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3. 18:47
청화산(984m)
위치: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드라이브 코스: 서울-3번도로-곤지암IC-중부고속도로-호법IC-영동고속도로-여주IC-중부내륙고속도로-괴산IC-19번도로-525번도로-쌍곡계곡-제수리재-송면-의상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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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m암봉에서 바라본 조항산. 정상에 아직 구름이 머물고 있다.

단애부근의 소나무 상고대.

의상골은 의상저수지 아래 용송이 있는 마을이다. 청화산과 조항산 사이의 계곡물을 모아 만든 의상저수지는 상당히 큰 저수지로 물도 많다. 의상저수지로 가는 포장도로는 외길1차선 콘크리트 도로이다. 둑위로 올라서서 반대편으로 건너가면 갓바위재로 올라가 청화산으로 가든가, 아니면 조항산으로 갈 수 있고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면 조항산으로 바로 올라갈 수도 있다. 이 둑으로 올라가기전에 오르막길 오른쪽에 조그마한 계곡이 나오는데 이 계곡으로 들어서면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지도에는 이 계곡이 나오기전 평지에서 도수관(관개용수로)아래로 길이 나 있고 자그마한 계곡으로 들어가서 능선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하고 있는데 그 길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바로 이 도수관 아래길목에 허름한 가옥이 있어 그 앞마당을 가로질러 가자니 조금 안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다음 계곡에서 산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인데 마침 리본도 있고 하여 제대로 길을 찾아 온 것인가하고 안심했지만 묘소를 지나 올라가는 길은 잡목숲에 이르러 매우 희미해졌다. 여름철 잡목이 우거지면 길을 찾기가 쉽지는 않아 보이고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길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코스에서는 뚝심좋게 밀어부치면서 능선에 올라서는 것은 중요하다. 어차피 청화산으로 가는 능선은 하나이므로 조만간 큰길이 나올 것은 정한 이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라가니 소나무도 한 그루 있는 대체로 둥그스럼한 지능선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의상저수지일대가 내려다보이는 것이 가슴이 시원해진다. 여기서 급경사를 조금 올라가면 능선턱에 이르고 밑에서 올라오는 조금 번잡해보이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서면 비로소 청화산의 의상골쪽 능선의 첫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이 봉우리의 높이는 583m정도(GPS)되어 보였다. 이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는 쉽고 평탄한 편이었다. 다음 봉우리는 638m. 이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까지는 만만치 않은 급경사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 앞봉우리가 꽉 막아서서 청화산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때(1시를 조금 넘어 있었다)까지 점심을 먹지 않고 있었는데 뚜렷하지는 않지만 중턱에 바위지대 비슷한 데가 있는 것처럼 보여 거기서 점심을 먹겠다고 생각하고 앞의 봉우리를 향하여 걸음을 뗀다. 급경사로 올라서기까지의 능선은 평탄하여 한가롭고 여유가 있었다. 높은 봉우리를 감싸고 있던 안개지대는 조금씩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송면에서 늘재로 가는 도로 저쪽에 솟아있는 백악산에는 없던 구름이 정상을 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청화산정상에 올라가면 안개가 맞이할 것인가 구름이 맞이할 것인가?  

급경사로 접어들어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데 능선턱을 올라서니 웅장한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표면에 절리가 많아 발을 딛는데 전혀 부담이 없지만 능선이 끝나는 곳을 바위지대가 온통 점령하고 있었다.이 바위때문에 능선의 방향이 바뀌어져 있었다. 바위지대는 의상저수지위쪽으로 뻗어가는 작은 지능선의 시작점이었다. 이 바위에 도착한 것은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쯤이 되었을 무렵. 단애는 직벽은 아니지만 높이도 꽤 되어 20 내지 30m는 되어 보인다. 바위지대에는 거목 노송도 보이고 낮은 가지에 리본도 잔뜩 붙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그것은 리본을 붙인 사람들의 기분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여름에 이 바위위에 서면 그야말로 신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람에 펄럭이는 리본이 그것을 웅변해주고 있었다. 올라가는 반대쪽은 더욱 아름다운 전망대를 형성하고 있어서 조항산, 갓바위재, 청화산에서 내려와 갓바위재로 가는 백두대간 능선이 훤히 바라다보인다.
정말 이런 바위에 오면 없던 먹을거리라도 찾아서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더욱이 아직 점심전이라면 말해 무엇할 것인가? 나는 신발까지 벗어놓고 편안하게 점심을 먹었다. 지난번 칼봉산에서 눈이 꽤 들어갔던 신발이 아직도 조금 축축해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리고 바위저쪽능선으로 나가면 북동기류때문에 마땅히 점심먹을 만한 곳이 없을 듯해보이기도 했다. 여유를 갖고 사방을 둘러보며 휴식시간을 갖는 것은 산행에서는 더없이 귀중한 시간이다. 사방이 꽉막힌 울창한 숲속에서는 쉬고 싶은 생각이 별로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망대겸 기막힌 휴식처인 바위지대를 지나 고도를 높이면 능선은 차츰 암릉지대로 바뀐다. 그리고 암릉지대특유의 분위기를 돋구는 소나무들이 줄줄이 서서 북동기류를 맞고 있다. 소나무는 안개로 부터 가장많은 물기를 만들어내는 나무다. 안개낀날 산행을 하면 큰소나무 아래는 언제나 후줄근히 젖어있다. 솔잎의 꺼끌꺼끌한 표면에 수분입자가 잘 달라붙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무슨 의미냐 하면 오늘처럼 영하의 습기찬 북동기류가 부는 날에는 소나무에는 마치 눈에 솔잎을 버무린 것 같은 멋진 상고대가 핀다는 말이다. 드디어 토요일의 마술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소나무들의 상고대모습이 점점 가경을 이루자 나는 점심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 것이 오히려 속이 상할 지경이다. 구름이 걷히면서 강한 햇살에 소나무의 상고대가 급속도로 길위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나무아래는 비가 오는듯도 싶고 이미 많은 상고대가 떨어져 하얗게 깔려있기도 했다. 그러나 단애끝에 서서 다른 상고대 소나무들을 바라보니 이런 가경이 없다. 한 겨울에는 모든 게 다 하얀색이므로 다양한 변화가 없지만 초봄기운이 성큼 다가온 산록에서는 일부송림의 상고대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소나무아래에 서면 마치 소나기가 오는 듯했다. 햇빛에 얼음이 녹아 연속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어떤 것은 물방울로 떨어졌지만 무게를 이기지못한 얼음알갱이들이 그대로 떨어지는 일이 더 많았다. 그러나 응달진 곳 소나무의 상고대는 그대로여서 골짜기아래의 적갈색 산록을 배경으로 수형(樹形)의 아웃라인을 형성한 상고대가 하얀 윤곽선을 그리고 있어서 보기가 특이했다. 정상쪽을 보니 안개는 이제 끝물이어서 곧 다 벗겨질 것 같았다. 길은 왼쪽(백두대간쪽)이 단애를 이루고 있을 뿐 편안한 산길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오른쪽 아래로 멀리 늘재가 내려다보인다. 위에서본 늘재는 재라기 보다 높낮이없이 송면에서 화북으로 가는 32번도로가 그대로 죽 그어져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여기가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이다. 청화산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화양계곡으로 들어가 달천이 되고 달천은 충주댐아래에서 남한강에 합류된다. 북쪽을 흐르는 물은 용암천이 되어 가은으로 흘러가며 여기서 문경 조령산에서 흘러내려온 물과 합류, 영강으로 불리며 흐르는데 낙동강 본류에 필적할 정도로 커진 영강은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 동쪽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늘재가 내려다보이는 이 바위지대에서 보면 32번도로쪽으로 산록에 여기저기 바위전망대형 테라스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안부로 내려서서 다시 오른쪽으로 단애형바위지대가 보이는 급경사로프지대를 올라서면 능선턱에서 흘러나온 물이 겨우내 얼었던 얼음지대가 나온다. 이곳은 정상에서 5분정도 떨어진 곳인데 겨울에 이만치 얼음이 얼려면 물이 계속 나온다는 얘기일 것이고 그렇다면 여름에도 물이 있을만한 곳으로 짐작되었다. 혹시 청화산에서 물이 떨어진 대간꾼이라면 이곳을 기억하고 있는게 좋을 듯싶다. 이곳을 지나면 다시 테라스바위가 되어있어 바위끝에 서면 늘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속리산은 아직도 구름속에 들어가 있어서 안보인다. 왔던 능선을 내려다보니 멋진 상고대를 보여주었던 880m대의 능선봉의 동쪽 사면이 상고대로 하얗게 물들어있다.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3시20분. 중식시간을 빼면 2시간30분쯤 걸렸다. 사진을 찍으며 쉬엄쉬엄 올라왔으니 2시간이면 충분히 올라올 수 있는 거리다. 올라오고나서 보니 이외로 쉽게 올라왔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대에서 늘재로 오던 날 무척 고생했던 생각을 하면 더욱 그랬다.
정상에서는 이따금 생각난듯 안개가 훅 지나가곤 할 뿐이지 시야를 막을 정도는 아니다. 동쪽으로 보면 정면에 시루봉이 보인다. 안개가 더 엷어지면서 옆의 연엽산도 보인다. 소나무가지 아래로 원적사도 내려다보인다.  

청화산은 조선조후기의 실학파인 "택리지(擇里誌)"의 저자 이중환(李重煥)이 특별히 주목한 산이다. 그의 "택리지"에 청화산에 대해서 이렇게 씌어있다."청화산은 뒤에 내외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에 임해 있다. 앞뒤편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고,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 같이 험준한 곳이 없다. 흙봉우리에 둘린 돌이 모두 수려하고 살기(殺氣)가 적고 모양이 단정하고 평평하여 수기(秀氣)가 흩어져 드러남을 가리지 않아, 자못 복지라 하겠다." '뒤에 내외 선유동을 두고..'란 말은 대야산(이중환은 대야산을 선유산이라고 부른다) 서쪽의 괴산 선유동과 동쪽의 가은 선유동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용유동은 청화산남쪽 산록으로 화북면 일대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중환은 특별히 용유동에 대하여 길게 언급하고 특히 화북면에서 동으로 터진 협곡인 쌍용계곡의 절경에 관해서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주목을 끈다. 이 모두 그가 청화산일대의 복지임을 강조하기 위해 적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 청화산에 올라와 산의 이곳저곳, 보이는 경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마음은 감개로울 수밖에.

사진:백두대간 기원단

청화산에서 늘재로 내려가는 길은 우선 고도가 600m정도밖에 안되니 안심이다. 늘재의 해발고도는 370m전후.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헬기장을 지나면 전망이 좋은 바위지대가 있다. 늘재도 내려다 보이고 청화산도 뒤돌아 보면서 속리산일대의 백두대간이 시야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오늘은 속리산쪽은 안보이고 바위부근의 노송에 상고대가 끼여 아름답다. 바위에서 내려와 능선길을 따라 내려오면 군데군데 위가 펀펀한 테라스전망대가 나온다. 이런 전망대가 있어서 내려오는 길을 헷갈리지 않고 잘 내려올 수가 있다. 이런 전망대중에서 처음 나온 전망대는 해발 770m부근이어서 의상골에서 올라올 때 수려한 바위전망대의 해발고도가 770m언저리였던 것이 생각난다. 청화산은 그 부근의 바위가 멋진 산인 모양이다. 조금 더 내려오니 늘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나오고 거기에 배향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오석의 비석에 "靖國祈願壇"란 각자를 새기고 "백의민족(민족중흥)성지"라는 작은 각자와 "백두대간중원지"라는 한자 각자도 보인다. 선조들을 잊지말자라는 뜻으로 보이는 각자도 있고 '삼파수'란 말도 보인다. 삼파수는 낙동강, 한강, 금강을 말하는데 정확히 말한다면 삼파수의 산은 속리산이다. 속리산에서 3개의 강이 흘러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원을 한다면 절을 해야하는데 누구에게 절을 하는가? 비석앞에 서면 소나무사이로 속리산 능선이 수려한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은 것을 보게되는데 절을 하면 바로 속리산을 보고 절을 한 격이 된다.

어느지도에는 백두대간 기원단이라는 이름이 보이던데 이 비석이 바로 그 기원단인 모양이다. 아름다운 자연속에 인공물이 보이니 조금 반발감이 솟구치지만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느끼고 응어리진 감정의 일단을 추억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나라에 혼백을 묻을 사람으로 오랜 시간 힘을 다해 백두대간을 오르내린 사람치고 이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려고 한다. 백두대간종주는 적어도 나라의 소중함, 국토에의 무한한 애정을 일깨워주었을지 모른다. 기원단에서 앞을 보니 속리산이 환하게 보인다. 그동안에 안개구름이 완전히 걷혀있었던 것이다. 늘재에 내려오니 5시 10분이다. 청화산을 오르내린지 4시간 30분이 걸렸다. 늘재에서 의상골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찻길로 걸어가야 하지만 이것도 산행길이다. 최대속보로 걸어내려오니 4km정도의 거리를 40분에 주파한다. 해가 넘어가기전에 용송을 보려는 생각에 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용송-천연기념물 290호. 충북자연환경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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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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