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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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봉의 일출.
향적봉의 일출.
향적봉의 일출.
덕유평전과 덕유능선 끝의 남덕유산.
무주구천동에서 새벽에 산행(11월중순 산행.서울에서 9시경출발, 차에서 새우잠 자고 새벽 4시경산행시작)을 시작한다는 것은 산행의 스케줄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물소리가 요란한 이곳 가을의 만추풍광을 전혀 볼 수가 없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그래서 플래시로 계곡을 비춰보곤 했지만 거기엔 이미 단풍에 물든 잎은 하나도 남지않았다. 무주구천동계곡엔 언제나 물이 많다. 갈수기인데도 상당히 풍부한 수량의 물이 골짜기를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백련사로 가까이 갈수록 물소리는 더 요란해진다. 구천폭포와 이속대등이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백련사까지는 4km 남짓한 거리인데 속보로 걸어가니(새벽에 풀어놓으니 산꾼들은 도보경기라도 하듯이 야수(?)처럼 빠르다) 금방 백련사에 닿는다. 고개를 쳐들면 골짜기의 좁은 하늘에 별빛이 쏟아지는 듯하다.
백련사에서 향적봉까지는 급경사지대. 전에 못본 계단이 만들어져 있어서 산행하기가 쉽지 않다.
5시를 넘기면서 동쪽의 가야산-별유산사이 능선 너머로 부옇게 신새벽이 밝아온다. 짧은 한순간 보라빛에 가까운 붉은 색이 그쪽 하늘을 빛내기 시작한다. 산은 아직은 능선모양만이 보일 뿐 산이라고 할만한 어떤 속성도 어둠속에 감추어져 있다. 현재 올라가고 있는 곳은 이제 향적봉으로 올라가는 급경사가 끝나가고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능선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지점이었다.
그 이후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한순간 한순간은 세상이 열리기시작하는 감동에 버금가는 그런 환희(일출)라는 절정을 향한 미세한 변화들의 연속이었다.
아침의 운해.
정상에 도착한 시각은 6시 24분경이었으니 주차장을 떠난지 2시간 30분만이다.
처음 동녘의 산맥너머로 조금씩 밝아오던 새벽빛은 곧 산맥위로 길게 뻗은 붉은 색 벨트를 물들이면서 밝아졌다. 장엄한 것은 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검은 산괴, 산괴아래 괴어있는 하얀 운해의 모습이다. 운해는 산속분지와 계곡에서 새벽빛을 받아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를 보여준다. 운해는 기백산-금원산과 거망산-황석산 일대 골자기 아랫부분에 가득차 있다.
또하나의 천지창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고개숙였던 능선들이 갈기를 세운 사자처럼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날씨는 쾌청했다. 까마득히 멀어보이는 가야산-의상봉능선이 지척에 있는 듯이 느껴지고 그뒤로 황금빛 햇살이 광망을 사방으로 분산시키며 그곳 일출지점 상공에 가까운 권운(卷雲)을 불태우듯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남덕유산.
향적봉의 일출이 아름다운 것은 수도산-가야산-별유산-의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다양한 높낮이로 동쪽하늘을 가로질러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는 점과 지봉-대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로 구비구비 감돌아 설천면 원당천으로 빠지는 무주구천동 계곡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대청봉(설악산)일출이 좋아도 동해가 너무 가까워보여(바다는 빛의 다양성에서 내륙의 산맥의 일출에 비해 격이 다르다) 향적봉의 일출보다는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향적봉 정상은 바위로 되어 있다. 정상에서는 북으로는 무주군 적상면, 서쪽으로는 안성면, 서남쪽으로 장수군 계북면의 산간 분지가 내려다보인다. 장수군쪽은 들판 바닥에 안개가 깔려 있어서 언덕이 있는지 마을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동쪽은 길다란 능선위에 가야산만이 돌올하다고 할 정도로 힘차게 솟아 아침하늘을 찌르고 있다. 남쪽으로 중봉 뒤로 남덕유와 장수덕유산의 우락부락한 어깨가 지척에 보인다. 정확히 16km나 떨어져 있는데도 거리감을 느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중봉까지는 산악인의 집(지금의 향적봉대피소)방향으로 내려가 조금 올라간 곳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오수자굴로 내려가는 길과 덕유능선 종주코스가 갈린다.
1km 정도되는 향적봉-중봉길은 평탄하며 구상나무와 주목이 많은 곳이다. 중봉(1594m)은 남한에서 봉우리로는 한라산, 지리산(중봉,하봉포함), 반야봉(지리산), 설악산, 덕유산(향적봉)에 이은 고봉이다. 중봉에서 덕유평전-동엽령-무룡산-남덕유를 잇는 덕유산 능선을 바라보면 가슴이 트이는 듯한 너무도 넓은 조망앞에 말문이 막힐 정도다.
덕유평전의 드넓은 초원이 내려다보인다는 것이 그런 느낌의 상당부분을 뒷받침할 것이다. 평전에서 퍼진 능선은 다시 누에처럼 구불거리며 마치 멀리 프러시안 블루의 천왕봉-반야봉 능선을 향하여 서서히 움직여 가는 것 같다. 능선 사면엔 맑은 아침햇살이 황금빛으로 비치고 있다.
덕윻산 중봉에서의 조망은 원경으로 보이는 이름난 산의 개수에서 우선 압도적이다. 다시 들어보면, 지리천왕, 반야, 노고단, 백운(함양), 가야, 의상, 운장, 마이, 남덕유, 금원, 기백, 거망, 황석, 월봉산이 보인다. 단풍의 물결이 지나가버린 능선엔 이렇다할 색깔이 없었지만 내리부어지고 있는 초겨울같은 싸늘한 아침의 투명한 햇빛은 황금빛이어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덕유산의 특별한 현상은 아닐 터이지만 중봉의 높이와 적절하게 떨어진 가야산 연봉과 의상봉으로 이어지는 산맥으로 그 효과가 극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삼각대에 대형 카메라를 설치한 한 젊은이가 히히 웃으며 미친 듯이 그러나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포수와 같은 표정으로 셔터를 눌러대는 것을 보고 이 경치가 보통 경치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대지와 산맥이 금빛으로 들고 일어서는 듯한 희한한 아침이었다.
중봉에서 덕유평전으로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이긴 해도 그렇게 험한 길은 아니다. 해발고도의 차이도 100m 미만일 터이다. 그런데도 조망이 특별한 매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넓은 평전이 아래쪽을 받쳐주고 있고 능선이 이어져 남으로 계속 뻗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가는길 방향에 지리산 능선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공간감을 확장하고있다. 시야를 가로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곳 식생은 바람이 심하고 습기가 많은 아고산대를 기후를 보이고 있어서 나무들의 키는 기껏해야 허리, 대부분은 무릎까지 밖에 오지않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나무들은 행여 강풍에 날아갈까 잔뜩 땅을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인상이다.
가지는 다다귀 다다귀 나고 절목(마디)이 밭아서 그 관목숲엔 발을 디딜 공간도 없다. 진달래와 철쭉류가 대부분이다. 고도는 많이 낮아져 거창쪽이나 무주군, 장수군쪽의 계곡은 더욱 가까워져 있다. 칠연폭포가 있는 칠연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은 정상에 비해 거의 300m나 내려온 1312m 고도에 위치하고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기분이다. 안부에서 밋밋한 능선을 올라가는 길은 대개는 산죽으로 뒤덮인 산록을 뚫고 난 길이다. 단풍은 오래전에 지나간 듯 가을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산죽잎에 앉았던 서리가 녹으면서 무릎이 조금씩 젖기 시작한다. 능선봉에 서서 멀리 종주팀이 광활한 산죽밭 사이로 난 외길을 따라 구불구불 산록을 올라가는 광경을 보면 다분히 회화적이라는 느낌이 온다.
환희의 일출과 해맑은 아침을 보낸 뒤 걷고 또 걸어 무룡산 전위봉에 도착한다. 무주구천동을 출발한지 6시간이 다 되어간다. 전위봉의 높이는 1400m정도 되는 듯하다. 이 봉우리에서 보면 아직도 향적봉이 남덕유 보다 가까워보인다. 무룡산은 멀지 않다. 무룡산은 특별한 느낌을 주는 봉우리는 아니다. 평탄한 정상때문이다. 그러나 무룡산에서도 중봉에서처럼 광활한 조망을 즐길 수가 있다.
삿갓봉에서 보면 무룡산은 탁상처럼 밋밋하지만 중봉이나 향적봉을 가로막다시피 하고 있는 육산 덩어리다. 무룡산에서 삿갓재, 삿갓봉, 남덕유로 이어지지만 어려운 구간이다. 무룡산에서 삿갓재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까마득히 보인다. 그 왼쪽은 급경사지대로 거창군 황점으로 내려가는 산록이다. 삿갓골 재에서 골짜기를 내려가면 바로 황점(黃岾)이 된다. 황점은 거창군에서 마지막 덕유산 계곡(월성계곡)이 있는 곳이다.
이제 막다른 골목까지 온 것이다. 향적에서 무룡까지, 정확하게 말하면 삿갓골을 내려가는 안부까지의 산행코스는 지형이 밋밋하고 능선이 소잔등 같아서 변화가 적고 단순한데 비해 삿갓봉-남덕유산길은 변화가 많고 차례로 솟은 4, 5개의 소봉우리가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듯한 경관을 보인다. 삿갓봉을 조금 지난 바위 전망대에서 보면 지친 다리로 저 봉우리들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가 보통 힘들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봉우리를 비켜가거나 돌아가므로 힘들이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정작 어려운 코스는 그 봉우리들 뒤에 성채처럼 우람하게 솟아있는 남덕유정상이다. 월성재에서 남덕유정상까지의 급경사 오르막. 이미 26km에 가까운 거리를 걸어온 터라 웬만한 건각들도 덕유종주의 마지막 고비를 소화하기 어렵다. 더욱이 길의 세굴을 막기위해 만들어놓은 계단이 무릎의 강도를 시험하는 듯하다. 남덕유산 정상에 도착한 것은 10시간 40분만인 2시 40분이었다.
남덕유산 아래산록에서 장수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고도를 낮추다가 육십령을 만난다. 남덕유산에서 영각사로 가는 길은 해발고도 900m 가까이 되는 급경사인데다 군데군데 사다리가 있고 영각재 아래쪽은 너덜지대도 많은 좋지 않은 길이었다. 지금도 무릎뼈가 울리는 듯하다. 단풍은 영각사주변에서 조금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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