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2. 18:02
소백산 비로봉 1439 m
위치: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순흥면 - 충북 단양군 단양읍, 가곡면
드라이브 코스:서울-양재동-3번도로-곤지암-중앙고속도로-여주나들목-중부내륙고속도로-감곡IC-38번도로-제천-5번도로-단양-다리안관광지-천동계곡

1/15일

겨울 비로봉엔 혹독한 바람이 분다. 이번 산행에도 그에 대한 대비를 했다. 고어텍스 자켓의 후드중 목과 입을 감싸는 부분의 바람을 막는 역할을 했던 떨어져 나간 벨크로테입을 새로 덧댄 것도 그중 하나였다. 후드없이 그리고 있더라도 부실한 채로 소백산 비로봉산행을 하려고 했다가는 무슨 일이 날지 모른다. 그만큼 비로봉의 바람은 체감온도가 낮다. 도담삼봉을 보고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11시30분쯤. 편의점에 들러 헤드랜턴용 배터리를 사고 천동계곡으로 들어간다. 오늘도 낙조를 볼 생각이다. 길가 공지에 두개의 비석이 눈길을 끈다. 그중 하나가 "고산자김정호선생기념비(古山子金正浩先生追慕碑)였다. 서울의 청량산악회에서 세웠다고 되어있다.지도에 관심이 많고 직접 그리기도 해보면서 요즘은 그래도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GPS, 이동수단이 있는데도 힘이 드는데 붓과 먹밖에 없었던 시절 어떻게 그 어려운 지도제작을 감당했을까. 그의 초인적인 노력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금년엔 적설량이 적어 소백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까지도 아이젠 없이 들어갈 수 있다.

천동계곡-비로봉산행..

다리안 폭포와 용추


계곡의 소


낙엽송숲아래를 가다



사스레나무



주목


다리안 폭포 위로 난 다리를 지나면서 다리아래를 내려다본다. 소백산의 제2연화봉에서 1연화봉, 대궐터안부에서 주목지대로 진입하기직전까지 약 5km를 삼각형의 빗면으로 하고 다리안 폭포를 꼭지점으로 한 삼각형을 이루는 넓은 소백산산록(여기엔 백사골, 연화골등 4개의 지계곡이 포함된다)의 물을 모두 받아 다리안폭포에 와서 불과 몇 m의 틈을 비집고 내려가는 곳이다. 틈이 좁은 것은 바위지대이기도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폭포도 있고 소(용추)도 깊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리위 높은 데서 볼 게 아니라 근접해서 보고싶은데 여기서 여유를 부릴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한번 내려가서 보고 싶다. 장마철 같은 때에..

매표소가 가까워오면서 기계적인 반응이 나온다. 손이 포켓에 들어가서 지폐 꼬투리를 찾는 것도 그런 반응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렇게 늦은 시간(12시가 안되었지만 비로봉을 다녀올 생각이라면 빠른시간은 아니다)에 입장을 시켜줄지 공연한 걱정도 머리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데 매표소에 아무도 없다. 그제서야 금년부터 모든 국립공원출입이 공짜로 되었다는 게 상기되어온다. 참 편리해졌다. 돈을 받지 않으면 잔소리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 상식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관리사무소(소백산북부사무소)를 지나 계곡을 끼고 올라가는 큰길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간다. 길가 계곡의 계류는 거의 전부 얼음과 눈에 덮여 있고 소가 있는 곳은 중간에 얼지 않은 곳이 있다. 바위가 검으튀튀하여 물빛마저 검어보이지만 빛이 밝은 곳의 소는 바닥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 맑은 계류다. 얼음으로 뒤덮인 채 얼음아래를 흘러가는 물에서 간헐적으로 꾸루룩 꾸룩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밤에는 물아래 누군가 숨을 죽이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숨을 들이키다가 내는 소리같아 소름이 돋을 것 같다.

 사진:바람부는 산사면

오늘은 월요일이다. 주말에 일이 있어 월요산행을 하게 됐는데 하루 종일 한사람도 만나지 못할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도 적지 않은 사람이 비로봉을 찾아온 것을 보고 속으로 좀 놀란다. 희방사에서 올라왔다가 천동계곡으로 내려가는 사람, 그 반대인 사람, 천동계곡에서 비로사로 내려가는 팀들도 있다. 관리사무소를 지나자 응달쪽 길바닥은 완전히 눈으로 덮여 있다. 그러나 양지쪽은 눈이 녹아있다. 처음에는 계곡옆의 능선이 햇볕을 차단하여 음산했지만 계곡으로 들어선지 50분 되었을 때 계곡가 능선은 낮아지고 햇볕이 비치는 길(이젠 양지쪽 길도 눈에 덮여있다) 엔 안온한 기분이 감돌고 맞은 산록의 나목숲도 가지끝까지 세세하게 보일정도로 투명한 대기속에서 봄의 그림자가 잡힐듯도 한 그런 느낌이 든다. 평지 가까운 곳에서 이런 광경을 보면서 특별한 인상을 받을 일은 없을 터인데 왜 소백산에 오면 이런 평범한 풍광도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고산지역의 어떤 기운때문이 아닐까? 공기가 투명한 것 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일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정도 되었을 무렵 길가분위기는 산문적인 풍경으로 변한다. 낙엽송 숲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바닥에 눈 덮인 낙엽송숲은 그 아래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기울어진 햇살에 나무둥치 그림자가 길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도 꽤나 산문적이다. 길바닥은 하얀 눈으로 포장되어 있으니 낙엽송의 검으튀튀한 수피와 대조적인 것도 그렇다.

 사진:정상.뒤에 신선봉과 국망봉꼭대기가 보인다.

이제 10분만 더 올라가면 천동쉼터다. 다리안의 주차장에서 천동쉼터까지 4.3km, 사무소에서는 3.1km 거리다. 천동쉼터에는 매점이 있고 물이 있고 취사대가 있고 화장실이 있다. 겨울에는 물이 얼어있어 쉼터에서 식사를 하려면 아래에서 준비해오는 것이 좋다. 큰길가 계곡물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경험때문이다. 큰길가 계곡으로 유입되는 다른 지계곡의 물은 마셔도 될 것 같다. 물이 없다면 쉼터에서 북쪽으로 30분정도 올라가면 샘터가 있으므로 여기에서 물을 확보해도 된다. 천동쉼터의 해발높이는 1020m정도 된다. 안부에 다다르기전 뒤돌아보면 충북지역의 명산들을 포함한 산과 능선의 파고가 소백을 향하여 몰려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금수산은 물론 멀리 월악산이 눈길을 끄는데 오늘은 조금 희미해 보인다. 길가의 심설속에 벗은 하얀 가지를 푸른창공에 드러내고 있는 사스레나무 몇 그루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심설의 눈밭에 아직 키가 작은 조림된 주목이 여기저기 백혀있는 것과 그 뒤의 키작은 나목숲도 특이한 설경을 만들어 낸다. 고산에 올라왔다는 감이 들게 하는 것들이다.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이제 해발고도 400m정도와 2.5km를 더 걸으면 된다.

 사진:비로봉 풍경

천동쉼터에서 주목고목이 있는 대궐터위 안부까지는 1.4km정도. 약 40분정도가 걸린다. 이곳의 해발고도가 1340m정도 되므로 이제 오르막은 거의 다 오른 셈이 된다. 여기서부터 백두대간 갈림길까지는 주목터널이 기다리고 있어서 겨울에는 가장 주목받는 곳이다. 카메라를 꺼낼 시간이 된 것이다.

5년전 2월의 설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밑에서 올라올 때부터 어느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가지위에 눈이 듬성듬성 얹혀있는게 고작이다. 둥치건, 가지건, 잎어건 모두 얼음과 눈에 휩싸여 몇톤을 될듯한 눈을 지고 있던 광경에 비교하면 볼품이 없는 주목의 겨울 풍경이다.
주목지대를 지나 산록을 5분여 횡단하면 주능선에 닿는다. 주능선에서 보는 조망은 아무리 겨울이 시시할지라도 겨울소백의 기품을 결코 잃지 않고 멀고 넓고 웅장하고 거대하게 반도의 한 중간을 달리는 고도의 능선풍광으로서 언제나 숨이 막힐듯한 가경으로 다가선다.

 사진:해질무렵

소백산은 혼자 높이 솟아있는 봉우리가 아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고도가 1400m에 가깝다. 비로봉에서 북으로 뻗는 능선도 민백이재까지가 1400m를 유지한다. 이 고도의 능선(비로봉남쪽 고도1398m지점)에서 보면 비로봉은 밋밋한 언덕에 가까운 봉우리다. 더구나 생김새도 언덕처럼 유순하다. 그러나 능선에서 조금만 각도를 달리하면 넓고 웅장한 조망이 시야에 들어온다. 서쪽을 보면 1연화봉, 천체관측소가 있는 연화봉, 2연화봉 그리고 그 뒤의 도솔봉능선이 웅대한 스카이라인을 이룬 것이 목격된다. 비로봉과 연화봉 사이를 파고든 골짜기는 또 얼마나 깊은가? 연화봉쪽 백두대간 능선에서만도 6개의 지능선이 형성되어 V자형 골짜기로 뻗어내리고 있다. 북쪽을 보면 민백이재에서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긴 능선 뒤로 민봉, 신선봉이 보이고 그 뒤에는 영춘의 계명산(끝자락에 온달산성이 있다)능선이 희미하게 보인다. 민백이재 안쪽의 넓은 산록엔 주목군락이 있고 그 외에는 철쭉나무의 가지들이 산록을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는데 모두가 키가 작아 소백산의 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곳은 워낙 계절풍이 심한 곳이라 나무가 마음대로 키를 키울 수도 없는 곳이긴 하지만. 능선에서 주목감시초소쪽을 바라보는 경사가 밋밋한 산록을 보면 지금 당장 바람 한점 없다고 하더라도 굉장한 바람이 부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의 그림이 보인다. 경사면 바닥의 풀뭉텅이와 눈이 바람이 흘러가는 형태대로 미세한 골이 패이고 미세한 능선이 만들어져 바람지도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북서계절풍의 손바닥도장이 찍힌 곳이라고나 할까?

능선의 기온은 섭씨 -5도를 내려가지는 않는 듯하다. 그리고 바람도 그렇게 심하지 않다. 그런데도 체감온도는 -10도는 되는 듯하다. 드디어 비로봉에 도착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려가고 또 올라온다. 그리곤 갑자기 조용해진다. 시간을 보니 4시반이 다 되어간다. 누구나 하산을 서둘렀기 때문일 것이다. 더는 올라오는 사람이 없다. 일몰을 보려고 어정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비로봉에서 갈림길까지 내려온다. 정상이나 이곳 갈림길(천동방향하산갈림길)이나 일몰을 보는 데는 별다른 장애요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권운이 서쪽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 일몰을 보기가 힘들 것 같았다. 산은 적막했다. 주목지대를 빠져나와 고목이 있는데까지 내려와도 해를 볼 수 있는 각도였지만 해는 구름뒤에 자취를 감추고 더는 어떤 빛살도 보여주지 않는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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