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4. 15:18

소백산 비로봉-국망봉 2005/2/5


사진:초암사와 인근의 풍광

초암사로 들어가는 길은 기억에 새롭다. 옛날 이맘때쯤(그리 먼 옛날은 아니다)에 초암사로 올라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차 뒷바퀴가 길옆 간이 하수구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그때 산으로 올라가던 많은 산꾼들이 차 뒷부분을 들어 길위에 올려 놓아 초암사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길이 전부 콘크리트길로 포장이 되어 있다. 비록 차한대가 겨우 통행할 정도의 좁은 길이지만 군데군데 대향차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통행에는 불편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꽃피는 철이거나 단풍철이라면 매표소 아래에 있는 동네주변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진:죽계구곡제1곡

초암사에 이를 때까지 개울구비마다 제몇(?)곡이니 하는 팻말이 박혀있다. 비로봉과 국망봉 사이(정확히는 국망봉 남서쪽 1km 부근의 능선 서쪽)의 2개 계곡 즉 월전계곡과 석륜암계곡에서 발원한 물은 초암사 북쪽에서 모여 아름다운 계곡을 형성하면서 흘러내린다. 이 계곡을 죽계라고 한다. 죽계에는 9개의 구비가 있고 거기엔 단애와 소등이 있어 비경을 이룬다고 하여 죽계9곡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퇴계(李退溪)의 시에 “소백산 남녘 들 옛 순흥(順興)고을 터에 흰 구름 포갠 위에 죽계(竹溪)가흐르도다”하는 구절이 있다.

사진:석륜암터. 현재 얼음바다. 바위는 봉두암

(이가원-李家源저 “퇴계시역주-退溪詩譯註”에서) 국망봉이 이름있는 산이듯 죽계 또한 이름있는 계곡이었던 것이다. 퇴계는 석륜사(석륜암. 이가원씨는 석륜사가 태백산에 있다고 하였으나 죽계위쪽에 석륜암이 있는 줄 몰랐기 때문일 것 같다. 지금은 절이 없고 절터가 남아 있어 석륜암터라고 한다. 아니면 부석사의 현판도 태백산 부석사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소백산까지 태백산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석륜사가 언급된 시에서 “..터엉 빈 산에는 옛 대숲이 없어지곤 차가운 시내만이 이름만 남았으니 그 한갈래 물줄기를 뉘라서 움켜 볼꼬...”라고 읊고 있는데 이퇴계 생존시에 이미 석륜암이 사라지고 없어졌으며 차가운 시내만이 이름만 남았다고 한다. 이 시내가 바로 석륜암계곡의 물인 것이다. 퇴계 자신이 붙인 원주(元註)에 “죽계의 근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어 이러한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같은 시에서 “깊숙이 찾아들어 높은 데를 올라보고 감개가 무량하여 쑥절에 묵었었소.”라고 읊기도 했는데 이는 죽계구곡에서 국망봉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국망봉에서 읊은 시 3수(首)가 그것을 증명한다. 국망봉에 올라 퇴계는 무엇을 보려고 했을까? “아득한 내와 구름 저녁 나절 피어올라, 용문산도 뵈지 않거든 하물며 서울이냐, 고운님 계신 곳을 알고자 하온다면, 하늘가 일말 구름 멀리서 바라보오.” 그는 고운님 즉 임금이 있는 한양땅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용문산도 찾지 못했다는 한스러운 구절인 것이다.


사진:계곡의 얼음. 홍수직전이다.

이렇듯 퇴계의 족적이 남아 있는 죽계구곡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10시께. 오늘은 국망봉으로 가지 않고 달밭(月田계곡)으로 들어가 달밭에서 달밭재로 올라가 비로사에서 올라오는 코스와 만나 비로봉으로 갔다가 국망봉으로 가서 내려오기로 한다. 하지만 산에서의 결정은 수많은 변수에 의해 원래의 목적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주차장에서 나와 초암사를 올라가는데 정말이지 아침녁의 너무도 해맑은 산사주위의 숲과 자연이 시야에 투명하게 들어온다. 짚차를 타고 나보다 늦게 도착한 산꾼들은 먼저 올라가고 나는 우선 그 투명한 광경부터 촬영한다. 햇살이 너무도 정갈했다. 소백산 남록은 단양쪽인 소백산 북록에 비해 훨씬 따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백산맥이 모진 겨울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햇살이 포근해보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아 얼핏보기엔 지금이 겨울인지 아닌지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한기와 죽계계곡의 얼음밖에 없었다.
눈이 별로 없는 계곡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 여름 장마철때의 수위에 버금가는 수량이 그대로 언 것 같은 얼음이었다. 얼음은 물이 위로 흐르며 얼면서 점점 두꺼워지다가 나중엔 개울에서 넘쳐 인근 도로를 덮기도 한다. 그래서 계곡의 얼음은 잎이 다 떨어진 나목의 활엽수 숲에서 더욱 시선을 끈다. 초암사를 지나 잣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면 국망봉으로 올라가는 길과 월전으로 가는 길이 나뉜다. 월전으로 가는 길엔 “등산로 아님”이란 팻말이 세워져 있다. 국망봉으로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가서 다리를 건너가면 된다. 이 길을 무심코 지나쳤음을 뒤늦게 깨닫고 다시 내려와 월전(달밭골. 비로사에서 달밭재로 올라오는 계곡도 달밭계곡이라고 하는데 초암사에서 올라오는 월전동을 포함한 비로봉-원적봉 능선 동쪽의 계곡을 순흥달밭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로봉에서 원적봉을 거쳐 풍기에서 부석사로 가는 931도로 근처까지 뻗은 능선이 순흥면과 풍기읍의 경계선을 이룬다)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길은 잣나무숲이 울창한 길이라 숲운치도 옆의 개울도 좋은 호젓한 길이다. 아마 달밭에 사는 사람들의 발걸음만으로 형성된 길인 듯했다. 이길로 해서 비로봉에 가겠다는 사람이 갔던 길로 되돌아 오지 않는다음에야 가장 가깝고 손쉬운 비로봉 산행깃점인 비로사코스에 비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교통도 불편한 이곳 초암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비로봉에 오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혹시 비로봉으로 갔다가 국망봉을 오른 뒤 초암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월전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리본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수량많고 숲이 울창한 월전계곡을 여름에 올라가면 어떤 생각이 들까? 시간이 있으면 이곳에 한번 더 오고 싶은데.. 숲은 초암사위쪽 갈림길(달밭골과 국망봉코스 갈림길)을 지나 한동안 잣나무숲이 계속되다 활엽수 나목숲, 다시 넓지 않은 잣나무숲을 통과한 뒤 부터는 줄곧 나목숲이었다. 개울이 합치는 꽤 넓은 계곡 한곳엔 온통 얼음바다를 이룬 곳도 있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20분쯤에 월전동에 도착했다. 월전은 3호정도의 민가가 보이는 곳이었다. 민가는 퇴락하기 직전의 집들이란 인상을 주었는데 땅은 경사가 완만하여 경작지로 일굴 수 있는 정도였지만 경작지는 보이지 않아 농업이 주업은 아닌 듯보였다. 이곳 이름이 왜 월전동인지 알지 못하나 아무래도 높은 곳이면서 비교적 평탄하여 달빛이 유난히 맑게 비치는 동네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침에 생각하기로는 월전동에서 달밭재로 올라가 비로봉으로 가기로 했고 또 실제 이곳 지형의 두드러진 점은 달밭재쪽의 능선이 푹 가라앉아 있어 올라가기도 좋았었는데 그리로 올라가는 길을 찾지 않고 내쳐 계곡으로 들어간 것이 오늘 산행의 주요 변수가 되었다. 쉬운 길이었을 비로봉-국망봉 코스산행이 매우 어렵게 진행되게 된 원인이 된 것은 순흥달밭골을 끝까지 들어가고픈 생각과 지도에 보이는 달밭폭포를 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요점은 비로사-비로봉길은 몇 번이나 오르내린 길이었고 국망봉-초암사코스 또한 자주 왕래한 길이라는 점을 알고서 또다시 같은 길을 오르는 것을 스스로 기피했을지도 몰랐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백산 비로봉-국망봉 사이에 주능선에 오르는 제3의 길을 찾아 올라갔을 리가 없을 것이다. 비로봉에서 보아 국망봉까지 석륜암으로 내려가는 능선이외에 또다른 능선이 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국망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석륜암골과 죽계구곡을 이루는 길다란 능선이 초암사를 거쳐 배점리까지 뻗어가는 능선과 비로봉에서 931번도로까지 뻗어가는 길다란 능선 사이의 산록을 자세히 보면 몇 가닥의 잔주름이 보인다. 이 잔주름들이 지능선이 되어 석륜암골과 달밭골을 형성하다가 초암사북쪽에서 끝나고 거기서부터 죽계구곡이 시작되는 것을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능선전망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사진:월전폭포(근육질의 빙폭)

월전동에서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산행시작 2시간여, 월전동에서 올라오기 40여분경 월전폭포에 닿는다. 길도 또렷하고 리본도 더러 붙어 있는가 하면 초암사 위쪽 갈림길에서부터 간헐적으로 길을 덮고 있는 눈위의 발자국도 일정하게 찍혀있어 길잡이가 되어준다. 이 발자국은 나중에 비로봉-국망봉 능선의 정중앙의 안부에서 주코스와 합류하며 사라졌다. 월전폭포는 빙폭을 이루고 있는 2단폭포였으나 별로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빙폭은 마치 동장군이 힘자랑이라도 하듯 표면이 팔뚝근육처럼 울근불근 솟아있어서 볼만했다. 월전폭포를 왼쪽으로 끼고 올라가니 위쪽은 완만한 경사를 보이는 나목숲이었다. 왼쪽 능선은 가파르게 솟아 있지만 고도가 낮아져서 길없이도 올라갈 수 있을 듯했다. 그 능선에만 올라서면 비로봉으로 갈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타고 올라가는 길이 어디서 끝나는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때쯤 눈을 머리에 인 비로봉이 높지거니 보이기 시작했다. 주능선아래 계곡부근에 흔히 있는 벼랑이나 너덜지대, 단애성 급경사등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으나 계곡은 1440m의 비로봉이 보이는데도 유순하고 길도 또렷하여 이게 무슨 조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안부의 눈처마

아늑한 골짜기 양지쪽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오른쪽의 급경사 능선을 오른다. 국망봉쪽으로 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로봉에서 멀어지는 길이었다. 길은 푸석흙으로 되어 있어 초본류도 살지 않는 척박한 토질이었고 양지바른 곳이라 눈이라고는 없어 삭막해보였다. 올라갈수록 진달래(철쭉포함)나무가 많아 봄철에는 그래도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발 1200m전후 급경사산록의 바람없는 아늑한 산사면 낙엽위에 앉아 배낭을 풀고 점심을 먹었다. 비로봉이 골짜기 너머 빤히 바라보이는 지점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능선을 타고 올라 26분만에 주능선 안부에 도착한다. 이 길은 하산할 때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꽤 쓸만한 길이라는 사실은 인정해야겠다. 주능선 안부에서 급경사를 이룬 지능선만 내려가면 개울이 있는 계곡바닥에서부터는 길이 좋고 특히 월전동에서 초암사로 내려가는 길은 길이 좋아 시간이 아까운 사람들에게 좋을 듯싶다. 월전폭포에서 12시 13분에 출발, 2시 2분에 주능선에 도착. 점심시간 40분을 빼면 월전폭포에서 1시간 10분만에 주능선에 올라온 셈이 되었다. 초암사에서 따지면 점심시간 빼고 3시간 20분이 걸렸다.

< 주능선은 다져진 눈길이었고 길가 철쭉밭의 철쭉 가지들이 가지끝에 바람소리를 매달고 겨울바람이 왱왱거리고 있었다. 스패츠에다 후드까지 덮어쓰고 목도리를 칭칭 감았는데도 바람은 기가차게 빈틈을 파고 든다.


사진:비로봉

비록 설화가 피기에는 날이 너무 가물어 기대한 설화는 보지 못했지만 안부에서 비로봉을 바라보는 조망속에 겨울의 능선에서 보고자 했던 것이 거의 다 들어있었다. 깊은 눈에 뒤덮인 끝없는 설릉과 비로봉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꽤 긴 1400m대 능선과 1440m의 비로봉과 푸른 하늘과 맞닿은 높은 스카이라인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백색의 마취제같은 투명한 바람과 신선한 대기의 맛에 취해 겨울의 한 가운데에 서있음을 실감한 느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작년 함백산의 설중산행때 느꼈던 것이다. 뒤돌아보면 깊은 눈에 파묻힌 철쭉나무숲 사이로 하얀 눈길이 오후의 햇빛을 받고 눈이 부시게 빛나고 숲 꼭대기는 코발트 블루의 하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데 비로봉이 너무 멀어보여 비로봉에 올랐다가 다시 국망봉으로 갈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웠다. 묘하게 이 능선 오르막 길은 비로봉과 국망봉을 잇는 능선의 거의 정중앙에서 주능선과 합류한 듯했다. 국망봉이 얼마나 떨어져 있나 하고 완경사를 올라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수년전에 소백산종주를 함께 했던 친구였다. 폼나게 설명을 하고 나서 국망봉이 보이는 평탄한 지점에 올라서서 바라본 국망봉은 비로봉보다 더 멀어보인다. 그래서 먼저 비로봉에 간 다음 여의치 못하면 능선을 따라 달밭재로 내려와 그냥 초암사로 가기로 하자. 시간이 있으면 국망봉으로 가되 그것은 비로봉에서 결정하기로 한다. 비로봉이나 국망봉에서 보면 두 거인 사이에는 단지 밋밋한 안부와 완만한 산사면이 있을 뿐인듯한데 실제로는 오르내리거나 돌아가거나 해야하는 작은 암봉도 여럿 되고 철사다리가 설치된 곳도 있다.

금년들어 처음 눈처마 다운 눈처마를 목격한 것도 이곳 안부에서였다. 평년에 비해 소백산으로서는 빈약한 것이지만 그래도 높이 1m가 넘는 눈처마가 꽤 길게 이어지고 있다. 나중에 알았지만 바람이 계곡(어의계곡)의 눈을 쓸어다가 이 안부에다 쏟아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비로봉이나 국망봉 부근의 높은 능선에는 눈이 땅바닥에 쌓일 여유를 주지 않고 강풍이 불어제끼니 눈이 쌓이질 않아 맨땅이 드러난 상태로 황량한 겨울 풍광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어의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가까운 능선봉위에 올라서자 강풍이 휘몰아쳤다. 여태까지의 바람은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후드를 뒤집어 썼는데도 안에 쓴 모자챙에 부딪친 바람이 광대뼈에 닿는 바람에 뼈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이 전해져온다. 능선봉은 정상에서 가깝고(600m안팎) 높이가 1420여m나 되기 때문에 비로봉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이 봉우리부근에서 비로봉 정상까지는 목도(나무계단형보도)로 이어져 있어 길가의 초지를 보호하도록 해놓았다. 천동리나 희방사쪽에서 비로봉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까만 점처럼 보인다. 겨울엔 비로봉에 오른뒤 천동리로 되돌아 가거나 비로봉에서 비로사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사람들이나 국망봉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강풍의 세례를 받으며 비로봉에 도착한 것은 3시경. 주변을 조망한 뒤 국망봉을 향해 발걸음을 뗀다. 오후 3시는 하산하기에는 빠른 시간은 아니지만 민주지산에서도 각호산을 향해 떠난 것이 오후 4시였고 각호산정상에 오른 것은 5시10분쯤이었다. 국망봉까지 2시간이상은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촬영시간포함) 공기가 맑은 겨울엔 산위의 특정지점은 실제 이상으로 가까워 보이는데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 날이 어느정도 길어졌을 것을 고려하면 초암사 갈림길에서 5시경에 초암사까지의 4.4km를 내려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국망봉 가는 길의 철쭉나무숲속 눈길

이번 비로봉-국망봉 산행에서 유난히 시선을 끈 현상 하나를 들라면 철쭉 숲이 상당히 무성해진 점이었다. 철쭉숲을 가꾸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일 테지만 숲의 영역이 넓어지고 울창해졌다. 철쭉철에 소백산에 수만명이 몰려드는 데 질려 철이 되면 소백산을 피해다니던 터였지만 내년 봄엔 어쩌면 소백산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국망봉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심설이 쌓이는 2월초를 전후하여 비로봉-국망봉 산행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기껏해야 국망봉을 올랐다가 도로 내려갔던 기억만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초암사에서 국망봉을 오르기란 힘든다. 풍기에서 버스를 타고 배점리에서 내려 초암사까지 올라와야 하는 거리는 줄잡아 4-5km는 되지 않을까?
비로봉에서 처음 주능선에 합류했던 곳까지도 눈이 많았지만 이곳에서 국망봉까지도 길은 깊은 눈에 덮여 있고 길가에 키가 넘는 울창한 철쭉 숲이 우거져 있어서 걸을만 했다.


사진: 국망봉

겨울산에서 행복한 산꾼의 감정에 휩싸일 수 있는 조건은 어떤 것일까?
1400m에 가까운 능선의 눈길이 뻗어있는 길양쪽산록을 울창한 철쭉숲이 뒤덮고 있고, 사람은 없고, 오후의 양광은 눈길위에 하얗게 빛나고, 철쭉나무숲 터널 저쪽에 국망봉이든 무슨 봉이든 봉우리의 한 모퉁이가 보이고, 봉우리위에 하늘은 쪽빛으로 물들어 있고 고산이므로 너무도 투명한 대기속에서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고 소리라고는 산길을 터덕터덕 걸아가는 자신의 발소리와 양지쪽이므로 바람소리가 조금 멀리 철쭉 숲 언저리에서 들릴뿐 산꾼들은 거의 모두 내려가버려 비로봉도 국망봉도 정적에 감싸인 그런 순간에 마지막 봉우리를 바로 앞에 두고 걸어가는 산꾼의 희열은 보통수준을 넘어설 수밖에 없으리라.
초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 능선봉이 저만치 보일 때 두 사람의 산꾼이 내려온다. 상당히 지친 몰골이다. 배낭이 묵직한 것을 보니 백두대간 종주자인 모양이다. 물어보니 역시 그렇다. 오늘 아침 마구령에서 출발했단다. 고치령-형제봉-국망봉-비로봉이 오늘의 행정이란다. 비로봉 저쪽에 대피소가 있는지 묻는다. 있다고 그리고 무인대피소라고 일러준다.
초암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시작되는 능선봉에서 국망봉을 바라보니 바위들이 몇 개 서로 받치고 있는 국망봉은 평지의 야트막한 봉우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푸른 하늘에 별로 선명하지 않은 하얀 권운의 띠 몇 가닥이 비껴가는 것만으로도 국망봉 다운 장엄함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봉우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좌우의 낮은 하늘은 진한 회색이 감도는 빛깔로 우중충한 기운이 가라앉아 있어 정상의 투명한 대기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능선봉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길도 상당부분 주변의 초본류를 보호하기 위하여 목도(나무보도)를 만들어 놓았다. 길가의 진달래밭의 진달래 떨기들은 (국망봉 주위엔 철쭉보다 진달래가 많다)은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땅에 들어붙은 듯 왜소하다. 진달래밭에 쌓인 적설량도 평년에 비해 적지만 바람이 나무보도위에 까지 쓸어올려놓은 작은 눈더미도 백설탕처럼 희고 곱다. 진달래나무 가지끝이 길길이 하늘을 찌르는 진달래나무 작은 숲위에 얹힌 검으스럼한 국망봉은 그래서 푸른 하늘아래 더욱 장엄해보인다. 국망봉아래 하얀 화강암으로 세운 새 산명비가 눈길을 끈다. 국망봉의 동북방 조망은 상월봉과 형제봉을 바라보느라 맞바람에 노출돼 온몸이 떨리는 추위속에서 주마간산으로 끝낸다.

국망봉-초암사 갈림길에 도착하여 하산을 시작한 시간은 5시 17분이었다. 하산코스의 윗부분은 양지쪽이어서 길이 녹아 진창을 이루고 있었다. 눈과 얼음이 곳곳에서 녹고 있어서 신발에 진창이 잔뜩 묻어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 이 무렵의 산길이 가장 훼손이 심한 계절이 아닌가 싶다. 능선이 끝나고 계곡(석륜암터)으로 내려가는 산록에는 나무계단이 길게 설치되어 있어서 이러한 훼손을 막고 있었다. 능선보다도 급경사이기에 나무계단이 없었다면 길이 패이는 정도가 훨씬 심했을 것이다. 계곡바닥이랄 수 있는 석륜암에 가면 물맛좋은 약수가 있어 목을 축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내려가 보니 석륜암일대는 온통 얼음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약수터에서부터 얼음이 얼어 온통 얼음벌판이 된 것이었다. 한순간 당황했다. 숨을 돌리고 봉두암이며를 눈여겨 보고 다시 내려가는 사이에 날이 저물어 오고 플래쉬를 켠다. 하산길엔 길을 덮고 빙판을 이룬 곳이 여러곳이나 되어 바쁜 발걸음을 자꾸 잡는다. 어떤 곳은 바위단애아래 길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 119전화를 하나 어쩌나 하며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골짜기의 얼음은 요기를 발한다. 하얗게 얼어 골짜기를 덮고 있는 색깔이 유난스러웠던 것이다. 차에 도착한 시간은 7시. 하산에 1시간 43분이 걸린 셈이었다.

소백산 비로봉 국망봉 지도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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