꼭대기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일몰을 찍은 적이 있었던가? 더구나 잠잘 데가 바로 옆에서 있어서 느긋하게 일몰을 바라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천불동에서 희운각까지 한국의 산 방송 "천불동" (1시간2분)참조: 공룡의 새소리;천상의 새소리인양 환상적이다.(볼륨을 크게 하여 들어보시길..)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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