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10. 4. 13. 15:20

지리산:지리산, 바래봉


지리산-칠선계곡-천왕봉 1915m


8/6일 지리산에서(수년전)

이 산행기는 칠선계곡의 인상을 중심으로 쓴 일종의 칠선계곡의 감성적 경험담입니다. 길찾는 방법등은 다른 자료를 참조해주십시오.(한국의산)

이상한 기후:

지리산 1박2일 칠선계곡-천왕봉-장터목-백무동산행은 비속에서 시작되어 비속에서 끝났다. 지금 이곳 추성리는 새벽 2시. 비는 그쳤으나 산속의 기후는 산아래쪽과는 전혀 다르므로 정상이나 칠선골 깊은 곳에는 지금도 비가 올지도 모른다. 어제 백무동에서 추성리로 오던 택시에서 기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함양에는 햇빛이 나고 있던데요." 백무동에서 추성골로 가는 사이 택시 기사가 한 말이다. 산악기후의 특수성을 잘 알려주는 말이다. 이틀전 남원부근의, 지리산을 들어서는 고속도로에서부터 비가 왔지만 산에서 우중산행을 하고 있는 사이에 산을 제외한 지리산 주변일대에는 햇빛이 나 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지금 지리산을 비롯한 남해안 일대에는 아직도 장마전선의 뒤끝이라고 할 만한 요소가 남아 있음이 확실했다. 지리산에서는 이미 열흘전부터 질금질금 비를 뿌리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장마전선이란 성질이 다른 두 기단의 싸움이 아닌가? 이 두 가지의 상이한 기단이 지리산 상공에서 마주치고 있었다. 이맘때 쯤이면 이러한 전선이 만주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남쪽은 숨막히는 불볕 더위가 시작되고 있어야 할 때인데도 지리산에는 비가 오고 있다. 이 비가 나의 칠선골 산행을 비로 흠뻑 적셔주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 지리산은 평온하다. 내일 또다시 비가 내릴지 모르지만 한밤중엔 지리산이 조용히 숨을 쉬는듯 했다. 그러나 칠선골 안쪽은 지금도 여전히 안개가 끼이고 비가 내릴 것만 같다. 산악기상이란 말은 산악지방에 흔히 발생할 수 있는 특수한 기상형태를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이번 산행에서 산악기후의 가장 특수한 양태를 체험한 듯하다. 특정지역의 기후가 인근지역의 기후와 상당히 다를 때는 밖에서 제공되는 기상변화 원인보다 자체내에서 제공될 때이다. 산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기후는 산지의 특수요소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산악기상이라 하는 것일 터이다.
기상전문가도 아닌 사람의 소박한 생각으로는 차디찬 계류가 흐르는 계곡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계곡의 공기가 계류의 낮은 온도에 접촉된 냉각된 대기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안개를 만든다. 이를테면 하나의 작은 국지적 전선(前線)이 골짜기마다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칠선골 같은 깊은 골짜기 안에서는 장마철이 되면 항상 찌푸리고, 비가 내리고 한다. 열시간만(칠선폭포 옆에서 1박한 것은 제외)만에 골짜기를 빠져나와 천신만고로 천왕봉에 올라갔을 때에는 계곡과는 달리 햇빛이 금방 날 것처럼 훤해보였지만 도대체 구름이 움직이는 기미는 전혀 없었다. 아니, 구름이라고 할 만한 것도 지리산 상공에는 없었다. 금방 해가 나올 것 같은 좀 짙은 안개구름이 끼여 있었고 비는 그 안개구름으로부터 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비록 국지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특정 방향에서 특정 방향으로 구름이 이동해간다든가 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누구나 곧 날이 들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외부로부터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든가, 남해안 등 특정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온다든가 하는 어떤 작용도 없이 가랑비가 내렸다가,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믿어지지 않는 현상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지리산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산괴가 비구름속에서 벌어지는 어떤 기상학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왜 특별히 구름이 두꺼워지거나, 어디서 바람이 불어 오거나 하는 일이 없이 빗방울이 거세어졌다가 약해졌다가 하며 비가 내리는 것일까? 하다못해 안개조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하! 나는 그때 이것이 바로 지리산식의 기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추성동의 새벽 물소리는 요란하다. 1박2일의 산행을 마친 뒤 너무도 피로해서 도저히 그길로 바로 서울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기로 하고 돌아오자말자 잠에 떨어졌다가 물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 보니 새벽 2시였다. 칠선골산행의 생생한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게 뇌리속에 떠올라왔다.
칠선골의 상류쪽인 마폭에서 표지판을 보니 추성동이 11킬로, 정상인 천왕봉이 3킬로였다. 오르막길이 모두 14킬로나 되는 어려운 산행거리이다. 그러나 끊어질 듯한 호흡을 누르며 천왕봉에 도착했을 때 빗물에 젖은 얼굴로 어려운 산행을 해냈다는 즐거움을 표현하려고 해보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환희의 표정이라기보단 고통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뒤에도 우중의 칠선골 야간산행(일부)을 생각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돌파해나갈 용기가 생겨나곤 했다.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두지터마을을 지나가면 간이 매점이 하나 있다. 원래는 초암릉으로 올라갈 생각으로 용소(우리나라의 용소란 이름의 소 중에서도 그 깊이와 넓이에 있어 왕좌를 차지할만한 규모다)가는 갈림길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초암릉으로 빠지려면 어떤 길을 택해야되는지 알 수 없어 간이매점까지 내려와서 용소를 지나 국골로 들어가려면 어떤 길로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혼자 가시면 초암릉으로 올라가지 말고 칠선골로 들어가세요"했다. 초암릉에는 사람이 없어 길을 잃으면 난처해진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칠선골로 들어가라고 권유한 것이다. 한여름엔 칠선골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더러 만날 가능성이 있으니 길을 물어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두말없이 칠선골코스를 택했다. 초암릉길 역시 초행길이기에 익숙하지 않은 길일 것임이 분명했으나 거의 세미클라밍하다시피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비가 오는 날 암릉길의 위험성은 유의해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다. 칠선골의 저 유명한 용소를 다시 한번 보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고, 가장 깊은 소 중의 하나였다. 나는 그런 무서운 소를 남대천과 쌍룡계곡, 그리고 응봉산 용소에서 밖에는 본 적이 없다. 배낭이 점점 무거워져온다. 북쪽 산에서는 보기드문 대나무숲을 지나 칠선계곡의 첫물을 건너는 곳에서 구두를 벗어들고 건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쓸모없는 일임이 나중에 분명해졌다. 열 몇 번이나 물을 건너자면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신었다 하는 것도 한도가 있을 것이다. 비스켓봉지와 라면 몇개 그리고 요즘 흔한 간이 가스버너를 갖고 커피를 끓여파는 아주머니가 한분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가엽게도 말을 잘 못했다. 타고난 병인지 아니면 후천적인 장애인지 모르지만 이 깊은 산골계곡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녀가 형성해내려고 하는 언어를 그러나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가 물을 몇번이나 건너야 하는가 하고 물어보았더니 분명히 열세번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내가 잘 이해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성공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선녀탕이 있는 곳까지는 산길을 올랐다가는 계곡으로 내려오고 계곡을 건넜는가 하면 다시 가파른 산길로 올라가야하는 과정이 되풀이 되었다. 나는 지금 내가 보았던 것들이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수 가 없다. 경황이 경황이어서 눈여겨 볼 시간이 없었다. 선녀탕으로부터 시작되는 폭포와 탕이 먼저 생각난다. 선녀탕이 알려져 있지만 이름없는 탕과 폭류, 와폭, 소로 연결되는 물의 잔치는 계속된 다. 아니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가경을 연출한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폭우는 아니다. 비의 위험을 경계하면서도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 와 쌓이는 피로감에도 시야에 들어오는 별유천지의 장관을 보느라고 여러번 발걸음을 멈춘다.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소와 경관은 1. 선녀탕과 선녀탕 상류의 폭포, 폭류, 와폭과 소 2. 산길을 돌아나가다가 좁은 계곡을 10여 미터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에서 본 격류(대여섯군데의 폭류에서 생기는 엄청난 소리가 좁은 협곡을 물소리외에는 어떤 소리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곳 단애성 급사면의 울창한 숲 으로 오후 2시께인데도 저녁무렵처럼 어두웠고 게다가 벼락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가슴이 섬뜩했다. 천둥소리는 물소리로 판면됐지만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3.청춘홀부근의 폭류와 소 4.신선탕과 그 아래의 10여미터 폭포, 신선탕으로 떨어지는 쌍폭, 위의 와폭 5.칠선폭포를 전후한 폭포와 소 6.마폭 3, 400미터 아래쪽의 일련의 폭포, 폭류 7.마폭 바로 아래쪽의 폭포와 와폭, 그리고 소 등인데 1회의 산행으로 모두를 기억해낼 자신이 전혀 없다. 게다가 개개 폭포의 아름다움에 대해 물리적인 측정을 하기는 내 마음이 너무나 쫓기고 있었다고 할까? 한편 으로는 오래오래 그 모든 특징을 기록하면서 올라가고 싶은데 피로한 몸과 끊이지 않고 내리는 비와 그리고 일종의 공황으로 하여 여유라고하는 것은 내 마음속에 전혀 남아있지가 않았다. 그것들을 일일이 기록하면서 올라가려면 이틀밤은 칠선계곡에서 자야하리라.
지리산에 갈 때에는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번 산 행에 미빗점을 한 번 분석해본다. <<1박2일산행의 필수 고려사항>> 1.버너의 휴대(비 또는 눈 또는 땀에 젖은 옷을 말리는데) 필수적 2.행동식의 보완(통조림 잣죽, 통조림 밤, 육포등이나 익힌 쌀 같은 것 필요) 3.행동식을 수시로 꺼내먹을 수 있는 간이 벨트준비 4.배낭의 완벽한 방수(비를 맞을수록 배낭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방지해야) 5.등산화의 방수(물에 젖은 등산화는 또 하나의 짐이 된다) 6.판초우의 아닌 투 피스 우의가 필요. 7.기록장치의 방수필요 지리산에서 완벽한 취재를 하려면 적어도 산행시간은 2배가 됐을 것이 다. 그러면 칠선골 산행시간은 20시간을 잡았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비와 안개로 노트를 하기가 어려워 아까운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다. 반은 두려움, 반은 허겁지겁, 반은 비때문에 엉망이 된 내 인상기는 종 잡을 수 없는 횡설수설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구상나무와 주목: 지리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수림속을 걷게 되는 것은 계곡을 벗어나 능선을 타게되면서 부터. 칠선골 산행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된다. 계류를 건너기를 수십번 하는 사이엔 사실 부근에 어떤 나무 들이 자라고 있는지 눈여겨 볼 수가 없다. 하늘로 죽죽 벋은 잘자란 소 나무숲과 떡갈나무 숲들이 혼재하고 있는 것 정도만 기억에 남아있을 뿐 이다. 구상나무숲이 시야를 끌기 시작한 것이 정확히 어느지점부터인지 는 모르지만 대륙폭포 위쪽으로부터 1700, 1800미터지점에 이르는 능선 이었던 것 같다. 원시림을 연상케하는 거침없이 솟아있는 구상나무등 울 창한 수림은 지리산의 심산유곡을 상징하는 나무들이었다. 그중에서 구 상나무의 빼어난 높이는 단연 압권이었다. 비가 와서 둥치의 지름을 재 볼 여유가 없었지만 수령이 상당한 당당한 교목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산 에 이런 나무가 자생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 보다 흐뭇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우리나라의 기후와 토양이 생성해낸 것 중에서 구상나무, 전나무만큼 크고 당당한 나무가 있을까? 우리나라가 얼마나 식생에 좋은 조건이 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리 고 군데군데 아름드리 주목이 끼여있어서 더욱 이 일대의 숲이 돋보이게 해주었다. 주목은 둥치가 유난히 붉었으며 장마비로 잎은 생기가 돋아 윤이 흐르고 있었다. 계방산의 오대산쪽 능선에서 본 주목보다 오히려 커보였다. 강풍에 주눅이 든 자세가 아니라 제대로 자란 주목의 붉은 둥치와 가지에 푸른 잎의 조화가 어느 나무보다도 기품있어 뵈게 해주었다. 어떤 주목나무는 쓰러져 길을 막고 있으면서도 커다란 둥치를 두 군 데씩이나 몇 미터의 둥치를 치솟아 올리고 있었다. 아름들이라고 했지만 주목은 둥치가 둥글게 유지되는 일은 드물고 나무속이 텅 비어 있든가 아니면 원의 3분의 2정도의 수피가 둥치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지름이 15센티쯤 되어보이는 덩굴식물이 커다란 교목을 휘감고 있어 장관을 이룬 곳도 있었다. 8월 5일의 지리산은 조망이 불가능한 암중행로의 산행이어서 나로서는 애석하기 짝이 없었다. 또 어느 하가에 시간을 내어 이렇듯 우람한 산속에서 하루 이틀을 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금방이라도 기적이 일어나 비를 뿌리는 운무와 구름을 지리산 상공으로 걷어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엄연한 장마철속 산행이었고 따라서 비와 안개는 피할 수 없었다. 대개의 경우 이때쯤이면 장마가 끝나도 오래전에 끝나야 하는데도 말이다.
야영: 칠선폭포 옆에서 야영을 하기로 한다. 이곳은 해발 900미터 정도 밖에 안되는 곳이었다. 내 체력으로는 더 이상 산행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피로가 극도에 달하고 있었고 옷은 완전히 젖다시피해 있었다. 나는 아직 어떤 산에서건 내 체력이 한계를 보인다고 단정하고 중도에 산행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리산 산행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랐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더 올라가 주었더라면 아마 그 다음날 산행하기가 훨씬 달랐을 것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그 당시로서는 이 이상은 안된다고 판단했었다. 어디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산행 을 계속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누웠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드디어는 그 생각을 누를 수 있는 다른 대안은 하나도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끄러운 폭포옆에서 지리산의 음침한 밤을 혼자 보내기로 한 것이다. "우리들은 빽빽하게 들이찬 혼잡한 집들로부터 기어나와 이 밤과 아침의 세계로 들어왔다"라고 에머슨의 그의 "자연"이란 글에서 자연속으로 들어온 인간의 심경을 묘사한 적이 있다. 나의 경우가 꼭 그러했다. 도시의 밤은 거 기에 사는 사람들의 절반은 깨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새벽 2,3시가 되어도 도시는 잠을 자지 않는다. 도시의 거리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가 밤을 해치며 가로등이 미치는 범위만큼 밤을 쫓으며 어디서건 인간의 공작물이 내는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지리산의 밤은 완벽한 밤이다. 그렇게 어두운 밤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철저한 밤이었다. 인공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소음이나 빛은 어디에도 있을 수가 없는. 도시의 밤과는 전혀 다른 밤이었다. 아무도 없는 밤, 안개낀 폭포옆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결코 낭만적일 수 없었다. 소나무잎에 걸린 안개가 물방울이 되어 텐트위에 "똑 똑 똑 똑"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간격이 좁혀져 "똑똑"하고 물방울이 떨어지면 그것은 마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같았다. 텐트를 열고 누군가 들어 올 듯한 소리..
지리산까지의 거리: 새벽 4시 15분 서울서 출발. 7시 28분 남원 못미쳐 대명휴 게소에서 아침식사. 비가 오기 시작. 산행이 가능할지 걱정이 앞선다. 칠선계곡 쪽보다 대원사 계곡을 택하는 것이 어떨까? 안전한 산행을 원하는 마음. 9시 40분 지리산 추성리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360 킬로쯤 된다.
칠선계곡: 칠선계곡으로 올라가고 있다. 비가 계속 내려 차 속에서 짐을 챙기며 어정거리다가 비가 그치지 않자 차에서 내려 추성리 부근을 돌아다녀본다. 올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칠선계곡은 지리산에서 제일 긴 계곡, 비가 오면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며 비를 피할 곳이 없는 계곡이다. 지리산에서 조난한 사람들은 거의가 칠선계곡을 비롯한 지리산 계곡에서 폭우를 맞고 내려오거나 올라가다가 조난한 사람들이 대 부분이라는 것을 산잡지나 신문에서 여러번 보았다. 일순간 비가 뚝 그쳤다. 그 바람에 에라 모르겠다하고 산행을 시작한 것이다. 비가 아주 그칠 것이라고 생각할 건덕지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칠선골에 들어가서 폭우를 만날 경우 위험할 수도 있었다. 비는 정확히 12시 조금전에 그쳤다. 준비가 제대로 되었다면 10시부터는 산행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맞을 비라고 생각했던들 2시간이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하룻만에 내려오기는 힘든 코스가 칠선계곡 코스이다. 추성동에서 약 2킬로 정도 올라오니 엄청나게 큰 소와 작은 폭포가 나타난다. 아래쪽이 선녀탕, 그리고 위쪽에 있는 것이 옥녀탕. 옥녀탕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푸른 물이 넘실대고 있다. 비선담은 또 얼마나 드넓은 소인가? 지금 칠선계곡의 그 많은 소와 담 그리고 우중에 본 폭포, 와폭을 일일이 기억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정상까지 가는 길에 물을 얼마나 건넜는지도 기억할 수가 없다. 선녀탕으로 올라 가는 길은 흡사 설악산 수렴동 계곡의 어떤 부분을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불어난 수량이 엄청난 폭류로 화하여 하얀 포말을 끊임 없이 소(沼)안으로 쏟아 붓고 있다. 전에도 본 기억은 나지만 그때는 고요한 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킬 정도의 물이 흘러들어오고 있었을 뿐이었다. 가을철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온 소가 요동을 칠 정도로 엄청난 물이 덮치듯이 내려오고 있어 물살이 사방으로 퍼지고 물에서는 연방 차거운 안개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수온이 차갑기 때문이었다. 암반으로 된 와폭을 쏟아지듯 미끄러져 내리는 수량은 곧 지리산 칠선계곡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지금은 5시 22분. 물소리가 시끄러운 칠선계곡 중간지점의 칠선폭포부근이다. 배낭이 천근같이 어깨를 짓누른다. 옥녀탕에서 3킬로정도 올라 온 거리이다. 선녀탕 위쪽의 칠선계곡은 마치 미친 여자가 머리를 풀고 광란하는 것 같았다. 물은 제정신을 잃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춤사위로 소름끼치는 춤을 추는 것 같다. 어느 단애 모퉁이를 돌아서자 칠선계곡의 물은 모든 가능한 폭발적인 힘을 동원하여 악마적인 힘을 주제로 한 광무를 추고 있었다. 계류로부터 차가운 냉기가 요기처럼 하얀 안개를 피워올리는 가운데 좁은 골짜기의 어둑어둑한 협곡은 폭류가 내는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음향으로 가득차 있었다. 공포가 엄습해왔다. 이 격류의 골짜기를 과연 무사히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빗방울이 조금이라도 거세어진다면...더구나 하늘은 천둥을 몰아오려는지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천둥소리가 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한 떼거리의 산꾼들이 내려와 공황과 같은 기분은 모든 일이 잘될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낙관으로 바뀌었다. 그들의 존재가 그 원천이었다. 그래도 나의 마음은 공포와 위안사이를 쉴새없이 넘나들었다. 수량이 많은 위험한 물을 건너야 하는 회수가 만일 13회라면 12번을 지나기 전에는 물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 선녀탕에 오기전 어느 계류의 건널목에서 커피를 파는 극심한 말더듬이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했다 - 그래서 이 엄청난 물의 폭력으로부터 될 수만 있으 면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비는 이미 오래전에 다시 시작하여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언제 폭우로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산}잡지에서 어떤 등산인이 칠선골에서 조난당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산행기를 읽은 기억이 자꾸만 뇌리에 떠오르곤 했다. 바로 칠선골에서 계류를 건너다 폭류에 떠내려간 경험담을 쓴 것이었다. 물을 건느고 바위를 오르고.. 나는 올라가면서 내가 지나가는 곳이 나에게 주는 강열한 인상을 기록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우선 비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고, 설사 비가 오지 않았더라도 한가하게(?)노트를 펼치고 앉아 "아 좋다"라면서 칠선골의 물이 어쩌구 저쩌구 할 처지가 못되었을 것이다. 그때 손잡이가 없는 둥그런 바위를 기어오르다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잡을 데가 마땅히 않았기 때문이었고.. 비가 오는 데다가 배낭은 무겁고, 판초가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마침 내려오는 팀이 있어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침착했더라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는 곳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던 것이다.
이 조그만 사건이 나의 심리적 불안상을 명료하게 해주었다. 내려가는 사람들이 시야를 빠져나가 홀로 계곡길을 걸어가는 순간이 되면 어김없이 불안한 마음이 되곤했다. 그리고 프랭크 스마이드({산의 영 혼}, {산의 환상}의 작가)가 쓴 산행기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그가 오르던 영국의 어떤 산의 어느 코스에서 그의 뇌리에 생생하게 파고든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그는 한적한 영국 어느 산의 후미진 산길에서 묘하게 일단의 양민들이 악한들의 공격을 받아 10여명이 한명도 남기지 않고 피살되는 광경을 실제로 눈으로 본듯이 그곳에서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 장면이 하도 리얼하게 머리에 그려져 그는 그 장소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으면 자기에게 연락해주었으면 하고 독자들에게 주문까지 하고 있다. 나 또한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고, 뭔가 허공에 떠돌거나 물소리속에 "으악"하는 절규 소리나 신음소리같은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틀림없이 누군가 그곳에서 조난했거나 물에 떠내려간 곳이 틀림없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칠선골에서는 그런 조난사례가 1년에도 한 두건은 꼭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 않는가? 어쨌든 칠선계곡의 폭류는 계곡의 계류가 암봉, 소나무, 안개와 더불어 한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필수요소라고 생각하는 그런 한가한 차원의 사고활동의 순간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그것은 내 생명을 위협하는 파괴적인 힘으로 압박해오고 있었다. 이런 자연이 위험하다는 느낌은 칠선계곡에 와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이루는 한 요소가 아무리 위험하게 보일지라도 아름다움이 파괴적인 양상을 띠고 있을 때에도 아름다움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었다. 칠선계곡이 그러했다. 가장 짧은 여유의 한 순간에 바라본 칠선골의 광경은 엄청나게 아름답다는 것, 그것 뿐이었다. 단지 내가 그런 미적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선녀탕, 옥녀탕 위쪽의 칠선계곡의 경관은 압도적이다. 비가 오고 있어 물은 위협적일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지, 소와 담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을 정도지, 물소리는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럽지, 물에서 안개는 피어오르지.. 정말 이런 곳이 있을 수가 있나. 이건 마치 지리산의 하수도(?)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말한 그 위험한 골짜기에서다. 한쪽이 위험한 단애를 이룬 아래로 간신히 외길이 난 모롱이를 돌아서서 가는데 폭류가 눈앞에 다가와 시야가 닿는 한 어디든지 모두가 하얗게, 여기도 폭류, 저기도 폭포, 소, 담, 위쪽도 아래쪽도 소, 담, 폭포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내 마음은 다급해졌다. 마치 폭우가 쏟아지기 직전처럼 하늘이 컴컴해지는데다가 천둥소리까지 들리니 꼼짝없이 조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번쩍 뇌리를 스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협곡을 지나 계곡이 조금 넓어지니 어둠이 조금 가셨고 천둥소리도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천둥소린 애초부터 없었으며 그 소리는 폭포가 소에 내다꼰져질 때 나던 소리임을 알겠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놀랐던가? 그 곳에서 폭류의 물소리는 이래도냐 하고 그 위력을 한껏 과시하고 나 에게서 아름다움이 어쩌구 하는 소리는 듣기 싫다는 듯이 굴고 있었다. 강물이 홍수가 되어버렸을 때 그 물은 이미 아름답거나 평화로운 것이 아니듯이 칠선계곡의 물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가 크고 너무 많고, 너무 푸르고 너무 허옇고 너무 압도적이어서 나에게 어떤 회화적 이미지도 연상시켜주지 않았다. 그 폭류의 위세는 나에게 자연의 힘의 맹포성을 일깨워줄 뿐이었다. 추성리에서 산행을 시작한 지 6,7시간을 지났을 때 몸은 젖고 피로는 극도에 달해 있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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