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 2. 3. 14:44
함백산 1573m 만항재-정상-중함백-은대봉-싸리재 심설산행
사진:은대봉가는 길


함백산은 남한 6위의 높은 산이다. 정암사로 가기전 함백산의 모습이 잠깐 차창으로 보인다. 하얀 설연이 날리고 있다.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는 모습이었다. 만항재로 올라가는 길은 어제 내린 눈으로 덮여있다. 함백산을 찾은 버스는 3대나 된다. 이 무렵 함백산의 설경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았던 것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큰길(정상의 기지로 올라가는 길-산행코스는 이길을 일부 이용한다)로 올라갈 때 길가에 눈은 특별히 이곳 이 시즌의 평균 심설량에 못미치는 듯하다. 함백산은 만항재에서 얼핏 보면 평범한 육산처럼 보인다. 만항재가 1300여m의 해발고도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어쩌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맘때의 고산들의 설경을 보여주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무엇이 만항재에서 내려, 정상으로 올라가는 평탄한 눈길과 급경사에서 본 산은 그토록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던가?

이곳의 스카이라인은 오밀조밀하지도 않고 웅장하기는 하지만 산세가 수려한 것은 아니다. 1400m급의 산, 백운산, 장산, 두위봉도 눈아래 평범하게 바라보일 정도로 높고 광활한 능선에서 무엇이 그토록 눈길을 화려하게 만들었던가? 그것은 바로 그 고도였고 그 고도에 떠돌고 있는 투명한 대기와 눈부신 하얀, 축성된 듯한 백색의 눈때문이었다. 함백산의 스카이라인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은 그 아래 하얀 백설의 산을 성산처럼 우러러 보이게 한다. 1300m의 산길은 그렇게 밝고 맑고 희고 푸르렀던 것이다. 큰길을 따라 가다가 급경사 산길로 들어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갈 때 산명을 일으키며 불어가는 강풍은 아직은 살을 에는듯이 날이 시퍼렇다. 하지만 바람이 없으면 등이 따뜻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햇볕이 도탑다. 태양과 바람과 눈...

설악 남쪽 덕유 이북 백두대간 가장 높은 준령 함백산
기존 함백산  함백산화보 함백산으로 가는 길은 어떻게 보면 퇴락한 사북 고한의 지저분한 거리, 걸쭉한 색깔로 흘러내리는 하천(동남천)을 지나 황갈색의 오염된 광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흘러가는 개울을 따라 가는 길이다. 결코 함백산처럼 높고 우람한 산의 천국으로 가는 듯한 길이 아니다. 그러다가 한순간 개울은 얼어붙은 겨울특유의 개울로 변하고 주변의 산야는 다시 강원도의 깊은 산과 산록으로 바뀌어 있음을 감지한다.(정암사 부근개울은 열목어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서 정암사가 지나고 하얀 신설이 덮인 미끄러운 오르막을 올라가면서 다시 바랜듯한 탄광촌인 평화촌을 지나면 만항재다.
고한을 통과할 때 잠시 설연이 강풍에 휘날리는 함백산 정상이 보이긴 했었다
그러나 만항재에 오면 고한에서 보던 그 성스러운 함백산의 이미지는 어디로 가고 강풍이 휘몰아치는 겨울철 모든 능선의 평범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강풍이 부니 스패츠를 하고 복장을 단단히 챙기라는 가이드(오랜만에 안내 산악회를 따라온 탓)의 부탁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버스안에서 준비하기란 힘든 일이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큰길위에서 스패츠와 아이젠을 하려니 손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벌써부터 가이드의 엄혹한 눈초리가 번득이는 것을 등뒤에 느낀다. 차에서 내린지 2분밖에 안됐는데 아직도 우리팀중 출발하지 않은 사람이 있느냐고 재촉한다. 오늘 눈치깨나 받을 것 같다. 계속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함백산 2월 15일_

함백산

함백산으로 올라가는 큰길은 익숙한 길이다. 옛날 이길로 올라가 주목나무지대부근까지 가서 차를 대놓고 중함백(中咸白), 은대봉으로 갔다가 싸리재를 내려다보고 온 일이 있기 때문이다. 큰길에서 함백산 정상을 보며 앞에서 몰려가는 사람들과 주위 배경을 넣어 한 커트 찍는 사이에 벌써 주류로부터 50m 정도 뒤쳐져버린다.

함백산은 푸른 창공을 배경으로 거대한 포물선 같은 스카이라인을 보여주어 장중한 맛을 풍긴다. 이제는 평범한 듯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풍경이다. 그러다가 다시보니 역시 이 부근에서는 평범한 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항재의 해발고도가 1300m에 달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눈쌓인 큰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오늘은 왠지 너무도 눈이 부시구나 하고 생각한다. 엊그제 치악산에 올랐을 때도 눈에 햇살이 비쳤지만 오늘처럼 눈이 부시지는 않았었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도 눈이 부시는 일이 계속되자 그제서야 함백산의 눈이 유난히 흰 순백색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러고 보니 이곳 산록의 눈은 너무나 깨끗하다. 티끌하나 보이지 않는다. 어제 신설이 와서 묵은 눈위에 쌓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곳 일대의 대기와 설질(雪質)의 색깔이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대기는 너무도 투명하여 모든 게 눈이 부시었는데 주변의 모든 것이 맑고 정갈한 것은 바로 이 청명한 대기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늘도 짙푸르러서 눈 덮인 함백산의 유장한 포물선 같은 후덕한 스카이라인과 그 위 가없이 푸른 창공과 회황색 산괴의 대비는 함백산을 더할나위 없이 성스러운 산처럼 보이게 만든다. 바로 그것이구나. 이미 1300m를 올라온 터라 그 고도에 걸맞는 산의 환경에 우리의 눈과 귀가 처음엔 익숙하지 못했을 뿐이었지만 차츰 부근의 모든 것이 희고 깨끗하고 맑고 투명하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주위의 산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높은 산에 올라온 것을 우리의 감수성은 그제야 실제의 함백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함백산의 산명은 바로 이러한 느낌의 유래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흰백자"가 말이다. 큰길에서 벗어나 산록에 달라붙을 때쯤 해서 바람의 강도는 조금 사그라 든다. 큰 산의 남쪽 산록이라 조금전 안부에서의 바람의 강도에 비하면 훨씬 따뜻한 편이다. 등뒤에 꽂히는 햇살은 포근하게 느껴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숲의 키는 낮고 수종도 단순해보인다. 대부분이 활엽수들이고 왜목에 가까운 나무들이다. 줄기를 보면 곱게 쭉쭉 하늘로 뻗은 나무는 한 그루도 안보인다. 거개가 중동이 휘고 가지가 비틀어진 모습들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지금 그 나무들을 훑어 동해쪽으로 빠지는 거센 바람 즉 겨울이면 언제나 불어제끼는 혹독한 계절풍 탓일 것이다. 강풍은 지금 산세에 걸맞은 우람한 산명을 울리고 있다. 정상에서 가까운 산록에서 보면 태백산이 저만치 솟아있는게 보인다. 장군봉이 맨 앞에 있고 그 뒤에 천제단이 있는 정상, 부쇠봉, 왼쪽으로 문수봉이 보인다. 부쇠봉에서 백두대간은 오른쪽을 향하여 나아간다. 하지만 그 부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화방재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낮은 능선날등도 또렷이 보인다. 유일사(唯一寺)로 올라가는 산행깃점부근은 작은 눈벌판을 이루고 있고 길 아래쪽 백단사 아래쪽에도 하얀 작은 눈벌판이 보인다. 당골은 장군봉에서 동북으로 뻗어내려오는 능선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정상 남동쪽 능선 안부에 큰 건물과 운동장이 보인다. 대한체육회산하 태백산 고지 훈련장이다.
훈련장이 있는 능선을 따라 시야를 멀리 보내면 아득한 곳에 조록바위봉이 보이기도 한다. 장산, 백운봉, 두위봉은 태백, 함백산의 아들봉격이라 모두 눈아래 보인다. 장산은 남쪽 산록이 매우 험준하고 상당부분 너덜지대로 되어있는데 함백산에서 보면 평범해보인다. 장산 남서쪽으로 선바위산, 매봉산등 봉우리들도 차례로 보인다.< 이 봉우리들은 태백산에서 발원한 옥동천을 따라 나 있는 31번 도로상에서 길을 따라가다보면 멋진 산으로 하나씩 나타나는 수려한 봉우리들이지만 함백산에서 보면 스카이라인만 보일 뿐이다.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백운산에서 선바위산 매봉산으로 한 가닥씩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이었다. 함백산 정상 바로 아래엔 바위굴헝이 있어서 바람을 피할 수 있다. 올라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간식을 먹느라 법석이다. 정상에서는 몸을 가누기 힘들정도로 바람이 세다. 그러나 바람속에는 살을 에는 듯한 예리한 냉기는 없는 듯하다. 동장군의 위세는 어느듯 칼은 무디어지고 그 포효는 이미 이빨이 빠져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바람맞이 산록을 따라 내려가는 눈길은 미끄럽고 혹독한 겨울광풍이 미친듯이 불고 날리는 설연이 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도 하는 경삿길이다.
내려가는 길옆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다. 바로 주목지대다. 소백산처럼 주목지대를 분리시켜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곳이다. 함백산에서 푸른 것은 이 주목과 은대봉으로 가는 능선과 산록의 산죽뿐이다. 소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는 만항재에서 급경사로 올라오기 직전 산록은 작은 숲이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목지대는 급경사가 끝나는 능선의 오른쪽 산록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주목의 설화를 기대했었는데 여기도 설화는 없다. 함백산일대의 적설량이 평년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무관한 일이 아닐 듯하다. 추운날이 며칠 있었지만 평년에 비해 기온이 높고 날씨가 유례없이 건조했던 터라 눈꽃이 제대로 필 날이 없었던 모양이다. 설원에 천년의 뿌리를 박고 의연히 서 있는 주목은 소백산이나 태백산이나 여기 함백산이나 다름없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같아서는 적어도 5분만이라도 부근에 서서 주목을 찬찬히 바라보고 싶건만 무정한 가이드는 그럴 기색이 전혀없다. 그리고 따라오는 기색이 있는지 없는지 고개를 한번 뒤로 돌린다.

처음 보이는 주목은 통나무 주목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은 가지가 없거나 잘리고 고갱이도 잘려나가고 한쪽으로만 가지가 무수히 뻗어나간 주목인데 그 가지중에도 광야에 흩어진 채로 세월에 바래고 비바람에 씿기기를 천년을 계속한듯 동물의 뼈처럼 하얀 가지가 뻗어있어서 잎이 붙어있는 가지는 얼마 안된다. 하지만 그것은 장관이었다.

함백산 1573m
강원도 태백시-정선군 고한읍
함백산은 우리나라 유수의 탄전지대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석탄이 연료의 대종을 이루던 시절 함백산은 우리의 겨울을 뜻뜻하게 해준 장본인이었다. 함백산 산록에 거미줄처럼 많은 도로는 모두 석탄을 캐서 운반하던 통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통편:서울동서울터미널-태백(4시간30분에 도착)
드라이브 코스:서울-영동고속도로-남원주인터체인지-영월-석항-신동-사북-고한
숙박:태백 또는 고한의 숙박시설이용
문화재와 볼거리:정암사, 정암사 적멸보궁(우리나라 5대 보궁-석가진신사리를 모신절-의 하나. 정암사 수마노탑(모전석탑으로 수마노석을 이용. 보물410호), 천연기념물 75호 열목어 서식처(함백산 은대봉에서 흘러내리는 정암사계곡), 천연보호림(주목), 사스레나무숲, 용연굴
코스:만항재-정상-주목지대-중함백-은대봉-싸리재
산행시간:4시간
만항재에서 정상까지는 해발높이 약 300미터정도를 오르면 된다. 큰길을 따라가다가 산록길로 들어서서 올라간다.

조망:우리나라 6위의 산이니 만끔 조망은 뛰어나다 남쪽으로는 태백산 장군봉과 부쇠봉, 문수봉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백운산-두위봉 능선이 조망되며 그 남쪽으로는 장산에서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산들이 조망된다. 북으로는 중함백, 은대봉, 금대봉, 매봉산등 백두대간이 조망되고 동으로는 멀리 백병산에서 면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첫 부분이 조망된다.

정상-주목지대급경사:정상에서 북릉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이나 주목지대까지 내려오면 다시 평탄해진다. 그 뒤 중함백을 오른 뒤 내려가면 어려운 곳은 없이 대체로 평탄한 내리막길을 이룬다.

정상의 조망:남으로는 태백산이, 북으로는 중함백-은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과 그 뒤 금대봉, 금대봉에서 오른쪽으로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길게 조망된다. 함백산에서 직접 이어지는 능선은 백운산을 거쳐 두위봉으로 뻗어나가는데 두위봉이 백운산보다 더 높다. 두위봉에서는 서쪽으로 영월군 중동면과 정선군 신동읍 경계를 이루며 질운산(1172m)과 예미산(989m)을 솟구치고 영월읍쪽으로 계속 뻗어 응봉산(1013m)과 계족산(889m)을 일구고 덕포리에서 영월 동강과 서강의 합류지점을 보며 한강상류에 사라지는 긴 능선이다.
그 밖에 장산에서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조망된다.
산행시간은 4시간이지만 여기에는 숨을 돌릴 시간이 계산되어 있지 않다. 주목을 보고 중함백이나 은대봉에서 조망을 즐기려면 30분쯤 더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두번째 주목은 그래도 수형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는 있지만 위쪽엔 두마디로 뻗어가다가 큰쪽 가지가 죽어버린 주목이었다. 이 나무도 정상적으로 위로 자라지 못하고 중동에서 옆으로 가지를 뻗고 있는데 한쪽은 여의치 못하나 한쪽은 왕성하게 가지를 뻗고 있다. 둥치의 절개된 부분엔 시멘트인지 황토인지로 메워놓는 듯 주목보호를 위한 수술조치를 받은 나무이기도 하다. "보호사업" 입간판에는 함백산 천연보호림주목이 노령화로 생육상태가 불량하고 고사 우려가 있어 치료 및 외과 수술을 실시, 원형보존 및 수명을 연장시키고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주목을 비롯 거의 모든 주목이 말하자면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얘기였다. 치료해야할 나무가 112그루나 된다고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세번째 나무는 잎도 청청하고 가지나 둥치가 제대로 된 완전한 형태의 주목이었다. 수피도 불그레한 게 깊은 눈밭에 고고히 서서 겨울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해보인다.
주목지대를 지나 높지않은 봉우리의 산록을 지나가면 곧 중함백으로 올라가는 안부에 이른다. 이 산록에서는 만항재에서 두위봉으로 기세좋게 뻗어가는 백운산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되며 그 사이에 형성된 정암사계곡이 숲사이로 내려다보인다. 중함백 아래 안부에는 청청한 젊은 주목 한그루가 왕성한 가지를 사방으로 뻗고 서있다. 이곳에서 일행은 겨우 5분간 휴식을 하는 모양이다. 여기서 약간 급경사를 이룬 중함백(1506m)에 오르면 그다음 은대봉(1442m)의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안부까지는 완만하지만 계속 내리막길을 이루며 밋밋한 안부형 능선길이 계속된다. 하지만 고도는 1400m-1300m를 오르내리기 때문에 여전히 천상을 걷는 기분이 된다. 내리막 경사가 끝나는 곳에 빽빽한 사스레나무 숲이 깊은 눈의 평지에 울창하게 우거진 것이 시선을 끈다. 평원이라고할만큼 평탄한 넓은 안부에 깊이 쌓인 눈위에 숲을 이룬 자작나무(사스레나무)를 보면 한대지방에 온듯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몇년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눈이 거의 녹은 이른봄이라 부근이 무척이나 황량했는데 오늘은 눈도 깊고 나무들도 많이 커서 보기가 좋다.
안부를 지나면서 부터 은대봉으로 올라가는 밋밋한 오르막 경사가 시작된다. 은대봉은 가까운 듯이 보이지만 얕으막한 전위봉들을 두어개 이상 지나가야 나온다.
드디어 숲도 끝나고 길가에 산죽만이 눈을 덮어쓰고 있는 노지의 능선날등이 나온다. 앞을 보면 은대봉이 온전하게 보이고 뒤를 보면 함백산과 중함백이 역시 온전히 보이는 능선은 경사가 없어 평온한 마음으로 주위의 능선과 산들 먼 조망을 즐기기에도 좋고 대함백을 한눈에 보는 재미도 수월찮은 바가 있다. 고생고생하면서 이곳까지 온 것이 그렇게 기분좋게 느껴질 수 없다. 파도밭을 헤치고 내수면으로 들어선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이 안온한 기분은 지난번 산행때도 느꼈던 감정이다. 맑은 대기속에 결코 험상궂지 않게 부드럽게 솟은 은대봉은 자애로운 모성을 지닌 인격체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산행때 눈치껏 찍은 사진이 60여장이지만 이 능선에서 찍은 은대봉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아마 동일한 느낌을 다른 사람들도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그 사진을 본 순간 뭔가 감염되어 오는듯한 진한 봄의 물결이 저만치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해맑음 속에 그리고 긴 겨울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은은한 컬러 녹황색에 가까운 그 색채 속에는 겨울 속에서도 마비되지 않은 생명의 여운이 그림자처럼 번져있었다.

그것을 증명이나 하듯 은대봉으로 올라가는 양지쪽 산죽길에는 눈이 녹아 작은 개울이 되어 흘러내려오고 있다. 은대봉정상은 헬기장이다. 주위에 숲이 있어서 조망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은대봉에서 싸리봉으로 가는 길은 평탄한 능선의 심설을 좀더 헤치고 나서 급경사로 떨어진다. 경사로를 조금 내려가자 금대봉과 싸리재가 보이는 노지가 나온다. 굉장한 맞바람이 몰아치는 끔찍한 산록이었다. 금대봉 또한 은대봉과 유사한 유장한 능선봉이다. 금대봉으로 구불거리며 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모난 곳은 없다. 싸리재의 바람은 함백산 정상의 바람이상이었다. 오목한 구석을 찾은 바람의 주류는 옳다구나 하고 고개를 넘으려는 바람에 엄청난 가속도를 붙이며 불어간다.

싸리재는 원래 화방재와 더불어 태백시를 외부와 연결하는 주고개였다. 현재는 싸리재터널이 뚫려 구비구비 고개를 넘지 않아도 태백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싸리재고개는 깨끗하고 말쑥한데다 해발 높이도 1200미터를 넘는 곳이라 공기는 항상 맑고 청량하여 고개의 아스팔트 도로에 서있어도 가슴이 시원해질 정도다. 몇년전 여름 이곳을 지나다가 금대봉을 바라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런 기분이었다. 그때 터널이 뚫려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여튼 많은 차들이 고개를 넘는 것으로 보아 개통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오늘은 싸리재고개위까지 와서 버스가 대기하기로 했으나 길이 눈에 덮이고 군데군데 얼어있어 터널이 시작되는 아래쪽 마을옆에 서 있어서 걸어서 내려가기로 한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기가 지겨워 굴곡부분에서 산을 타고 질러가기를 두서번 하니 거의 선두권에서 하산을 한다. 산악회에서 라면과 삼겹살을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다. 라면이 그렇게 맛이 있을 줄 미처 몰랐다. 얼큰 한 것이 속을 확 풀어버리는 듯하다.

오늘 산행은 4시간만에 끝이 났지만 허전하기만 하다.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주지 않고 몰아세우는 이런 산행이 산악회의 안내산행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유를 찾아 왔거늘 여유를 부릴 기회라고는 촌음도 주지 않는다.
산행의 기본적인 조건:대체로 4분의 3정도의 평지산행을 한다. 산은 정상사면을 제외하고는 별로 바위가 보이는 곳이 없다. 함백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정암산(淨岩山)으로 나와 있다. "정암산, 군의 동남쪽 80리에 있다", "정암사: 정암산에 있다"는 설명이 그것을 말해준다. 정암사는 신라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는 국내 5대사찰 중 하나이다. 함백산정상에서 은대봉으로 이어지는 긴능선의 한복판에 형성된 골짜기 입구에 정암사는 위치한다. 그 옛날 이곳에 절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속도로와 터널로 점철된 현대식교통 네트워크상에서도 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다. 그 옛날 이골짜기에 들어오려면 목숨을 걸지 않고는 들어오지 못했으리라. 계곡과 능선이 복잡하여 한번 길을 잘못 들면 몇달이라도 헤메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함백산은 우리나라 2대강 1개천의 발원지: 낙동강의 발원지는 누구나 알다시피 태백시내의 황지못이다. 평지에 솟아오르는 맑은 물의 못 황지는 보기만 해도 감탄을 자아내는 자연의 경이이다. 황지못은 함백산에서 동북으로 뻗어나가다가 동으로 방향을 잡고 태백분지에서 뻗어내리는 힘이 다하는 곳에 형성되었다. 그 방향은 정암사의 정동방향보다 약간 남으로 기울어진 위치이다. 거의 같은 위도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낙동강의 발원지가 황지못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금대봉 정상 동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황지천을 이루며 태백시로 흘러들어가는데 이 개울의 시발점은 황지못에서 직선거리로 약 7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다. 그런데 이 발원지는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남서쪽 계곡의 고목나무샘과 정상능선을 사이에 두고 1km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함백산 금대봉은 정상에서 북으로 흐르면 한강이 되고 남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한강 낙동강이 아니라 각각의 하구에서 가장 먼 발원지인 것이다.

낙동강의 발원지가 황지 못이듯 한강의 발원지는 검룡소로 알려져있다. 검룡소는 함백산의 지봉인 금대봉의 북쪽 기슭에 있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 가보면 황지못처럼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 황지못보다는 크지 않으나 꽤 크게 형성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검룡소에 물을 공급하는 샘은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한 금대봉 북쪽 산기슭 바로 아래에 있는 고목나무샘이고 따라서 한강발원지는 고목나무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검룡소의 물은 솟아난다기 보다 위쪽 개울과 연결된 지하수로를 통하여 공급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검룡소의 물이 흘러가는 창죽동에서 개울물이 갑자기 없어져 버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지하수로를 통해 어떤 낮은 곳으로 흘러가 하류쪽에서 솟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은대봉-금대봉-비단봉-매봉산까지를 함백산 산괴로 봐야 한다면 매봉산 동쪽 기슭에서 삼척 오십천으로 흘러드는 물도 함백산에서 흘러내리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2대 하천인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강원도의 지방하천인 오십천도 모두 함백산에서 흘러내린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삼수동과 삼수령이란 지명이 함백산 줄기가 마지막 끝나는 매봉산 동쪽 산록에 보이는 것이다.
함백산 산행 지도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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