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4. 22:55
중산리에서 올려다본 천왕봉



개선문부근 능선의 산길

중산리방향 천왕봉 아래 전나무숲과 눈

정상에서 본 중봉과 써레봉 그리고 황금능선

제석봉의 일몰

연하봉으로 가며 바라본 일출

심설과 안개와 일출

연하봉의 아침 안개

천왕봉 사면

눈을 인 전나무

중산리-천왕봉
위치 :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교통 : 진주시외버스터미널-중산리(하루 18회운행. 중산리-진주행 막차 7시 35분)
숙박 : 매표소 바로 아래 승용차 주차장 앞에 민박집(055-972-1155: 기본 1박 2만원)

옥천-무주-장계-육십령-안의를 지나 지리산 권역에 들어와서도 한참 지리산 중봉-써레봉을 거쳐온 황금능선자락을 돌아가야 중산리와 거림계곡이 갈리는 신천리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지리산 양수댐이 들어서 있다. 거림으로 가려면 기존 도로가 저수지안으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에 신설된 도로를 지나 연하봉에서 뻗어온 능선을 뚫어만든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말도 많던 지리산 댐이 능선을깎아 만든 거대한 저수지로 둔갑하여 지리산을 절뚝발이로 만들고서야 지리산경관을저해하는 흉물로 우리앞에 서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한마디 할 것은 시민운동 단체들이나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온갖 경로를 통해 무슨 소리를 하든 공사는 강행된다는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라는 정부산하의 공사는 이런 댐을 기획하고 건축하는 곳이다.이 조직은 댐을 만들기위해 존재하는 곳이다.조직이 굴러가려면 댐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댐에 관한 다양한 폐해사례를 아무리 읊조려도 조직은 본래의 속성대로 움직인다.한국도로공사가 있어서 줄기차게 도로를 건설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재의 우리나라 도료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현재대로라면 전국의 대지 절반이 도로로 뒤덮일 날도 멀지않았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도로공사를 해도 환경친화와는 거리가 먼 공사가 비일비재하다. 산의 절반을 깎아 토사를 계곡에 쏟아버리는 공사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그들에게는 도로건설만이 지상과제이고 그것을 위하여 만들어진 기구가 도로공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장에서 데모나 하고 댐축조반대투쟁을 해서는 효력이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일이 있어도 반드시 조직의 의사결정체계 안으로 들어가 합법적으로 반대목소리가 수용되도록 해야하며 최고 정책결정자에게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동강댐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산행기:


사진: 칼바위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지리산정상인 천왕봉으로 오르는 최단거리의 길이다. 신천리를 지나 중산리로 올라가면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덮인 천왕봉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있는 광경은 웅장한 경관이 아닐 수 없다. 지근거리에서 1915m에 이르는 거봉이 다 보이는 경관은 우리나라에서는 이곳밖에 없다. 한라산이 지리산보다 높지만 지리산의 중산리처럼 정상과의 직선거리가 4km남짓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정상전부가 바라보이는 곳은 없을듯하다.그래서 중산리에서 본 지리산정상의 모습은 압도적이다.스위스의 알프스산맥 거봉인 매터호른을 체르마트에서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것이 중산리에서의 지리산 경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매표소아래 주차장으로 들어갈 때 중산리계곡 상공에는 매새떼가 군무를 추고 있었다. 화개면과 피아골에서 매새떼가 장관을 이룬다는 얘기를 들었기로 이곳에서의 매새떼의 새카만 군무는 뜻밖이고 웬지 지리산에 온 것이 실감난다. 주차장앞에 바로 민박집이 있어서 여기서 하룻밤 숙박하기로 한다. 숙박료는 1실에 2만원이었다.수십년전 중산리를 처음 찾았을 때는 하꼬방같은 작은 집의 작은 방에 몇명이 한꺼번에 뒹굴러 잤었는데 지금은 방에 텔레비전까지 있고 샤워실도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중산리에서 보이는 천왕봉은 칼바위이쪽 능선에서부터 문창대를 거쳐 법계사뒤 된비알, 그리고 가문비나무-전나무숲, 천왕샘직전의 안부와 주능선안부까지가 그대로 시야에 들어오는 장쾌한 장면이다.전체적으로는 지리산괴가 점점이 흰색이 섞인 검은 색으로 전체적으로 회청색으로 보인다.그래선지 높이와 신비감이 더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중산리 - 천왕봉 산행은 4단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1.매표소-칼바위
2.칼바위-능선-법계사
3.법계사-천왕샘
4.천왕샘-정상

1단계는 대체로 평탄하여 산행하기가 좋으며 중산리계곡하류의 물소리가 동행하여 귀가 싱그럽다. 숲은 이깔나무숲으로 겨울엔 잎이 떨어져 하늘이 시원해보이나 여름엔 짙푸른 녹음을 만들어줄 숲이다. 눈이 덮여있는 숲바닥은 산죽이 많고 중산리 계곡의 개울도 개울에 가득찬 둥글바위위에 눈들이 수북히 쌓여있어서 독특한 경관을 자아낸다. 개울건너쪽의 능선은 연하봉에서 내려오는 능선으로 이 능선의 끝은 신천리의 댐이다.
이길은 군데군데 돌이 드러나 있는데 그 부분은 눈이 녹아 아이젠을 하고 가기에 불편했다. 오른쪽 능선의 산록이나 산길이 있는 산록이나 다같이 소나무는 별로 없어 겨울엔 황량하다.조림한 이깔나무숲을 제외하면 활엽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칼바위: 이곳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길과 법계사로 올라가는 길이 나뉜다. 칼바위는 길가에 서 있는 칼끝처럼 뾰족하게 생긴 바위를 말한다. 전설을 간직한 바위지만 황당한 전설이다. 이성계의 수하 장수가 공격해오는 적장을 내리쳤더니 바위로 화했다는 것이다.이런 전설보다 칼바위 자체의 형상만으로도 기암으로서 보기가 좋으면 뒤편의 중산리계곡과 그 뒤의 능선을 포함한 경관이 훨씬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될 것이다.


칼바위를 지나면 개울이 나온다. 이 개울은 법계사앞에 솟아있는 능선봉인 문창대에서 발원한 물이다. 개울이 크지는 않지만 지리산의 모든 개울이 그렇듯 여름에 큰 비가 오면 횡단하기가 힘들어 출렁다리가 놓여졌다. 위쪽의 출렁다리는 법계사로 가는 다리이고 아래쪽의 다리는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다리이다.다리를 지나면서부터는 급경사가 된다. 이곳에는 반드시 아이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양지쪽이라 눈이 빨리 녹으므로 해빙이 될 초봄에는 질척거릴 가능성도 있는 곳이다.매표소에서 40-50분거리.여름철에는 이 능선에 물이 없으므로 이곳에서 물을 보충하곤 한다.그러나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는 물은 매표소앞의 호스(언제나 개방)에서 물을 받아 올라가는 것이 가장 좋다.


다리를 지나면서부터 경사가 가팔라진다. 눈도 깊어지고 주위의 분위기도 설국의 그것에 알맞는 풍경으로 변한다.곳곳에 글리세이딩이 가능한 눈미끄럼틀이 만들어져 있다. 아이젠 없이는 겨울산행이 어려운 곳이 많다.한참 올라가면 능선이 오른쪽으로 비켜있고 길은 봉우리아래 왼쪽 응달로 나 있다. 2시간 가까이 올라가니 망바위다.멀리 촛대봉이 보이고 연하봉과 연하봉에서 남으로 뻗은 지능선과 천왕봉에서 뻗은 능선사이에 중산리 계곡이 가로놓여있는 것이 한군에 들어온다.
법계사가 보이는 안부까지는 곳곳에 로프가 매어있는 미끄러운 길이다. 오른쪽의 능선봉이 문창대이다. 문창대의 높이는 1386미터. 능선봉 앞의 안부의 공터에 서면 로타리산장이 아래, 위쪽에 법계사가 산록에 서 있다. 문창대봉우리가 앞을 가로 막고 있어서 이곳 안부에 올라서지 않으면 외부에서 법계사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산행시작 2시간 40분쯤만에 로타리 산장과 법계사가 보이는 안부의공터에 올라선다. 법계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선 절이 아닌가 싶다. 설악산 봉정암은 1240미터쯤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법계사의 해발 높이는 1450미터위쪽에 있으니 말이다.

사진:법계사와 천왕봉

로터리산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순두류에서 올라오는 길이 합류하고 있다. 순두류에서 올라오는 길은 산행깃점 말목이 있는 다리를 지나 칼바위가 있는 중산리계곡으로 들어오지 않고 큰길로 계속 올라가 청소년수련원을 지나 올라가는 길로 칼바위-망바위길보다 조금 둘러오는 길이다. 법계사는 신라진흥왕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절이다.


길은 법계사를 비켜 왼쪽으로 나있다. 조금 올라가면 또 하나의 망바위가 나온다. 조망이 역시 좋은 곳이다.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산불방지기간이 되면 쇠문을 걸어 잠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게 만들어놓은 데가 나온다. 부근에는 팔각형의 자그마한 임시 대피소건물도 보인다. 사람 10명정도는 대피할 수 있는 곳인듯하다. 대피시설인지 산불 감시초소인지는 모른다.


이곳에서의 급경사는 대단하여 가만히 서 있어도 미끄러질 정도로 급경사이다. 안부에 올라서면 순두류로 빠지는 골짜기가 내려다보이고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는 능선 저쪽에 써레봉 능선이 보인다.써레봉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황금능선으로 시천에서 보이는 구곡산(961m)은 이 능선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이 능선 또한 지리산의 산행 코스중 하나로 아는 사람들은 중산리계곡 입구인 외송리에서부터 능선을 탄다고 한다. 안부에서 조금 올라가면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석문형 좁은 길이 나오는데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석문의 이름은 개선문이라 되어있다.


이 부근에서 부터 지리산의 경관은 아래쪽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문비나무와 전나무가 많이 보는데 고산형 수목들은 더러는 작은 숲을 형성하고 있고 코발트빛 하늘을 배경으로 고사목이 서 있기도 하고 띄엄띄엄 떨어져서 바람소리를 요란하게 내고 있는 나무도 적지 않다. 게다가 바위지대가 많이 나타난다.바위는 산의 표면 자체를 이룬 암반이거나 아니면 떨어져 자그마한 암봉을 형성할 정도로 큰 바위도 있다. 하얗던 세상은 검게 변하고 그 사이에 끼인 적설지대는 눈이 아플 정도로 희다. 선글래스가 없이 올라가기가 힘든 곳이다. 나중에 확인한 것은 혹독하게 추운 날씨였는데도 얼굴이 꽤 검게 그을었다는 점이었다. 길은 돌아가서 가문비나무 숲으로 들어가는데 어둑한 숲 저쪽 공터에는 사스레나무, 거제수 나무등 자작나무 숲이 있는 비교적 훤한 곳이 있어서 대조적이다. 이 가문비나와 전나무숲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고산 지리산의 진정한 모습에 부닥뜨린 느낌이 온다. 나무도 고산형 나무이지만 깊이 빠지는 숲속의 적설은 고도가 높아선지 설질이 유난히 정갈한 느낌이다. 가문비나무나 전나무는 잔가지가 많고 수피는 회색을 띠고 있어서 하얀눈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그곳을 통과하는데에는 2분도 안걸렸지만 그 숲이 준 태고이래의 해맑은 분위기는 정신마저도 세탁해주는 듯했다. 이곳을 지나 안부로 나오면 이곳이 바로 천왕봉 바로 아래의 마지막 산록을 횡단하는 시발점이다. 이제 정상은 바로 왼쪽에 바라다보인다.이 산록은 무척 가팔라서 정상쪽의 산록에 눈이 쌓이면 눈사태라도 일어날 수 잇는 곳이다.그런데 이곳에서는 보기힘든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잊어버리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곳에는 꽤 울창한 가문비나와 전나무숲이 형성돼 있는데 나무 한그루 한그루마다 거대한 솜덩어리같은 눈이 얹혀 있어서 그 광경이 보여주는 충격은 오래토록 망막에 남았다. 아마 평탄한 곳에 형성된 숲이었다면 감동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가파른 곳에 형성된 숲인만큼 고도에 따라 덮인 눈이 지붕을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높이에 솜덩이 같은 눈이 허공을 수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나무사이로 중산리에서 시작된 긴 능선이 내려다보였다.그 신선한 광경에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다.내 이광경을 보기위해 그렇게 힘들게 올라왔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지나 미끄러운 경삿길을 올라가면서 보니 안부의 이정표가 보인다. 대원사길과 법계사 중산리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안부에 올라서자 정신 좀 차리라고 혹한의 바람이 불고 설연이 날린다.


심설이 쌓인 정상은 어느때보다 말쑥해보인다. 평소엔 안부로 올라오는 중산리쪽의 급경사길은 사태가 난듯 부서진 돌밭을 이루고 있어서 영산으로서 마음속에 간직되어있던 지리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고 안부에 올라와서도 바위들도 숱한 발자국으로 하여 "순두류"의 해맑은 얼굴을 보기힘든 것이 두류산 꼭대기인데 오늘은 일부 바위를 제외하면 모두 심설에 덮여있어 유례없이 신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지리산의 모습중 이보다 더 태고의 모습에 가까운 모습이 있을까? 그 옛날 사람이 잘 다닐 수 없었던 시절의 겨울에도 꼭 이러했을 것이다. 서쪽으로 멀어지는 대지리의 능선도, 북쪽으로 보이는 칠선골도, 남쪽으로 보이는 중산리쪽 능선과 깊이 굴헝지며 홈패인 협곡인 중산리계곡도 옛날과 꼭 같은 모습일 것이다. 신라때 낭도들이 보았을 경치도 이 한겨울엔 지금과 완전히 일치하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지리산에 와서 그런 옛스런 모습을 그리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오늘은 그것이 눈에 보이니 감개가 새롭지 않을 수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서 자연스런 모습을 되새기기 힘들어진 지리산은 이제 이 깊은 눈덮인 한겨울에야 비로소 제 모습을 한다.그 모습을 실제로 와서 발로 디디고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지리산 적설기 산행의 진정한 의미이다.


정상에서도 러셀이 된 곳에서 조금만 발이 헛디디어도 발이 푹푹 빠지는 심설이다. 먼저 사방으로 눈길을 돌려본다.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긴 능선은 제석봉에서 연하봉, 연하봉에서 촛대봉으로 가고 촛대봉에서는 방향을 바꾸어 영신봉, 덕평봉으로 물결쳐가고 있다.

혹독한 바람이 치불어 올라오는 북쪽 사면아래로 칠선골이 구불구불 북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엄청난 눈이 쌓여있겠지만 너무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서인지 평범한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자연휴식년제에 묶여있는 칠선골은 사람이 들락거리지 않으므로 이 겨울에 잘못하여 그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난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원래는 중봉까지 가서 중봉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조망을 즐기리라고 생각했지만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은 심설에 싸여 접근하기가 어렵고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다. 중봉에서 써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만이 심설에 덮여 눈이 부시도록 희다.오늘은 날씨가 맑아 아침에 일출을 보았던 사람들은 "삼대에 걸쳐 적선한 사람들의 후예"였을지도 모른다. 문창대 아래쪽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여대생풍의 한 산꾼은 화엄사에서 올라와 3박 4일에 걸쳐 종주했다고 했는데.정상에서 시간을 보내며 겨울사진을 찍으러온 청년들, 어제밤 백무동-세석구간에서 발가락에 동상이 걸렸다는 사람등 여러 사람을 만났다. 모두가 흰옷입고 춤추는 대지리의 장려한 무도에 심취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강풍으로 낙화해버린 설화를 오늘밤 다가오는 눈구름이 보상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는 사진가들의 원망을 아는 듯 모르는듯 밤에 눈이 오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이 갈 정도로 하늘은 맑기만 하고 대기는 건조하기만 했다.


정상의 설한풍에 디지털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디지털 무비 카메라도 마찬가지이다. 품속에서 꺼냈다 하면 바로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배터리가 냉각되면 파워의 출력이 불가능하다. 바람을 피해 남쪽사면의 바위쪽으로 내려간다. 물론 푹푹 빠지는 눈을 밟고서다. 그러나 바위 뒤도 앞에서도 바람은 분다. 목으로 귀밑으로 소매속으로 다리로 바람은 불어와 한기는 전신으로 퍼진다. 스패츠를 하고 있어서 발목과 장딴지만은 뜻뜻하다. 정상에 더 있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패퇴하듯 제석봉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급경사 내리막길과 사다리부근에서 벼랑에 선 나무 위에 수북히 쌓인 전나무, 가문비나무의 눈을 찍는다.나무들 뒤로는 장터목 아래의 급경사가 끝나는 중산리 계곡바닥이 까마득히 내려다 보인다.


제석봉으로 올라가기전의 작은 안부일대에는 바람이 거의 없어서 마치 지리산 중산리의 어느 양지바른 골목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눈밭에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데워 점심을 먹는다. 3시가 가까워온다. 한 젊은 산꾼이 묻는다. "왜 여기서 식사를 하세요?" 그는 10여분만 내려가면 장터목대피소인데 무엇 때문에 여기서 청승을 떠느냐고 묻는 것이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려면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그렇다고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고 그저 "시장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중산리에서 올라오다가 망바위에서 생식 한포를 물에 타서 먹었다. 필자는 배낭무게를 줄이면서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생식을 가지고 다닌다. 지리산 산행은 배낭과의 싸움이기에 생식은 무척 편리하다.생식한포를 물에 타서 먹으면 라면 두개의 에너지는 충분히 된다. 또 하나 그곳에서 점심을 먹은 이유는 바람때문에 지리산 경관을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던 정상에서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통천문의 해발높이가 1850m이므로 이 안부는 적어도 1800m는 될 것이다. 이 높은 능선에서 해가 질 때까지 있고 싶었다. 그동안에 눈보라라도 몰려왔으면 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1%도 없어보인다. 날씨는 너무나 맑아 선글래스를 끼고 있는 데도 눈이 부실 지경이다. 부근의 산록에 서 있는 전나무에 매운 바람이 소리를 내고 있다. 무거운 눈뭉치를 이고 있는 나무의 바람이 닿는 부분에만 눈이 없다. 그러니까 주능선10여미터 상공에는 정상에서 경험했던 냉한기류가 여전히 그 속도 그대로 1800미터의 장벽을 넘고 있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제석봉으로 가는 철사다리위에 올라서서 천왕봉을 바라본다. 중산리에서 올라오며 바라본 천왕봉 보다는 훨씬 색깔이 희다. 서쪽 능선은 가파르지만 나무가 많고 중산리쪽으로 뻗은 동쪽능선은 완만하지만 바위능선의 스카이라인이 거칠다. 이 능선은 남쪽으로 뻗어내려 중산리계곡에서 끝나는데 망바위에서 서쪽으로 본 능선이 바로 이 능선이다. 북쪽으로 뻗은 능선은 칠선계곡쪽으로 빠진다(지리산 화보중 제석봉에서 본 정상 참조). 천눈 덮인 천왕봉은 산록에 울창한 전나무, 가문비나무 가지위의 눈덩이로 하여 전체적으로 희떡희떡해 보이고 억세기만 한 이들 나무가지들이 가로로 뻗어있는 뒤로 정상을 보면 눈과 나무, 바위와 산록의 구분이 애매하여 혼란스러운 가운데 천왕봉만은 오연하게 뒤에 우뚝 솟아있다. 항상 멀리서만 바라본 천왕봉의 지근거리에서의 조망은 야성적이다.

제석봉 측면으로 올라서면 중산리계곡이 발아래 내려다보인다. 고도감이 두드러진 곳이다. 제석봉 남록은 중산리계곡을 향해 단애를 이루고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해발 1000m로 추정되는 중산계곡 바닥까지는 직선거리 2km밖에 안되는데 고도차이는 800m에 가까우니 그 고도감이 얼마나 현저한지 알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내일 아침 장터목 대피소에서 중산리계곡으로 내려갈 일이 걱정된다. 눈이 없는 여름철엔 쉽게 내려왔지만 심설이 쌓인 2월의 그길은 분위기가 달라도 한참 다를 것 같다. 중산리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단애위 길가 바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장터목으로 내려가기 전에 할 일이 한가지 있어서다. 일몰 사진을 찍는 일이 그것이다. 중산리쪽 사면엔 바람이 별로 불지 않아 견딜만했다.


장터목쪽에서 중년산꾼 한분이 올라와서 말목 울타리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삼각대를 설치한다. 그는 날씨가 많이 풀렸지요 하고 묻는다.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면서 대답을 안하고 있었더니 어제는 굉장했다고 얘기해준다. 정상이나 주능선에서는 강풍이 불지 않으면 그만치 체감온도는 높아진다. 그러니 날이 풀린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던 것이다. 그의 카메라는 대형필름을 쓰는 카메라였고 배낭은 말하자면 이 카메라에 달린 악세서리 가방에 불과했다. 이 맘때 지리산에는 많은 사진애호가들이 대피소에서 묵으며 눈에 덮인 지리산을 찍는 것이 하나의 유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을 주제로 한 지리산사진. 그것은 볼만한 사진 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주제에 걸맞는 산사진활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날씨다. 날씨가 변덕을 부려야만 좋은 사진이 나온다. 안개나 구름이 휙휙 지나가야 설화가 필 것이고 눈발이 날리고 강풍이 불어야 겨울사진에 걸맞는 아름다운 상황이 빚어진다. 그런데 어제 오늘은 날씨가 너무 맑고 건조한데다 어제는 강풍이 불어 북쪽 사면의 나무위의 눈도 다 떨어지고 말았단다. 내가 이곳 제석봉의 일몰이 볼만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도 일몰을 찍겠다고 한다.

드디어 5시가 된다. 제석봉의 노출된 산사면에서 반야봉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차디찬 바람의 흐름속에 조금만 서 있어도 몸이 금방 얼어버릴 것만 같다. 해가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이내가 짙어진다. 구름은 아니지만 건조한 기운과는 다른 우중충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것이 현저하게 발달하면 구름이 되고 안개가 되는건가? 바람부는 사면에서 장터목쪽으로 조금 내려오니 울창한 전나무숲이 바람을 가로막아 상대적으로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 나온다. 제석봉 정상은 아니지만 반야봉도 그대로 보이고 촛대봉에서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또렷이 보이는 지역이다. 마침 고목도 두어그루 있어서 사각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몸속을 파고드는 뱀같이 교활한 추위에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한다. 해가 지평선에 걸리는 듯한데도 30분이 걸려서야 비로소 해의 아웃라인이 보인다. 그동안 짧은 거리를 왔다갔다 하면서 몸에 열을 내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뜻대로 안된다. 드디어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중충한 기운이 변하여 하나의 엷은 모양의 띠가 하늘 서쪽에 길게 형성되더니 해는 그 안으로 들어가 아웃라인이 희미해져 버린다. 반야봉의 스카이라인이 죽어버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애석했다. 이것도 운명이다. 지리산에서는 완벽한 일몰이나 일출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렇게 어렵다고 하질 않는가? 어쨌든 일출 사진을 찍고 급히 장터목 대피소로 내려가는데 금방 날이 어두워진다. 그런데 대피소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우연히 하늘을 보니 허연 안개자락이 하나가 훌훌 대피소위 하늘을 덮으며 능선을 넘어가고 있다. 기가 막힌 예보 아닌가? 그런데 이 한자락의 안개가 다음날 아침 천왕봉에 걸렸고 오후에 산청을 지나 서울로 올라올 때 경호강변의 어느 주유소에서 볼 때도 멀리 수많은 봉우리의 가장 높은 곳에 솟아있는 아득한 스카이라인의 최고자리에 위치한 천왕봉에 걸려 있는 것이 꿈속처럼 아스라히 보이는 것이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숙박료와 담요2장요금 7000원을 내고 내려와 취사장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한다. 생식하나를 타먹고 라면을 끓여 먹는다. 내일아침을 위해 보온병에 끓인 물을 담았다. 평일인데도 대피소 취사장은 북적거린다. 지리산이 인기있는 산이라는 것은 여기서도 증명된다. 대피소가 없어도 그럴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물을 뜨러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였고 300m 정도나 내려가야하는 난코스(?)였다. 그런데 얼음 구덩이속 샘은 불결했다. 담배꽁초도 하나 떨어져 있다. 물은 새앙쥐 오줌처럼 흘러내려온다. 대피소의 크기와 이용자의 숫자를 감안하면 물의 수급상태는 너무나 열악하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저녁을 먹고 화장실로 가는데 집옆에 태산같이 치운 눈을 쌓아놓은 것이 보인다. 과연 지리산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뒷곁으로 돌아가는데 설한풍이 모질다. 하지만 화장실은 산 꼭대기인 것을 감안하면 최상급이다. 자는 방은 연하봉실이라는 이름의 아랫층에 위치한 방이었는데 아마 아랫층이 윗층보다 사람이 많아 따뜻했던 것 같다. 장터목 대피소는 등산화를 벗고 들어가게 돼있다. 자리를 찾아와보니 등산화를 히터(온풍구)위에 올려놓았다. 발냄새가 사정없이 난다. 자세히 보니 K로 시작되는 플래스틱 등산화의 내피이다. 신발의 주인공들이 들어온다. 대학생 산꾼들이었다. 신발을 갖고 들어온 것에 대해 주의를 환기했더니 "그건 내핀데요." 한다. "내상식으로는 그것은 신발이요." 했더니 꼭 들어내야 하겠느냐고 다시 묻는다. 신발이 아니라 그것이 양말이라고 하더라도 냄새가 나면 치워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이 꼬여있다.

침낭이 있으면 담요는 한장이면 족할 듯하다. 자다가 땀이 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대피소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사람들이 주섬주섬 배낭을 꾸리고 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천왕봉의 일출을 보러가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다섯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나는 천왕봉으로 가는 대신에 연하봉쪽으로 가려고 했다. 문간에서 어제 천왕봉에서 만난 청년을 만났더니 하늘을 바라보며 천왕봉으로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늘에는 안개가 풀풀 날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나와 연하봉으로 가는데 연하봉 산록길의 눈은 더욱 더 심설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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