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5. 20. 01:40

 

운장산 산행코스:

1. 내처사동-동봉-운장산-서봉-활목재-독자동-내처사동(산행시간 3시간 20분)
2. 상궁항-.연석산-만항치-오성대-운장산-1087봉-복두봉-구봉산-상양명 또는 물탕골 안정마을(산행시간 1박2일)
3. 내처사동-골짜기-왼쪽능선(올라가는 또렷한 길은 없으나 골짜기를 30분 올라가면 송림쪽으로 하여 용이하게 올라설 수 있음. 바위지대가 있으므로 주의)-암릉-1087봉-각우목재-동봉-운장산-동봉-내처사동 혹은 운장산에서 동봉으로 나오지 않고 서봉-활목재-내처사동-외처사동(산행시간 5시간)
 

운장산은 전북 진안군과 완주군 사이에 있는 산이다. 대체로 육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암봉인 독제봉을 비롯, 산의 군데군데에 암릉과 단애가 있다. 정상에 오르면 덕유산맥과 지리산의 천왕봉-반야봉-노고단까지의 높은 능선이 한눈에 보이며, 진안고원으로 뻗어나간 여러개의 골짜기의 구비치는 모습, 전주시가 멀리 보이는 등 조망이 뛰어난 산이다. 높이 1126미터이나 동봉, 독제봉등이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진안군의 서쪽을 받치고 있는 운장산은 진안 분지를 형성케 한 요인이 되었다. 동고서저형인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에 한 예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척량산맥의 서쪽에 구봉산 혹은 명도봉에서 운장산을 거쳐 길게 서남쪽으로 뻗어가고 있어 이것이 백두대간과의 사이에 진안분지를 형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운장산에는 눈에 두드러진 숲은 없으나 군데군데 잣나무숲이나 소규모의 송림이 있다. 서울에서 운장산으로 오려면 대전 또는 옥천에서 금산, 금산에서 진안으로 오다가 진안이 되기전에 운일암-반일암으로 가는 길로 들어와야 한다. 며칠 추위가 계속되던 1월 19일 운장산을 찾았다. 집이 수지(용인시)읍인 필자는 새벽 5시45분에 집을 떠나 신갈에서 고속도로로 들어선뒤, 옥천까지 내려와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우회전하여 대전쪽으로 조금 오다가 좌회전, 금산가도로 들어섰다. 고개를 넘어 금산군으로 진입하면서부터 날이 뿌옇게 새기시작했다. 곧이어 금빛 아침햇살이 비치기전의 황홀한 일출이 왼쪽 산맥 너머로 보이기 시작하고, 이어 규모나 산세, 산행 코스의 아기자기한 맛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서대산이 왼쪽으로 거대하게 치솟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무렵의 아침 드라이브는 상쾌하기 그지없다. 새벽에 먼산을 찾아가는 마음엔 황금빛 아침햇살에 비친 고산의 휘황한 산록에 대한 향수같은 아련한 동경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기에 속도를 늦추고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의 산과 들을 감상한다. 금산을 지나 진안으로 가다가 주천으로 빠지는 길로 들어서자 비포장도로가 맞는다. 눈이 다져져 미끄러운 곳도 있다. 고개를 넘는다. 백미러로 보니 흙먼지가 뽀얗게 인다. 길을 잘못 들어선 모양이라고 후회가 될 즈음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운일암-반일암 표지판이 길가에 서있는게 보인다. 지름길로 들어온 모양이다. 이 길로 들어서지 않고 진안으로 가다가 삼거리로 와도 시간은 마찬가지일 듯하다. 둘러가긴 하지만 잘닦인 포장도로이기 때문이다. 삼거리에서 5, 6분정도 달리면 운일암-반일암계곡이다. 겨울엔 얼음이 얼어 개울의 푸른흐름이 군데군데 끊긴데다가 여기에도 개발바람이 불어 개울바닥을 불도저로 밀어붙인 곳도 있다. 도로는 확포장을 하느라고 산록을 깎아냈다. 계곡의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자연그대로 보존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개발의 이름으로 개울바닥의 자연석들을 긁어내는 우를 범하는 곳들을 자주 봐왔던 터라 이곳 운일암-반일암의 계곡미도 끝장이 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겨 마음속이 편치 못하다. 그러나 아직은 90%정도는 계곡미가 남아있다. 차에서 내려 벼랑에 선 소나무며, 개울의 소며, 눈덮인 능선이 아침햇살속에 희게 빛나는 장관을 카메라에 담는다. 운일암-반일암 계곡은 어쨌든 아름다운 곳이다. 10여분 어정거리다가 드라이브를 계속하니 곧 외처사동에 닿는다. 운장산의 전모가 눈앞에 전개된다. 곧이어 내처사동. 8시 50분에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사진은 운장산에서 본 덕유연봉>

산행기

둘이 가면 이미 여행이 아니다. 황동규(시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중산에서 외처사동-내처사동을 거쳐 운장산 동북쪽의 1187봉으로 간 것은 붐 비는 코스를 벗어나 호젓한 계곡과 능선을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계절은 4월초라 산은 건조했고 하늘에는 한 두 개 조각구름이 머흘다가 말다가 했다. 길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가면 골짜기는 바위많은 협곡으로 변하고 개울은 폭류를 이루지만 갈수기라 물이 적다. 테라스형 바위가 마루를 이루고 있는 곳이 1187봉인줄 안 것은 뒤에 지도를 뒤적여 본 뒤의 일이다.
구봉산에서 구비쳐 온 능선이 1187봉을 거쳐 운장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안 것은 봉우리에 올라가본 뒤에 눈으로 처음 확인한 것이다. 개울이 없어지다 시피 한 골짜기의 바닥엔 낙엽이 깔려 무릎까지 빠질 정도이다. 이곳에서 왼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일반 등산로와는 동떨어진 길이다. 능선엔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었다. 맑은 날 햇빛이 따가울 정도의 골짜기안에서 목이 타는 듯할 때 소나무숲은 산행중 최고의 유인처가 된다. 더구나 소나무 숲은 테라스형 암릉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경사는 급하지만 잡초나 관목이 시야를 가릴 때가 아니라 올라가기에 좋다. 한여름엔 올라가기 힘든 산록이 될 것이다. 송림을 지나 세월의 풍상에 씻긴 암릉의 밋밋한 암회색 테라스위에 선다. 둥근 돔형의 길쭉한 슬랩이다. 바위자체가 육산처 럼 둥그스럼한 능선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조망이 아주 좋다.
남서쪽 을 보면 멀리 각우목재를 지나 동봉이 보인다. 운장산 정상은 동봉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서봉의 한 모퉁이만 보인다. 1187봉에서 운장산 서봉까지 적어도 4킬로 정도가 되는 거리이다. 세월의 풍상에 씻긴 정갈한 암릉을 걸어가다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원초적 해맑음 속에서 저만치 다가선 천상의 초원같은 억새밭이 바라보였다. 억새밭은 노란 색으로 말라 있었지만 겨우내 눈에 묻혀 있었을 억새의 휘어진 중동께엔 물기에 젖은 흔적이 남아 있다. 꽤 넓은 이 억새밭의 물기가 남아 있는 중동아래쪽은 노란색이라도 더 진하다. 그게 얼마나 정갈한 느낌을 주는지 모른다. 대학시절의 어느해 겨울에 을숙도를 찾았을 때 갈대가 푸 른 물속에 숲을 이룬 채 청명한 동천(冬天)을 향해 뻗어있던 모습이 생 각난다. 그때도 갈대줄기가 중동까지 물에 젖어 정갈한 황색을 보였었다.
1187봉은 좀전의 암릉과는 다른 또 다른 테라스가 나타나는데 테라스 아래쪽은 만만치 않은 낭떠러지가 되어 있다. 이 평탄한 바위위에서 초봄의 양광에 젖어 거대한 용처럼 구비치며 구봉산에서 뻗어오는 지기 를 느끼거나 그것이 이어져 운장산으로 몰려가는 환상을 보며 오후 한 때의 여유를 가져본다. 운장산의 인기코스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산여행 의 참맛이 거기에 널려 있었다. 1187봉 정상은 암릉과 억새밭 그리고 단애를 낀 암릉코스로 연결되는 100미터 정도의 능선이어서 어떻게 보 면 그냥 평범한 능선봉일 뿐이었지만 탈색된 초원이 안고 있는 아름다움은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억새밭 위로는 권운이 비껴가고 있다. 그런데 암봉이 주뼛주뼛 솟아 있는 곳 보다는 하늘이 열려진듯한 밋밋 한 능선형 봉우리의 산길을 홀로 가면 유난히 외로운 느낌이 강열하게 달려든다. 각우목재로 내려가면서 거의 뜨겁다고 할만큼 더운 기운이 메마른 낙엽으로부터 피어올라오고 있었다. 산사면을 내려가면서 보니 솔잎이 가는 다북솔이 한그루 길가에 서 있다. 그 소나무 아래 갈색보료와 같은 고운 솔잎 낙엽이 떨어져 있다. 시간만 있으면 그 속에 들어가 한동안 앉아 있고 싶다.
명지산 귀목고개로 올라가다가 서너그루 억새풀옆에 서 있는 소나무가 그런 소나무이다. 그 소나무 부근의 마른 억새풀숲은 언제 보아도 수수께끼처럼 정갈해보인다. 억새풀숲에 눈이 쌓이면 그런 느낌은 더욱 강열해지는데 한여름같은 봄날 오후의 더위가 잠시 산등성 이에 밀려온 봄날 오후에도 웬지 그 마른 억새풀의 황백색은 차라리 처절한 싱그러움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각우목재 부근엔 진달래도 더러 피어 있었지만 풍경을 주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이 재는 온통 땅에 누운 억새밭 천지였는데 1187봉에서는 꽤 내려와야 했다. 각우목재에서 동봉으로 가는 길은 급경사에다 암릉이어서 경관이 좋았다. 노송들이 벼랑가에 나앉아 있어서 남쪽 쇠막골이 발아래 내려다보였다. 남쪽이 단애로 된 지대를 한참 가면 전면에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것이 운장산 정상이다. 정상이 보이는 전위봉이자 전망대 봉우리에 올라서면 온톰 바위로 된 거대한 둥근 암릉같은 봉우리가 눈앞을 가로 막는다. 그 암봉은 침봉이 아닌 돔형 바위로 규모는 대단해 보였다. 그러자 아주 마력수가 큰 성능 좋 은 은은한 자동차 엔진이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그 둥그런 큰 바위와 바위위에 자라고 있는 나뭇가지들을 스치고 있는 소 리였다. 마치 바람이 스스로를 삭이고 있는 듯한 소리였다. 어떻게 들 으면 짐승이 신음하는 듯이도 들렸다. 소나무가 바람이 가르치는 모든 노래를 부른다면 바위로 이뤄진 봉우리를 스치는 그 장중한 소리, 은은 하면서도 힘있는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암봉을 올라가면 밑에서 볼 때와는 달리 산은 육산으로 변하고 산죽이 며 잡목이 접근하여 숲을 이루면서 전망을 없애버린다. 운장산에는 산 죽이 많다. 여름산행은 고역이 될 가능성이 많다.
지금도 높이가 1미터 60센티정도나 되어 산죽밭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길도 겨우 보일 정도. 그러다가 정상이 나타나고 상여봉과 서봉이 저만치 가까워 져서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길은 동봉에서부터 평상코스와 합류하여 넓고 또렷해져 있는데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속세의 먼 지가 그대로 눌어붙어 있는 상 싶은 감을 주었다. 길은 너무도 잘 밟혀 서 주위의 땅에 비해 10여센티나 푹 꺼져있다. 서봉까진 의무처럼 산행 을 이어갔지만 서봉의 아름다운 모양도 빛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은 흔적이 있다는 것은 운장산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순결을 잃은 여인처럼 여겨지는 것은 웬일일까? 다만 서봉에서 내려다 보는 조 망은 압권이었다. 마치 골짜기 위 상공에 뜬 열기구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다. 정상에서 운장산 남쪽의 골짜기를 내려다 보면 하나같이 골이 깊고 길다. 운장산의 수원으로서의 역할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북으로 남으로 패인 골의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이다. 줄잡아 10여개는 되 어 보인다. 골짜기의 길이도 긴 것은 6킬로를 넘는다. 운장산과 구봉산 능선이 노령산맥의 등뼈 구실을 하여 수많은 계류의 모태가 된다. 북쪽 으로 흐르는 계류가 합수되어 주자천이 되어 이름높은 계곡인 운일암 반일밤 계곡이 된다.
산행깃점은 중산마을. 이곳을 지나면 왼쪽 계곡으로 들어가는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몇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동네와 산장풍의 등산인을 위한 집이 아래쪽과 위쪽에 하나 씩 있는데 아래쪽 집으로 가서 이 집 뒤쪽 산능선으로 올라가야 제 코 스로 들어갈 수 있다. 호젓하면서도 반 종주식 산행을 즐기면서 골짜기 로 바로들어가서 1187봉으로 가든지 아니면 각우목재로 올라가야 한다. 골짜기로 들어오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는 운장산 동봉이다. 운장 산의 봄은 정상부근에 핀지 얼마 안되는 진달래 떨기가 간혹 보일 뿐으 로 늦은 편이다. 하지만 산 아래로 내려오면 나무들이 새잎을 움틔우느 라 연초록빛으로 물든 숲이 이어진다. 낙엽송숲의 녹색은 마치 연초록 빛의 투명한 물속으로 들어온 기분을 느끼게 한다. 입구쪽 산록은 산벚 꽃이 군데 군데 피어 있고 온갖나무들이 새닢으로 성장한 모습이어서 푸른 색 바탕의 오색 톤의 직품로 짠 융단같다. 자연의 융단으로 변한 산록에는 지루한 겨울 속에서의 긴 기다림에 대한 화려한 저항이 숨어 있다.

2005-07-16 최근산행
운장산 1122m 천둥치고 비내린뒤 안개가 걷힐 때 운장산 정상에 있었던 행운

사진:안개가 걷힐 때 서봉에서 동봉을 본다.

운일암반일암계곡:주천을 지나 운일암반일암 계곡이 가까워지자 일단의 제복을 입은 청년들이 차를 세우고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운장산에 간다고 하니 통과 시켜준다. 운일암 반일암으로 휴가온 사람들은 주차비와 개인당 800원을 내면 운일암 반일암 계곡의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고 개울가 솔밭에 천막도 칠 수 있다고 한다. 운일암 반일암에 다가서자 천막도 보이고 주차한 차들도 많다. 금년 휴가철이 시작된 것이다.
운일암반일암계곡은 진안군 주천면 소재지인 주천에서 5km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계곡으로 운장산 독자계곡의 물을 원류로 하고 주변계곡의 물들을 합수하여 용담호로 흘러들어가는 주자천 하류부에 위치해있다. 주천에서 완주군 동상으로 가는 55번도로가에 1.5km정도의 길이로 뻗어있다. 이부분의 계곡에는 거석이 계곡안에 즐비하고 물은 그 사이사이에 푸른 소를 형성한 암반을 흐르며, 뒤에 솟은 암봉(명도봉 869m)과 그 북사면의 울창한 숲이 어울어져 선경을 빚어놓았다. 단지 길가에 위치해있어 여유있는 공간이 별로 없는 것이 단점이다. 따라서 대규모의 관광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처지는 아니므로 이곳으로 휴가를 가고자하면 주천면에 문의해야 한다. 운일암반일암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대규모주차장과 관광객에 편의를 제공하기위한 시설들이 최근 들어선 것이 눈에 띄기는 한다.
운일암-반일암 화보

처음엔 연석산을 목표로 했다가 올라가기 쉬운고개에서 운장산산행을 시작한 뒤 연석산으로 가기로 하고 산에 오른다. 산행시작지점은 피암목재. 진안군 주천면에서 완주군 동상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에서 운장산 서봉까지는 직접연결되는 능선으로 이어져있고(길이는 4km조금 못미치는 거리) 고개위엔 널따란 주차장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피암목재에서 운장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수많은 사람이 다닌다. 대부분의 명산의 길이 그렇듯 산의 한적한 맛은 없고 길도 넓어 주위의 환경을 그르칠 만큼이다.
그러나 독제봉과 이어진 능선 높은 곳에 올라서서 운장산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벌써 안개가 운장산 정상에 오락가락하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비가 올 태세다. 비는 30-40분 뒤에 내리기 시작했는데 천둥이 울리고 빗발이 세찬 소낙비다. 활목재를 조금 지난 급경사에서였다. 산에서 뇌우를 만나기는 오랜만이다. 천둥이 칠 때 정상 아래 해발 900m 정도의 산사면을 오르던 순간이었는데 길가운데 앉을 만한 펑퍼짐한 돌이 있어 그 위에 앉아 간식을 꺼내 먹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돌출한 곳이 아니라 벼락을 염려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어쨌든 지나가는 소나기일 것 같아서였다. 역시 요란하던 천둥소리와는 달리 비는 얼마 내리지 않았고 천둥소리도 대여섯번 우르릉 우르릉 하다가 멈춘다. 비는 운장산 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국한되는 듯했다. 비가 그치는 것 같아 급경사 사면을 부지런히 올라가는데 비에 젖은 사람, 비닐 우의를 입은 사람들이 여러명 내려온다. 그중의 한사람은 반바지에 샌들차림인 내 행색을 보고 산에 올라갈거냐고 물어본다. 정상이 가까이 다가와 있는데도 그런 질문을 하는 것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는 얘기일 것이다. 즉, 신고 있는 나의 등산샌들을 슬리퍼로 착각한 것이다. 등산샌들만 신고 백두대간을 비롯, 최근산행 30회이상을 했다는 것을 알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정상(서봉)에 서니 주변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짙게 끼였다. 비가 그치자말자 기다렸다는듯이 안개가 몰려온 것이다. 기다리나 연석산으로 가나? 연석산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이렇게 안개가 짙을 경우 연석산으로 가도 재미가 없을 듯싶어 이참에 길가 전망대에 앉아 점심을 때우고 다시 돌아와 정상에서 조금 시간을 낸다. 그런데 어느 겨를엔가 안개가 사라지고 막혔던 조망이 전부 드러나는게 아닌가? 와!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안개가 걷힐 때가 딱 언제라고 예고된다면 안개걷힘이 가져온 경관의 드라매틱한 효과는 완전히 반감될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을 때.. 꽉 막힌 시야에 지루하고 답답해진 채 거기에 익숙해져 있을 때 그때 느닷없이 안개가 사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경천동지의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제 그런 일이 운장산 정상에서 일어났다. 연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빤히 내려다보이기 시작하고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던 연석산을 저만치 위치시켜 놓는다. 안개는 산불이 번지듯이 새로운 능선을 향하여 스러져가며 뒷 능선을 해맑게 만들어 놓는다. 얼마나 좋았던지 평소에 여간해서 "야호"를 외치지 않는데도 어제는 야호를 했고 "아! 좋다"고 외쳤다. 이때는 4시쯤이어서 사람도 다 내려가고 없었고 동봉에서 내려오는 사람 두엇이 보일 뿐이었다.
안개가 다 스러지기전에 풍경과 조망을 찍느라고 동분서주하느라고 렌즈에 물방울이 묻어있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안개는 환영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연석산으로 가고자하는 의지도 욕구도 없어져버린다. 뇌리에 안개가 벗거져 가는 수려한 강산의 그림같은 모습은 새록새록 떠오른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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