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10. 07:36
2004-02-07                                                     최근산행

치악산- 1288m - 산이 울고 설연이 휘날리다

치악산의 겨울모습은 참 다양하다. 치악산에서 겨울에 실망한 적이 별로 없다. 소나기를 맞으며 들어가 폭설을 밟고 내려온 것 하며, 아무도 밟지않은 겨울신설을 종일 밟았던 천지봉-비로봉 종주, 남대봉-향로봉 미니종주의 안개사건(안개가 끼여 내려가버릴까 하다가 창공에 가득히 반짝이는 설화를 본 것) 등이 그렇다. 오늘은 어제 제법 눈이 많이 내린 치악산이 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날로 기억될 것 같다. 강풍이 불어 하루종일 산이 울고 설연이 안개처럼 산록을 희게 물들이며 빗겨가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세렴폭포쪽으로 가고 있을 때 숲사이로 보이는 얼핏 보이는 치악산 정상부는 믿을수없을 정도로 예리한 삼각봉의 모습을 하고 있어 아직도 그 윤곽이 뇌리에 또렷하다. 왜 여태 치악산의 그러한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을까? 이건 치악산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돌탑(보이지는 않지만)에 자일을 걸고 록클라이밍 하듯 올라가지 않으면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 말하자면 마이산의 숫마이봉을 다듬어 삼각형으로 만들어서 능선에 올려다 붙이면 그런 모습이 될 것 같다. 숫마이봉은 그냥은 올라갈 수 없는 봉우리이다. 치악산도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 삼각봉이 희한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고산처럼 설연이 몹시 휘날려 마치 구름이 지나가는 듯, 연기가 피어오르는듯 봉우리끝에서 하얀 리봉이 매달려 바람결을 따라 곱게 펄럭이는 듯한 scene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은 지난번 남대봉-향로봉 미니종주에 이어 구룡사-고든치 미니종주를 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이태만에 치악산 심설종주를 마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설연이 날고 산이 우는 날의 치악산

치악산종합 | 치악산화보
원주 시내에서 치악산으로 들어가는 버스길은 상당부분 빙판을 이루고 있다. 어제(2004년 2월 6일)강원영서지역에 꽤 많은 눈이 내린 탓이다. 서울에서 원주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동서울터미널-원주시외버스터미널 5500원) 오늘은 승용차없이 치악산을 찾은 만치 비로봉을 넘어 어디로든지 갈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설렌다. 차를 대둔 곳으로 되돌아 올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이번엔 삼봉쪽으로 한번 가봤으면 했지만 결과적으로 또 못가고 만다. 정상에서 입석대로 가면서 보니 삼봉길은 막혀있었고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고든치를 지나 행구동으로 내려가기로 한 것도 절반은 즉흥적으로 정해진 코스였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시간만 있다면 남대봉인들 못갈소냐? 하지만 산행을 11시경에 시작했으니 과욕은 금물이다. 새벽일찍 구룡사를 떠난나면 남대봉도 가능할 것 같다. 고든치까지 가서 부곡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아뭏든 산행중에도 여러가지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은 차를 버리고 난 뒤 분명 새롭게 찾아온 등산스타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 매표소로 들어가는 길목은 노송이 우거지고 한쪽은 높은 단애, 단애 아래는 치악천 물이 흘러나가는 계류이다. 이곳부터가 사람의 얼을 빼놓을 만한 곳이다. 그런데 어제 내린 눈이 바람에 날리고 높은 거목 소나무가지 끝에서 쏟아지는 눈가루가루가 역광에 반짝이는 것을 보니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어진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치악산은 원주 동쪽 25리에 있는 진산이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빽빽히 들어서고 수석이 그윽하고 기이하다"는 구절이 있다. 다리아래의 개울부근과 송림이 바로 그곳일지도 모른다. 조선조 태종때 예문관 제학(提學)을 지낸 변계량(卞季良)이 이런 광경을 두고 시로 읊었겠다. "치악산이 동해지방에 이름이 높고...구름, 연기, 바위, 동확이 몇 천년이 되었는가"고. 모든 것이 개발되고 변모한 지금도 그렇거늘 모든 자연이 옛 모습 그대로였을 그 옛날엔 치악산의 경관이 어떠하였을까? 입장료 3200원을 내고 들어가는데 다리에서 보니 소나무잎이 뻗는 가지마디마다 하얀눈이 들어붙어 독특한 경관을 만들고 있다. 개울은 완전히 얼어붙어 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설연이 날리는 치악산

설연이 날리는 치악산

거목송림 아래로 일주문을 지나는데 "소방도로 개설 백만인 서명운동"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작년 구룡사 대웅전이 불탄 것은 소방도로불비로 전소된 것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그렇다면 국내의 상당부분의 절은 계곡 깊숙히 또는 산록 높직히 위치하고 있는데 모두 소방도로를 내야한다면 이것도 굉장한 자연파괴의 원인이 될 수 있겠다싶어 걱정이 된다.
11시를 지나 구룡사앞을 지난다. 구룡폭포와 구룡소 역시 완전히 결빙되어 물흐르는 소리도 소안에 뚫린 곳도 전혀 없어 그곳에 소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세렴폭포쪽으로 한참 들어가면 야영장이 나온다. 야영장을 지나 숲속의 눈길을 걸어올라가는데 숲사이로 정상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정상은 지금 제트기류라도 지나가는지 엄청난 설연을 피워올리며 일순간 마치 안개에 휩싸인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장관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강풍이 몇번 정상일대를 훑어가고 나면 나중에 정상에 올랐을 때 구경거리가 남아있기라도 할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설화는 모조리 날아가 버리고 말 것 아닌가? 정상뿐만 아니라 삼봉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도 이따금 강풍이 하얀 설연을 휘날리고 있다.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또 하나 이 때 모습을 드러낸 치악산 정상은 여태 본 적이 없는 삼각형의 대형첨탑으로 상상할 수 없는 높이위에서 하늘을 찌르고 있는 듯하여 깊은 인상을 준 점이다. 1288m에 지나지 않지만 이 모습은 이국적인 고산의 모습이었다. 치약산이 그토록 첨예한 봉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이전엔 미처 몰랐다.

치악산 1288m
위치: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판부면, 신림면-횡성군 안흥면, 강림면
교통편:서울동서울터미널-원주시외버스터미널(1시간30분에 도착. 10분배차)
드라이브 코스:서울-영동고속도로-새말인터체인지-구룡사주차장
숙박:원주 또는 구룡사아래 단지 이용
문화재와 볼거리:구룡사와 구룡사계곡
코스:구룡사-세렴폭포-사다리병창-정상-입석대갈림길-원통재-고둔치-행구동
산행시간:7시간
주차장에서-구룡사까지는 평탄하다. 구룡사에서 세렴폭포아래 다리까지도 대체로 평탄하지만 약간의 오르막이 있다. 주차장과 세렴폭포 아래 다리까지의 고도차는 약 200m정도 된다. 세렴폭포에서 사다리병창, 사다리병창에서 정상까지는 거의 45도에 이르는 급경사이다. 준 암릉성 급경사지역엔 사다리와 쇠난간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능선을 따라 소나무가 울창하여 치악산의 산정기를 느끼면서 산행할 수 있다. 사다리병창은 위험구간 암릉으로 쇠난간이 설치 되어 있으며 우회로는 없다.
세렴폭포부터 초급경사:세렴폭포아래 다리의 해발고도는 500m, 정상은 1288m이므로 약 800m를 급경사로 올라가야 한다. 정상에는 3개의 돌탑이 있다. 정상은 원래 테라스를 이룬 암봉이지만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닌데다가 3개의 돌탑이 세워져 있어서 비교적 좁다. 3개의 돌탑은 겨울철 산행때 바람막이 역할을 한다.상에서는 향로봉-남대봉으로 이어진 치악 능선이 훤히 보인다. 입석대, 고든치, 향로봉으로 가는 길은 정상서쪽에 보이는 헬기장으로 가야한다. 먼저 안부로 내려가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초소앞으로 능선을 따라올라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는 거의 1직선으로 치악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입석대로 가는 길은 얼마 안가 오른쪽 능선길을 따라간다. 고든치로 가는 길은 고도를 낮추며 계속 내려가면 된다.
복병은 눈처마:치악능선에서 겨울시즌의 복병이라면 그것은 눈처마라고 할 수 있다. 남북으로 뻗은 치악능선은 서쪽산록의 눈을 밀어올리기에 적절한 환경을 제공한다. 그래서 눈처마가 잘 발달한다. 눈처마는 능선날등을 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겨울 시즌에는 피할 길이 없다. 입석대갈림길에서 고든치로 가는 길은 순탄하고 고도도 점차적으로 낮아진다. 고든치로 가는 길에 주의할 것은 첫번째로 나오는 안부가 고든치는 아니라는 점이다. 처음 나오는 주요안부는 원통재이다. 이 재에는 산길이 없다. 고든치로 가려면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를 넘어가야 한다. 이 봉우리는 969.9m봉이다. 향로봉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고든치는 이 봉우리를 넘어 한참가야 있다. 정상-고든치능선에는 바위라고는 없는 순한 육산의 모습으로 치악산 능선 가운데 가장 유장한 능선의 모습을 하고있다.

치악산의 최근 모습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사다리 병창으로 올라가는 급경사의 대부분엔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어 세굴로 인한 산의 파괴를 차단하려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사다리 병창이후에도 많은 계단과 난간이 건설되어있다. 세렴폭포 아래 계류의 해발높이가 501m로 측정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정상까지의 순고도차이는 거의 800미터에 이르는 788미터나 된다는 얘기가 된다. 대단한 능선이다.
허위단심 급경사를 올라 능선턱엔 이르면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송림지대가 이루어져 있어 그나마 피곤에 절은 시야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런 능선턱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올라갈수록 송림은 눈을 들쓰고 소나무와 눈의 어울림을 속시원히 보여준다. 천지봉-비로롱 능선이 점점 높아지면서 그 배경을 이루어가는 모습도 볼만하다. 하얀 산록을 배경으로 굴곡이 또렷한 능선이 이리저리 달리고 붉은 색의 수피도 선명한 소나무가 먼 설릉을 배경으로 서있는 광경은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한동안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수려한 경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광경에 면역이 된 것인지 그대로 지나가 버린다. 오른쪽 삼봉능선위의 푸른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는 광경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구름이 엄청난 냉기의 덩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정상에서 숨이 막힐 듯한 추위를 맛보는 순간에 떠올렸을 따름이었다. 능선아래쪽에서는 꽤나 낭만적으로 보였는데 삼봉능선 쪽에서도 강풍이 불어내려와 설연을 형성시키곤 했다. 카메라가 얼까봐 품속에 품고 있던 카메라를 꺼내면 이미 그 광경은 산록 아래로 내려가 버리고 만 뒤든가 아니면 눈가루들이 이미 숲에 가라앉고 난 뒤였다.
드디어 사다리 병창 암릉이다. 암릉주위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바람이 불면 눈가루가 후드와 배낭에 우수수 떨어지곤한다. 오른쪽에 깊숙한 협곡이 있고 협곡저쪽은 거대한 암봉이 솟아있다. 솟아있다기 보다는 주능선에서 정확히 세렴폭포 아래 선녀탕을 바라보고 뻗어가는 지능선의 기세가 꺾이면서 마치 봉우리 같은 인상을 줄 정도의 단애를 이루고 있는 봉우리다. 그 봉우리 한쪽 거친 암릉과 소나무가 우거진 능선을 따라 바람이 불면 조그마한 안개 덩어리같은 설연이 일어나 협곡 아래로 휩쓸려 내려가곤 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그것을 찍느라고 폼을 잡는 사이 뒤따라온 사람들이 지나간다. 정상을 보면 그곳에 다시 엄청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며 설연의 안개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다리병창 암릉은 그래서 조망이 일품이다. 정상도 보이고 협곡 건너 단애도 위협스레 접근해있고...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울창하게 자라고 있고..
사다리병창에서 본 정상은 설화라고는 하나도 없는 건조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발 정상에 올라가기전에 바람이여 조금만 부드럽게 불어다오. 그런데 정상을 꼭대기로 한 삼각봉의 저변에 이르렀을 때는 밧줄과 계단을 무수히 댕기며 오르고 급경사숲을 올라간 다음 다소 평평한 안부였는데 거기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눈이라고는 없는 황량한 숲이 아니라 눈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설국, 설화가 만발한 수려한 흰꽃숲이었다. 설연이란 형태로 긁어 올라간 눈가루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올라갈수록 숲은 더욱더 환상적인 설화로 장식하고선 지친 산꾼들이 어서 올라오라고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넋을 빼놓는다.
강풍이 휘몰아간 설연은 어디로부터 눈을 쓸어와 어디다 쏟아 놓은 것일까? 강풍은 골짜기 바람사면의 눈을 거꾸로 이곳 정상직하의 능선숲에 흩뿌렸기 때문에 설화는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화려하게 만들어놓은 게 아닌가 싶었다. 등걸에 눈이 덮인 사스레나무들도 더욱 희어져 창공을 배경으로 칼로 도려낸듯이 또렷하게 빛난다.
앞서 도착한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거의 동시에 올라오다 시피한 사람들만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살같은 바람이 냉기를 몰아 불어가는데 도저히 1,2분도 그냥 서 있을 수가 없다. 비로봉의 돌탑은 이럴 때 훌륭한 바람막이가 돼 준다. 지난번 보았을 때 무너졌던 돌탑은 무너진 부분을 보수하고 위에 피뢰침도 하나 달아 놓았다. 정상에서 동남에서 서남까지 바라본다. 웅대한 조망이 펼쳐진다. 하지만 재작년인가 천지봉 종주때처럼 동남, 남, 서남까지의 산록엔 도대체 설화라고는 없다. 그동안의 온난한 기온의 여파가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설화는 사다리병창 위쪽 정상직하의 산사면을 화려하게 수놓을 뿐 남대봉이 보이는 정상남쪽의 산록엔 아무것도 없다.
치악산 이정표
정상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사다리 병창 길로 그냥 되돌아 내려갔다. 눈바람에 길이 파묻힐 것을 우려하며, 괜한 모험을 피하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들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모진 바람이었다. 그 바람이 종일 산명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잘 모르는 길을 가다가 방향이라도 놓치면 조난은 필연적일 수도 있었다.
나는 하산길을 입석대쪽으로 잡을까 생각하고 있다가 고든치로 가기로 한다. 입석대로 내려가는 능선길이 지겹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급경사 돌팍길은 눈이 없어도 지겨운 법인데 그위에 눈이 덮여있는 상황이라면 하산길은 살인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든치로 내려가면서 고도를 최대한으로 낮출 의향이었던 것이다. 단지 고든치길이 설중산행으로는 처음이라 조금 걱정은 되었다. 만일에 고든치쪽으로 오늘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없으면 입석대로 하산하기로 하고 비로봉을 내려선다. 산불감시초소 처마밑에는 거짓말처럼 바람이 없어 미숫가루(마를 주성분으로 한 것으로 식사대용인데 한번에 3스푼씩 보온병에 넣어온 물에 타서 먹으면 3시간정도 산행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된다)를 온수에 타서 마신다. 식사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데다가 겨울철엔 보온이 편리하기도 하여 요즘같은 겨울시즌 산행때 애용하는 편이다. 오늘은 작은 보온병을 두개나 가져와서 만일에 대비코자 했는데 결과적으로 보온병 한병의 온수만을 썼을 뿐이다. 산행시간은 7시간이었는데..
그런데 서쪽으로 가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치악능선은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산길로 변한다. 무슨 이야기냐하면 능선날등으로 난 길이 대부분 눈처마에 덮여 길이 숲아래 산록으로 내려서든가 눈처마를 가로질러 가든가 하면서 진행했다. 스패츠를 쓸일이 없다가 이 능선에 와서야 스패츠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상에서 고든치로 가는 능선을 보았을때 어려운 곳은 하나도 없어보였다. 실제로 그러했다. 급경사가 간혹 있었지만 절반은 미끄러지듯 내려가면 되었다. 심설은 원도 없이 밟아보는 셈이었다. 강풍에 눈처마의 처마가 연장되는 현장을 본다. 보고 있는 사이에 눈처마의 길이가 늘어가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아마 그런 광경을 실제로보며 산행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눈처마 바로 옆으로 길이 나 있어 눈처마의 길이가 옆으로 길어지면 배낭이 눈처마에 닿기도 한다. 그런식으로 고든치 까지 눈처마가 계속되었다. 하기야 명지산은 아재비고개 800m 조금 더 되는 능선인데도 눈처마가 발달되어 있음을 보면 치악산의 고든치로 내려가는 능선은 거의 1000-900m정도의 능선이라 그럴만도 했다.
한군데 영낙없이 밋밋한 능선길을 똑바로 걸어가야 할 것 같은데 오른쪽 경삿길로 내려가라는 이정표가 있어서 의아했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밋밋한 능선은 곧장 급경사를 이루며 골짜기 안으로 사라지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 같은 길은 안부를 향하여 길게 이어지는 능선길이 된다. 사람의 눈이란 한치앞도 볼 수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인듯하다.
드디어 안부가 나온다. 이곳이 고든치 안부인줄 알았던 터라 내려가는 길이 없어 영 께름칙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그것은 부곡쪽의 고든치골의 상류인 원통골과 황골쪽의 미랭이골을 연결하는 원통재였다. 만일에 앞뒤 가리지 않고 그쪽으로 내려갔다가는 큰 낭패를 볼 뻔 했다. 어쨌든 착각은 계속되어 올라가는 쪽의 봉우리인 969.9m봉을 향로봉으로 오인했다. 이때가 5시10분이었다. 이 시각은 지난번 올랐던 동두천의 소요산이라면 해가 질 시간이었다. 이날은 5시 58분이 일몰시간이라는 것을 GPS로 알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급했다. 향로봉에서는 능선을 따라 국형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지 하며 꼭대기로 올라가지 않고 산록을 가로질러 향로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하기로 한다. 산록을 지나가는 길도 누군가 먼저 지나간 발자국이 있었다.

능선으로 나와 동쪽을 바라보니 마치 향로봉에서 남대봉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거대한 봉우리와 능선이 보인다. 그 봉우리가 향로봉이라는 것은 뒤에야 알았다. 어쨌든 길은 나 있었고 곧 급경사 송림속길이 되어 뛰어내려가기는 안성마춤이었다. 아마 치악산에서 이런 하산길은 다시 없을 것 같았다. 돌멩이가 없는 솔밭길...적어도 입석대하산길이나 국형사 하산길, 남대봉 하산길과 사다리병창길에 비하면 임금이나 사용할만한 하산길이었다. 가장 안전하고 솔가리가 깔려 폭신한 숲속 하산길이었던 것이다. 감기기운이 있는데도 사다리병창의 혹독한 맞바람 능선에 시달린 탓인지 찌뿌드드하던 몸이었는데 뛰어내려오다 보니 땀이 비오듯하고 체열이 오르고 속옷이 젖고 코가 뚫리는 것이 아닌가? 속옷은 갈아입으면 된다. 실제로 이길을 뛰어내려온 뒤로 일주일이나 오락가락하던 감기가 빠져나가버렸다. 피톤치드가 그윽한 송림길로 급히 호흡하며 달려내려온 것이 딱 주효한 듯하다. 좌우간 그런식으로 쏜살같이 내려오다 보니 길은 끝나고 다리가 보인다. 내려온 길은 "등산로아님"이란 팻말이 붙어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다리를 건너가는 길이 고든치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안도했다. 어쨌든 고든치길로 정확히 내려온 것이다. 능선에서 여기 도착하는데는 2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일몰시간은 아직 25분이나 남아있었다.
고든치골은 얕은 안부와는 다르게 바위단애가 꽤 높고 계곡 바닥에도 바위덩이가 많은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이전에 여름철에 한번 지난 적이 있는듯한데 도대체 기억이 희미하다. 골짜기가 여름에 꽤나 시원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길은 넓고 평탄한 편이라 내려오기가 안성마춤이었다. 이곳 골짜기 입구의 동네가 행구동이라는 것은 뒤에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오면서 기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좌우간 7시간 가까이 산행한 것으로는 장거리에 속하지만 비로봉에서 행구동까지는 별다르게 고생했다고 할만한 것이 없다. 구룡사에서 정상까지는 4시간남짓 걸렸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굉장히 힘든 코스였다. 해발 500m인 세렴폭포아래 다리에서 1288m까지 788m를 올라오는데 반 탈진하듯이 올라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관음사가 보이고 화장실이 나타났다. 화장실은 안방처럼 깨끗하여 옷을 갈아입기에 안성마춤이었다. 그리고 관음사는 불교사찰이 아니라 굿위주의 행사가 벌어지는 곳인듯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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