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9. 12:14
2007/1/6

사진:눈오는날의 소요산(중백운대에서 상백운대로 가며).


오늘처럼 두 차례나 폭풍설이 몰아치는 날 이동수단에 신경쓰지 않고 소요산 같은 악산(작은 산이지만 눈이 오면 암릉과 급경사가 많아 아주 미끄럽다)을 산행하고 기분좋게 귀가한 것을 적당하게 비유할만한 것은 무엇일까? 최고급의 리무진버스도 이런 날은 사고위험에 짓눌려 비록 안전하게 갔다왔다고 해도 기분좋게 이동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정부에서 동두천으로 가는 사이 잠깐 눈이 그쳤을 때 숲 가장자리의 산모롱이를 돌아돌아 달리고 있었는데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아 맞은편 창너머로 엽서의 고운 그림같은 숲의 설경이 한장 한장 수려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날은 지하철 전동차에 앉아 눈구경, 설경구경하며 전철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 소요산산행간다고 비포장도로에 뽀얀 먼지 날리며 달리던 버스가 생각난다. 군화신고 요즘 배낭에 비교하면 큰 주머니수준에 지나지 않는 배낭을 메고 소요산으로 백운산으로 산행을 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폭설이 내리는 날 초대형 리무진이 소요산 입구에 대고 산행을 하게 하고 떠날때는 예정된 시간에 딱 도착하여 타자말자 삭풍과 눈보라에 언 뺨을 순식간에 녹여주는 세상.. 이렇게 달라졌다.요즘 사람들은 비교할 과거가 없기 때문에 현재의가치를 평가할 줄 모른다. 오늘 눈은 강설량이 10cm를 넘기지 않았지만 설사 30cm가 왔다고 하더라도 초대형 리무진이 멈춰섰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신기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이 떠나질 않는다. 도봉산이나 수락산, 그리고 최근엔 예봉산도 전철로 갈 수 있게 되었다지만 소요산은 조금 다르다. 적어도 서울시내산은 아니지 않는가? 전철은 의정부역에서 갈아타는 줄로 알았으나 시내역(1호선)에서 타고 소요산역에서 하차할 수 있었다. 의정부역에서는 동두천행전철승강장이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시내에서 타고 오는 게 편리할 것 같다. 인천이나, 천안역에서 소요산행 전철이 있으니 인천사람들은 산행클럽의 요금을 내지않고도 소요산까지 올 수 있으니 세상이 좋아져도 웬만큼 좋아진 게 아니다. 단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폭설이 올거란 예보가 있으면 그날은 만사를 제쳐놓고 소요산행 전철을 탈 생각이다. 그리고 오늘처럼 삼각대다 여벌렌즈다 버너다 하며 바리바리 지고갈게 아니라 간편한 복장에 배낭도 색수준으로 다운그레이드하여 지고 카메라도 가벼운 걸로 가져가 설경이 아름다운 소요산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한번 꼭 가고보싶은 때는 한여름 장마때다. 초대형 리무진이 있으니 뭐가 걱정이랴. 소요산 자재암 아래 폭포와 옆 폭포를 수량이 그득히 넘칠 때 한번 보고 싶다. 그리고 선녀탕도 그때 꼭 보고 싶다. 제일 가고 싶지 않은 때는 가을단풍철이다. 사람이 많을 것이란 이유때문이다.

방황
소요산의 설경은 바위가 많고 계곡이 깊은 산이 그렇듯이 볼만했다. 설경은 걸어가고 있는 산길 가까이의 나무들이나 바위에 눈이 덮여있거나 두껍게 쌓여있는 것 만으로 그 수려함이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배경에 무엇이 있느냐도 그림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풍경사진을 보면 이런 이치를 알고 찍은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의 질적 효과의 차이를 가늠하기는 쉬운 일이다. 소요산에는 그런 배경이 될만한 능선, 스카이라인, 규모는 작지만 깊이 패인 계곡, 단애등 사진의 중경으로 끌어들일만한 요소들이 많다. 이런 저런 경치를 구경하면서 중백운대에 이르렀고 경치가 아름다운 중백운대부근을 열심히 찍고는 기아문제를 해결하느라고 소나무고갱이에 배낭을 걸어놓고 서서 40분쯤 서서 도시락을 꺼내먹는다. 눈이 덮인 바닥에 앉을 수 없었기도 했지만 깔개가 있어서 앉아서 먹는다고 해도 다른 반찬이나, 김치팩은 땅위에 내려놓아야하니 번거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부부한쌍이 지나가다가 자기네들도 배낭과 카메라를 나처럼 소나무에 걸어놓고 아내되는 사람만 앉아 챙겨온 음식을 꺼내 먹기시작한다.

점심을 먹고 중백운대에서 상백운대로 올라가는 급경사길로 접어들 무렵부터 조금씩 내리던 눈발이 심상치않은 상황으로 변한다. 하백운대쪽을 보니 시야가 잔뜩 흐려져 있다. 뭔가 큰게 몰려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바위지대를 지나 평탄한 능선길로 접어들었을 때부터 강풍이 불면서 폭풍설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10여미터 앞의 숲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폭풍설이다. 이대로 30분만 쏟아 부어도 큰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소요산은 길이 너무도 또렷하니 걱정할 것 없겠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폭풍설의 강도가 심상치 않아보인다. 후드를 뒤집어 썼는데도 입가의 조그마한 공간에까지 눈이 들어와 입가를 차갑게 한다. 천지는 혼몽한 눈보라 소용돌이속에 휘말려 있다. 처음에는 따닥따닥 후드를 치던 소리는 싸락눈이었고 시간이 지난뒤에는 제법큰 눈송이가 바람을 타고 능선을 휙휙넘어가고 있다. 그외의 대부분은 설연이나 다름없는 소낙눈이 사태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멋진(?) 눈보라속을 산행하는 게 얼마만인가 하며 마치 횡재를 한듯 기쁘고 한편으로는 길이 안보일 정도가 되면 되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하는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사실 가리왕산같은 데서 이런 눈을 만나면 아마 매우 난감했을 것 같다. 그러다가 갈림길에 도착한다. 폭풍설은 조금 뜸해졌지만 아직도 보여야할 주위의 능선은 모두 오리무중 아닌 오리설중에 있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쪽길은 어딘가로 내려가는 길인듯 보였고 앞에는 발자국흔적이 없는 능선만이 펼쳐져있었다. 나는 의당 이 길인 줄로 알고 내려가다가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한팀이 뒤따라와서 앞질러 간다. 그들은 조금 내려가다가 위험하다면서 되돌아 올라간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택한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이상하여 되돌아올라와서는 한떼의 산꾼들이 방향을 두고 웅성거리는 곳까지 왔다. 난 이때서야 나침반을 보기로 한다. 가려고 하는 방향은 남쪽인데 나의 눈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두말않고 남쪽 코스로 걸어가기 시작한 것인데 이상한 것은 왜 조금 전에는 이길이 보이지 않았던가 하는 점이었다. 그러자 앞에 모든 것을 결정해주는 능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한대와 의상봉 능선이 눈보라속에서 벗어나 또렷한 스카이라인을 보여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위의 에피소드처럼 안개나 비 또는 눈으로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다면 나침반을 꺼내드는게 정석인데도 옛날에 월악산 만수암릉에서 안개와 장대비를 만나 방향을 잃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 셈이 되었다. 눈이 1시간만 더 왔더라도 아마 아주 엉뚱한 데 가 있었을 것만 같다. 내가 가려고 했던 능선길은 새목재-국사봉으로 해서 포천의 왕방산으로 이어진 긴 능선길이었던 것이다. 월악산 사건은 송계계곡의 팔랑소부근 휴게소에서 능선을 타고 용암봉으로 가서 만수봉에 이른 뒤 만수암릉으로 가다가 갈림길에서 길을 잃은 경우다. 이런 경우는 갑자기 안개속이거나 빗줄기속에서 길의 방향을 가늠할 다른 지형지물이 시야에서 자취를 감춤으로 해서 일어나는 판단능력 상실에 기인한다.

이 경우에는 계속 만수암릉으로 진행하는 길과 신륵사로 빠지는 길이 방향결정을 필요로 했으나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나는 돌아서서 왔던 길로 되돌아 왔고 마침 그때 만난 대학생팀은 나처럼 용암봉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는 게 신륵사로 빠져 되돌아오느라고 고생을 했던 케이스다. 나도 그 친구들도 만수암릉을 계속해서 산행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직벽로프지대에서의 안정된 산행이 불가능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도 나침반을 휴대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침반을 꺼내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판단착오가 무서운 것은 행동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냥 부리나케 움직이는 특성이 판단착오와 거기따른 행동의 특성이다. 어제의 잠시동안의 방황을 다시 생각하며 산에서의 실수란 경우에 따라서는 치명적일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요산역하차: 11시40분
폭포 : 12시8분
자재암 : 12시 20분
주능선하백운갈림길: 1시15분
중백운 :1시40분
상백운 :2시48분(중식시간포함)
나한대 :4시8분
의상대 :4시20분
공주봉 :4시59분
폭포(원효폭):5시54분(사진촬영-100장-시간포함)


큰지도

고저도는 자재암에서 시작, 공주봉 아래 고도 320m정도까지. 고저도에 포함된 5.5km+3km=8.5km가 전체 워킹거리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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