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2. 17:53

용문산 1157m  1월 17일

폭설 속에서 암릉을 오른다

어제 하루종일 눈이 왔다. 차가 없는 첫주일산행으로는 최적의 날이다. 어차피 미끄러운 도로로 가야할 산이라면 철도산행이 제격일 것이다.
사진: 산행코스
청량리로 갔다. 태백으로 가는 사람들도 대합실안은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다. 하루종일 눈이 온다면 아예 태백이나 강릉으로 갔다가 되돌아 오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차창으로 스치는 흰 눈송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그리고 눈오는 동해안을 바라보는 것도 낭만적일 것이다. 하지만 자리가 문제다. 태백까지만도 4시간이 걸리는데 서서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미 좌석은 동이 났고 자리는 입석밖에 없다. 서울시내는 눈이 안보이지만 기차가 떠나자 말자 비는 눈으로 바뀐다. 그래서 오늘은 용문산으로 가기로 했다. 눈과 용문산은 인연이 깊다. 이태전인가 상원사에서 능선으로 간 것을 포함해서.


8시에 출발한 기차는 팔당을 지나면서 길가의 숲을 하얗게 물들인 채 다가왔다가 멀어져가는 순백의 겨울경관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용문에 내린 것은 9시3분경. 1시간만에 용문에 도착한다. 길이 미끄러워 용문사까지 가는 버스편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만한 눈같으면 아마 차가 못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안심시킨다.(기온이 비교적 높아 내리는 눈이 상당부분 녹아버리고 있었다) 버스는 9시30분에 출발한다. 용문사까지는 15분이면 갈 수 있다. 용문사 주차장부근엔 길위의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외에는 아직 외부인이 보이지 않는다. 용문사아래 광장일대는 많이 바뀌어있다. 기능에 따라 효과적으로 구획지어진 모습이다.
일주문 부근의 노송숲은 이미 눈덩이들을 덮어쓴 모습이고 연방 내리는 눈은 숲을 가릴듯이 거세게 내린다. 사진을 찍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지나간다. 용문사 관광이 일정에 포함된 관광버스가 몇 대 온 모양이다. 눈오는 날 일주문에서 용문사대웅전까지의 넓은 찻길도 운치가 그만이다. 노송이 많아서 더욱 그렇다. 눈과 소나무는 어울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지나 다리를 건너가면 산행이 시작된다. 아이젠을 하고 조금 올라가면 상원사길과 마당바위길이 갈라진다. 눈은 그칠 기미라고는 없다.

마당바위로 해서 능선에 올라 용문산 바로 아래에서 계곡으로 내려온뒤 다시 올라가 문례봉, 문필봉(폭산)을 지나 중원산, 중원계곡으로 내려온 적이 있는데 지금은 길이란 길은 눈에 뒤덮여있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알기 힘들다.
당시는 아직 용문산정상일대의 코스가 개방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거나 개방이 되었더라도 아직은 선뜻 그곳으로 올라갈 생각이 없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 널찍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상원사-마당바위길이 나뉘는 분깃점이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마당바위쪽으로 간다. 그 쪽은 오늘 꽤 험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지만 용문산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이므로 앞선 사람들을 따라 가기로 한다. 마당바위 계곡길엔 전에 없이 다리며, 위험지대에 대비한 난간이며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용문산-문례봉-중원산 산행을 했던 때에 비해서는 적지않은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만하면 정상에 오르는데에 별다른 문제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마당바위로 가는 계곡은 양쪽의 산록이 급경사를 이루었거나 아예 단애가 계곡옆까지 나와 솟아있곤 하여 그위에 늙수구레한 소나무라도 있을라치면 경치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하지만 눈발이 짙어지고 하늘마저 어두워지면서 협곡의 단애아래를 지날 때 마냥 느긋한 자세로 산을 오를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마음속에 뭔가 위험스럽고 어딘가 예고되지 않은 사건이라도 날 것 같은 긴장감이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길은 돌팍길이어서 성가시고 미끄러웠다. 우선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스틱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지만 스틱끝이 바위틈에 끼여 잘 빠지지 않기도 한다. 주위의 경관은 갑자기 살벌해져서 반지의 제왕에 나올만한 협곡으로 달라져보이기도 한다. 드디어 마당바위에 닿는다. 마당바위에 두어명이 올라가 앉아있고 그 아래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깊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능선길과 계곡길로 계속가는 길이 갈리는 분깃점이었다.

그들은 어느길로 갈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게 아니었다. 이쯤해서 내려가는 것이 정답이라고들 말하고 있었다. 눈은 이미 폭설로 변해있어 누구라도 그 말을 경청할만 했다. 더구나 아래에서 어느 전문가가 오늘은 위험하니 정상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했다고 까지 누군가 말하자 여론(?)은 내려가는 쪽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았다. 그들중 하나가 이곳 위쪽 코스가 위험하냐고 물었다. 필자가 경험한 것으로는 특별히 위험한 곳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했더니 아무도 그말을 귀여겨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의 그러한 판단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려는 듯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계곡길을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참 뒤에 누가 따라오나 하고 뒤돌아보았으나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능선길로 올라갔거나 여론대로 용문사로 내려갔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길지는 않았지만 속리산 관음봉 아래 너덜지대는 눈길중에서는 가장 힘든 길로 여기고 있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길은 점점 그런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더구나 눈은 이제 예각의 바위들을 둥그렇게 감싸거나 깊은 홈을 그럴듯이 뒤덮고 있어서 한걸음 한 걸음을 조심스레 떼어야 했다.

하지만 관음봉(속리산)아래 너덜지대도 통과하지 않았나, 명지산은 용문산보다도 더 높지 않은가, 화악산 눈은 허리까지 왔었지 하며 약해지려는 마음을 달랜다. 정확히 말해 아직 사태는 그렇게 심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정 안되면 능선위에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오자 그런 생각이었다.
계곡을 벗어나 급경사산록을 오르기직전 길가에 자그마한 바위굴이 하나 있다. 거암이 서로 엇물리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굴이었고 눈을 피하기엔 안성마춤이었다. 마당바위에서 40여분 올라온 곳으로 생각되는 지점이었다. 이곳에서 마실 것도 마시고 옷매무새도 고치고 판초로 배낭을 감싸고..귤도 먹고 하면서 잠깐이지만 여유를 부린다. 밖에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보기도 한다.(이상 "산과의 대화"참조)


골짜기 풍경

년전의 용문산-문례봉-폭산-중원계곡 산행을 떠올렸다. 그들이 말하는 그렇게 위험한 곳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얘기를 듣지않고 그대로 올라가기로 했던 것이다. 그들은 코스자체의 위험도 보다는 내리는 엄청난 눈에 더 위협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올라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속리산 관음봉 아래를 횡단했다면 이곳은 불가능한 곳이 아닐 것이다. 또 명지산은 용문산보다도 높지 않은가 하면서. 평소의 페이스대로만 가자. 그러나 눈이 계속 오고 있다는 것과 이 코스가 오늘 처음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예상치 않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코스를 위한 각종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다는 것은 이 코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눈 소나기가 와서 삽시간에 길을 흔적도 없이 뒤덮어버리기전엔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 위안이 되었다. 거기다가 안전시설과 리본이 거의 계속하여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에 내리는 폭설이외에는 위기를 직접 느끼게 하는 요소는 없었다. 오래된 발자국을 깊은 눈이 거의 완전히 뒤덮어버린 곳에서도 길을 찾아낸 적이 있지 않은가?


산행코스 산행의도 특징

1.용문사-계곡-정상
2.계곡의 모습과 정상에서의 조망파악
용문산높이:1157m
용문사주차장 해발고도:200미터 내외
올라야할 고도:900여미터
코스관리상태: 계곡엔 다리, 계단, 난간, 로프등 안전장치가 다수 설치되어 있음. 능선엔 로프, 철난간이 여러곳에 설치되어 있음
계곡의 상태:계곡은 전체적으로 협곡인데다
암석이 많아 초본류가 왕성하게 자랄 환경이 아님. 숲도 울창하나 양쪽 산록이 급경사를 이루어 전체적으로 어두움. 겨울엔 길바닥의 암석으로 인해 균형있는 발걸음을 유지하기 어려움. 여름엔 개울물이 급격히 불어날 가능성이 있음.
코스경사도: 용문사에서 골짜기로 들어가 올라가는 길은 대체로 완만한 경사. 계곡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은 급경사. 능선에 오르면 절고개(상원사로 가는 길목)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합류. 삼거리에서 조금 올라간 곳에서부터 급경사와 암릉지대와 대체로 완만한 안부지역이 주기적으로 나타남. 중간에 적설기에 올라가기 버거운 암릉사잇길, 암릉횡단지점 있음.

경관: 암릉엔 노송이 있어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리는 아름다운 능선이 바로 이 코스이다.
하산코스:정상에서 내려오면 장군봉으로 가는 길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있음. 장군봉으로 가서 백운봉으로 잇는 종주산행 가능. 장군봉에서 상원사쪽 능선으로 내려간 다음 상원사에서 용문사, 용문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원점회귀산행이 된다. 상원사옆 능선에서 연수리로 갈 수 있다.
백운봉으로 가다가 함왕골의 사나사로 갈 수도 있고 백운봉에서 양평쪽 용천리로 갈수도 있다.

교통: 열차로 청량리서 용문까지 1시간5분. 용문 버스터미널에서 용문사 주차장까지 15분이 걸린다.

정상: 시설물이 있어서 정상엔 오를 수 없다. 대신 1137미터까지 올라가 남서쪽의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적설기등반: 폭설이 내릴 때는 가능한한 길찾기가 용이한 곳을 오르내린다. 발자국이 없는 곳은 피한다. 어느정도의 건각이라면 눈속의 등반도 흥미있는 경험이 된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산행경험이 일천하거나 체력이 약한 사람은 눈이 올 때 이 코스는 버거울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정말 힘든 코스였다. 그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여하간 이 이후부터는 경사도 급해져 난간의 로프를 잡지 않으면 미끄러운 눈길을 올라가기가 힘들어진다. 능선이 어디쯤인지 짐작하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더구나 눈발이 짙어짐과 더불어 가스까지 끼여와서 능선의 아웃라인이 오리무중으로 지워져 있었다. 미끄러운 급경사를 지나면서 길이 꼬부라지고 큰바위덩이 너덜지대를 지나니 산록은 조금 평탄해지고 곧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게 보였다. 능선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먼저 삼거리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떨어지지 않은 걸음을 옮겨 겨우 능선위에 올라서서 "여기가 어딘가요?"하고 물으니 다들 웃는다. 함께 고생하는 폭설속이어서 그런지 끈끈한 동지애같은 것이 느껴진다. 설중행에 새로운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었다. 나혼자 무리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이 먼저 이곳에 와있는 것은 능선쪽이 길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삼거리에서 숨을 돌리는 사이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서너명의 산꾼들이 "여기서는 한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마디 하고 간다. 삼거리의 눈밭에서 라면을 먹던 젊은 친구들은 더올라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내려올 때 폭설에 길흔적이 지워질까봐 두렵다고들 한다.

그들을 뒤로 하고 다시 폭설속의 능선을 오르기 시작한다. 이후의 코스는 능선턱 주변이 암릉과 암봉으로 형성된 상하(上下) 로프지대, 횡단 로프지대등이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고난의 코스였다. 적설량이 적거나 폭설이 내리지 않는 날씨라고 하더라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닌데 분설이 깊이 쌓이고 있는 폭설이 내리는 급경사 눈길은 정말 가만히 있어도 미끄러질 판이라 올라가는 게 무척 어렵다. 바위를 올라가고 내려가고 횡단하고 암봉에 올라서고.. 그러면 눈에 버무린 듯한 노송이 눈발을 이고 하얗게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정상이 영원히 나올 것 같지 않는다. 위에 거의 매달리다 시피 해야 오를 수 있는 로프가 있고 밑에는 발을 헛디디면 미끄러질 것 같은 위험해보이는 밭을 붙이기 힘든 암사면에서 이대로 내려가 버릴까, 뭣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쳐가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집에서 와이프가 무슨 서류를 찾다가 못찾았다고 짜증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쨍하니 연결된다. 눈속인데도 잘도 들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짜증나는 목소리를 듣고나서 기운이 솟는 것이었다. 이쪽은 힘들어 죽겠는데..

이때 두사람의 산꾼이 정상에서 내려온다. 만만하지 않다고 그들도 혀를 내두른다. 드디어 장군봉에서 오는 길과 능선길이 만나는 정상직하의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30여미터의 정말 미끄러운 분설을 밟고 올라선 정상은 그러나 정상이 아닌 "정상"표지판만 있는 정상 바로 아래지점이었다. 거기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 "10시방향으로 보이는 암봉이 정상임." 그리고 발길이 닿는 마지막 고도는 1137미터였다.(GPS측정) 즉 정상보다 20미터 아래였다. (그 위는 출입금지지대).

원래는 정상에서 장군봉으로 가다가 상원사에서 용문사로 오려는 복안이었으나 장군봉쪽으로 난 발자국은 얼마 못가 사라지고 없어지면서 눈길에 새길을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쪽으로 가려고 했던 사람들도 되돌아선 모양이다. 오늘 같은 날은 모험은 무리다. 발자국이 엠보싱지처럼 눈에 파묻히긴 했어도 올록볼록 굴곡을 보이는 쪽이 그래도 나은 편이다. 내려오는 길은 훨씬 편해서 올라갈 때 왜 그렇게 쩔쩔 맸는지 이해가 안갈 정도다. 오늘은 왔던 길로만 가야겠다. 오르막길에 쉬었던 그 굴속의 아늑함이 기다려진다. 그 굴속에 들어가 간식을 먹고 숨도 돌리며 쉰다. 눈발은 여전히 그대로다. 오늘 정상까지 올라간 것은 이태전인가 상원사-장군봉능선에서 역시 폭설을 만나 암릉(그쪽도 상당한 암릉이 있다)부분에서 되돌아선 기억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차를 상원사 아래 주차시켜놓고 올라갔었는데 눈이와서 빙판길이 되면 연수골을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것이 철도산행의 장점이기에.

골짜기를 빠져나오기 전 30분간은 날이 어둑어둑 해지고 계곡에 안개까지 자욱히 몰려 분위기가 상당히 음습했다. 5시를 지난 무렵이었기에. 눈발은 보이지 않고 이마에 차가운 것이 간혹 섬뜩하니 느껴지곤 하는 것으로 보아 눈이 드디어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어두워지는 눈쌓인 협곡은 무척 괴이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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