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산 정보2009. 1. 15. 17:22

주흘산 산행 개념도



비가 오는 조령계곡은 어둑어둑 하지만 길가의 조령천의 계류는 수량도 많고 소는 깊고 푸르고 맑아 가슴이 쉬원해지는 듯하다. 계류는 용추와 팔영폭포같은 곳에서는 웅장한 물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꾸구리바위아래를 훑어 내려갈 때는 섬뜩할 만큼의 깊은 수심을 보이기도 한다. 여름을 이곳에서 보내려는 사람들도 많아 비가 오는데도 드넓은 주차장은 반이상 차로 차 있다. 조령천 계곡은 주흘산과 조령산이라는 1000미터를 넘는 고봉이 마주보고 서 있는 사이로 흘러 가는 개울이다. 거기다가 두 산과 이어진 봉우리와 능선사이에서 발원한 개천들이 모두 조령천으로 흘러들어 물은 얼음같이 차고 계곡은 언제나 냉기가 돌아 여름을 보내기에 안성마춤이다. 큰길을 따라 걸어올라가면 길옆까지 밀고 내려온 급한 산록의 단애, 슬랩, 울창한 숲에서 쏟아져나오는 냉기어린 깊은 산내음은 걷는 이의 이마에 배인 땀을 씻어준다. 급한 산사면엔 홍송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거나 단애아래로 느닷없이 떨어지는 폭포도 선뵌다.
2관문쪽으로 걸음을 재촉하는데 빗줄기는 점점 세차게 온다. 조령계곡을 따라 1관문에서 3관문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언제부터인가 최고의 산책길이 되어 있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
큰애기 손질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갈 때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 난다

조령산은 백두대간의 산으로 조령계곡의 왼쪽을 장벽처럼 가로 막고 있다. 조령산의 등산로는 이화령이나 조령산 서쪽의 원풍리에서 절골이나 새터로 들어와서 조령산으로 오르는 길이 대부분이다. 조령천계곡에서 보면 조령산은 남의 집 자식처럼 동떨어져 있다. 이 계곡에서 오르는 길이 별로 없는 것이다. 필자는 상초에서 계곡으로 들어가 장비 없이 거대한 슬랩을 오르다가 내려와 돌아서 조령산정상으로 간 적이 있다. 정상에서도 보이는 이 거대한 슬랩은 바위란 것이 얼마나 웅장할 수 있는지 실감나게 해주었다. 또 한번은 신선봉에서 상초리쪽으로 개울을 따라 하산한 적이 있다. 둘 다 산길이 희미하게 보이다가 없어졌던 것 같다. 이처럼 조령계곡에서 조령산을 오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계류를 따라 큰길을 걸어올라가면 구비 구비마다 조령산의 멋진 조망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보기에 따라서는 중국 계림의 어떤 장면을 연상시키는 포인트도 있다.
이 산책코스를 즐기려면 구비 구비 새로이 나타나는 산과 골짜기 능선봉과 바위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걸어가기만 해도 물론 시원하고 더할나위 쾌적한 골짜기이기도 하지만 주변에 널려있는 역사의 현장과함께 수려한 경관들을 짚어보는 것은 자연을 즐기는 바람직한 방법인 것이다. 특히 조령산 정상 이후의 백두대간의 바위암릉을 이룬 일련의 봉우리들은 이곳 경관의 백미를 이룬다.
역사의 현장으로 대표적인 것은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으로 된 관문들이지만 그 외에도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최근에는 태조왕건과 무인시대라는 고려시대를 무대로 한 연속드라마의 촬영현장이 되어 언론에 오르내리는 통에 관문 앞 공지에 촬영용 무기, 도구들이 많아 관심의 적이 되고 있다. 2관문인 조곡관에 오면 왼쪽은 깎아지른 단애, 오른쪽은 역시 뒤에 험준한 암봉이 버티고 있는 부봉능선과 그사이에 파고든 조곡계곡으로 이곳은 적은 숫자의 병력으로도 대군을 방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이다. 하지만 임진난때 이곳을 적에게 넘겨주고 충주로 내려와 배수진을 쳤던 사실은 모두 다 아는 역사이다.
조곡관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리다가 비가 조금 그칠 기미를 보이자 골짜기 안으로 들어간다. 몇해전 부봉능선 끝(동쪽)에서 내려와 길없는 골짜기를 따라 조곡관으로 빠졌던 일이 생각난다. 그 땐 조곡관에 닿자마자 날이 저물어 별을 헤며 1관문을 통과했었다. 오늘 꽃밭서덜로 주봉에 오르기로 한 것은 요즘따라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져 이 지명이 꽃과 연관된 것으로 지레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꽃밭서덜로 올라가는 길에서 개울을 건널 때 한여름의 울창한 숲속에서 너른 암반을 훑으며 내려오는 맑은 물을 보니 장마철 산행의 즐거움은 또 다른 맛이 있다는 것을 그 계류가 가져오는 냉기만큼이나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개울을 건넌 뒤 30분 정도 올라가며 뒤돌아 보니 육봉을 감싸고 있던 안개가 걷히면서 암봉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비도 그치고 안개도 걷히기 시작하고 오늘은 모든 게 좋은 방향으로만 바뀌고 있다. 드디어 꽃밭서덜에 도착한다.
하지만 꽃밭 서덜에 꽃밭은 없고 숲속의 중간규모의 너덜지대만 경사진 산록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꽃밭서덜의 해발고도는 615m이고 여기서 정상까지는 2.5km, 제2관문에서는 3km 올라온 지점이라고 이정표에 적혀있다. 꽃밭서덜을 지나 올라가는 길가에는 폭포가 연달아 나타나 우람한 소리를 내고 장마철이라 무성한 푸른 잎의 숲을 통해 바라보는 하얀 물줄기는 시원하기 그지없다. 장마철 비가 막 그친 뒤에만 볼 수 있는 숲의 아름다움이다. 드디어 주흘산 영봉에서 내려온 물과 주봉쪽에서 내려온 물이 두 개의 폭포를 이룬 합류점에 도착한다. 여기서 부터 정상능선까지는 꽤 가파른 경삿길이다. 숨은 가빠도 숲바닥을 뒤덮고 있는 초본류의 왕성한 성장속에서 원추리의 노란 꽃을 발견하거나 나리꽃을 보면 금방 피곤이 풀리는 듯하다. 야생화는 정상능선 날등 양쪽에 집중적으로 보였다. 능선의 안부인 전좌문에서 보니 주봉쪽은 안개가 끼여있다. 순간적으로 안개가 벗겨지곤 하는데 그때 드러나는 험준한 바위봉우리는 동양화에서 신선과 다름없는 화가가 건필로 그려낸 가장 야성적인 바위봉우리가 있다면 아마 그런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험준하고 기걸찬 산봉우리 모습이었다. 가까운 봉우리는 검고 뒤에 높은 주봉은 모시를 덧씌운듯한 약간 툴투명한 안개로 살풋 가리워져 원근이 저절로 분리된 신선도 감탄할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바위봉우리 측면의 산록을 타고 정상에 올라오니 비가 왔던 아침 날씨에 비해 예상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다. 주봉 단애끝에 앉아 안개가 오락가락하는 단애아래 능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밑에서 볼 때와는 또다른 감흥이 몰려온다.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단애끝에는 백리향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데 두어명이 이 광경을 물끄러미 보다가 백리향을 사정없이 떼어다가 배낭에 집어넣는다. 이 산행기가 나간 뒤로 백리향이 주흘산에 제대로 남아있는지 주흘산에 가서 확인하고 싶다. 산행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산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는 백리향이나 솔나리등 귀한 야생화를 보면서 4시 가까이 주봉근처를 배회했다. (제1관문을 8시 40분에 통과한지 5시간만에 주봉에 올랐었다)

하산은 대궐터로 해서 샘터-혜국사-여궁폭포-제1관문으로 내려왔다. 혜국사아래의 단애도 어느때보다 볼만했고(혜국사아래에는 깊이 함몰한 협곡형 단애가 꺼져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곳이 여러곳 있다) 여궁폭포 역시 수량이 많아 장관을 이루었다. 다양한 야생화꽃을 접할 수 있고 개울, 폭포가 시원한 냉기를 뿜는 장마철 산행은 여름의 무더움을 날려버릴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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